리아스 바이샤스의 오래된 항구 도시, 폰테베드라(Pontevedra)

폰테베드라 시 전경

포이오(Poio)의 카에이라(Caeira) 언덕에서 내려다본 폰테베드라 시 전경.

By Lameiro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돌길과 광장의 느린 도시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의 도시들 가운데 폰테베드라(Pontevedra)는 조금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곳이다. 대성당과 순례길로 유명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처럼 웅장한 종교 도시도 아니고, 거대한 해변 리조트처럼 화려한 휴양지 분위기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대신 이 도시는 오래된 돌길과 광장, 비에 젖은 건물, 느린 걸음의 사람들 속에서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폰테베드라의 위치 지도

스페인(카나리아 제도 포함)에서의 폰테베드라 주(붉은 색 표시) 위치.

By TUBS:,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폰테베드라는 리아스식 해안으로 유명한 갈리시아 남서부 지역, 리아스 바이샤스(Rías Baixas)의 중심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로마 시대의 흔적 위에 세워졌으며, 중세 시대를 거치며 어부와 상인, 순례자들이 오가는 항구 도시로 성장했다. 한때는 포르투갈 방면 산티아고 순례길의 잠시 머무는 경유지 정도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갈리시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역사 도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 도시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사 지구의 보존 상태 때문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다음으로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구시가지는 대규모 복원 사업을 통해 과거의 분위기를 되살렸다. 자동차 중심 도로를 줄이고 보행자 중심 공간으로 재편한 도시 정책은 국제적인 도시 디자인 사례로도 자주 언급된다. 실제로 폰테베드라 중심부를 걷다 보면 자동차보다 자전거와 사람들이 더 눈에 띈다.

광장과 골목이 만든 도시의 분위기

폰테베드라의 매력은 거대한 랜드마크 하나보다 도시 전체의 분위기에서 나온다. 구시가지에는 작은 광장들이 연속해서 이어지는데, 각각의 공간이 서로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다.

폰테베드라 페레리아 광장 풍경

폰테베드라 페레리아 광장 풍경

By Bene Riobó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페레리아 광장(Praza da Ferrería)는 도시에서 가장 상징적인 광장 가운데 하나이다. 비에 젖은 돌바닥과 구운 밤 냄새, 아케이드 건물들이 어우러지며 전형적인 갈리시아 겨울 풍경을 만든다. 흐린 날씨조차 오히려 이 도시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요소처럼 느껴진다.

과거 시장과 길드가 형성되었던 베르두라 광장(Praza da Verdura), 페드레이라 광장(Praza da Pedreira), 레냐 광장(Praza da Leña)에는 지금도 식당과 선술집들이 늘어서 있다. 테라스에 앉아 갈리시아식 해산물 요리와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 도시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스페인 작가 발레인클란의 동상이 있는 멘데스 누녜스 광장

발레인클란(Valle-Inclán) 동상이 있는 멘데스 누녜스 광장

By LBM1948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멘데스 누녜스 광장(Praza de Méndez Núñez)에는 스페인의 작가 라몬 마리아 델 바예-인클란(Ramón María del Valle-Inclán, 1866–1936)의 동상이 서 있다. 폰테베드라가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갈리시아 바로크와 오래된 교회들

폰테베드라의 역사 지구에는 오래된 교회와 석조 건축물이 밀집해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19세기 분수와 석조 십자가(cruceiro), 수도원 흔적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디비나 페레그리나 성모 성지

디비나 페레그리나 성모 성지

By D.Rovchak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특히 페레그리나 성지(Santuario da Peregrina)는 조개껍데기 모양의 독특한 평면 구조로 유명하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연결된 상징을 건축 안에 담아낸 교회로, 갈리시아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분위기가 함께 섞여 있다.

폰테베드라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정면 모습.

By Fernando,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또 다른 대표 건축물인 성모 마리아 대성당(Basílica de Santa María a Maior)는 폰테베드라 종교 건축의 중심이라 할 만하다. 화려한 플라테레스코(plateresco) 양식의 정면은 16세기 이 지역 선원 조합(Gremio de Mareantes)의 번영을 보여준다. 바다 무역으로 성장했던 도시의 역사가 건축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산토 도밍고 수도원 유적

산토 도밍고 수도원 유적

By JnCrlsMG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한편 산토 도밍고 수도원(Convento de San Domingos) 유적은 13세기 고딕 건축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완전한 건물이 아니라 폐허 형태로 남아 있어 오히려 더 인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도시

폰테베드라는 빠르게 관광 명소만 둘러보는 방식보다 천천히 걸으며 경험해야 하는 도시이다.

