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엘 아테네오

극장 무대와 발코니, 박스석을 그대로 보존한 채 서점으로 용도를 전환한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 내부

극장 무대와 발코니, 박스석을 그대로 보존한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 내부

By Luisalvaz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극장에서 서점으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산타페 거리에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El Ateneo Grand Splendid)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책장이 아니라 화려한 극장의 모