썰물 때의 폰테베드라 부르고 다리

썰물 때의 폰테베드라 부르고 다리(Puente del Burgo)

By Pvibahu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아침이면 안개가 부르고 다리(Puente del Burgo) 주변으로 스며들고, 좁은 골목 사이로 습한 바다 공기가 흐른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아케이드 아래 작은 바에 앉아 커피나 맥주를 마시다 보면, 왜 이 도시가 ‘걷기 좋은 도시’로 유명해졌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폰테베드라 아 모우레이라 지역의 전통 어부 가옥들.

폰테베드라 아 모우레이라(A Moureira) 지역의 전통 어부 가옥들.

By Pvibahu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옛 어부들의 마을이었던 아 모우레이라(A Moureira) 지역에는 지금도 전통적인 어부들의 집이 일부 남아 있다. 화려한 관광지와는 다른, 오래된 항구 도시의 생활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강과 습지, 그리고 대서양

폰테베드라의 매력은 역사 지구에서 끝나지 않는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레레스(Lérez) 강 주변에는 자연 공간도 잘 보존되어 있다.

조각의 섬에 설치된 조각품이 보이는 풍경

조각의 섬에 설치된 Francisco Leiro의 조각 「사아베드라(Saavedra)」.

By Adrián Estévez (Estevoaei),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조각의 섬(Illa das Esculturas)은 강변 산책과 현대 조각 작품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다. 여름에는 강변 해변(Playa Fluvial)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슌케이라 데 알바 습지 풍경

폰테베드라의 슌케이라 데 알바(Xunqueira de Alba) 습지 풍경.

By Bene Riobó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알바 습지(Marismas de Alba)는 갈리시아 지역에서도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습지로 평가된다. 갈매기와 가마우지, 물총새 같은 수생 조류를 관찰할 수 있어 자연 탐방 장소로도 유명하다.

오 그로베(O Grove)에서 바라본 아 반원형 란사다 해변

오 그로베(O Grove)에서 바라본 아 란사다 해변(Praia da Lanzada).

By Lameiro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그리고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대서양 해변들이 펼쳐진다. 아 란사다 해변(Praia da Lanzada)는 갈리시아를 대표하는 해변 가운데 하나로, 약 3km 길이의 초승달 모양 백사장과 거친 파도로 유명하다.

폰테베드라 강어귀의 콤바로 풍경

폰테베드라 강어귀의 콤바로(Combarro) 풍경. 사진 가운데 곡물 창고 오레오가 보인다.

By Lameiro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해변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콤바로(Combarro) 같은 전통 어촌 마을도 만날 수 있다. 바다 앞에 줄지어 선 곡물 창고 오레오(hórreo)는 갈리시아 특유의 풍경으로 자주 소개된다.

중세 축제가 살아나는 도시

최근 폰테베드라는 문화 도시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재즈 페스티벌과 국제 철인3종 경기 같은 행사들이 열리지만, 가장 유명한 축제는 단연 페이라 프랑카(Feira Franca) 축제이다.

폰테베드라의 페이라 프랑카(Feira Franca) 축제 풍경

2016년 폰테베드라의 페이라 프랑카(Feira Franca) 축제 풍경.

By juantiagues – Saltimbanquis,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이 축제는 중세 시대 카스티야의 엔리케 4세(Henry IV of Castile)가 폰테베드라에 부여했던 ‘면세 시장’ 특권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현재는 매년 9월 첫 번째 주말에 열리며, 도시 전체가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로 변한다.

사람들은 중세 의상을 입고 거리를 걷고, 광장에서는 기사 토너먼트와 활쏘기, 매사냥 시연이 펼쳐진다. 밤이 되면 불과 음악, 곡예가 어우러진 공연이 이어지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역사 축제 공간이 된다.

폰테베드라는 화려함보다 분위기로 기억되는 도시이다. 비에 젖은 돌길과 바다 냄새, 느린 걸음의 광장들 속에서 갈리시아 특유의 시간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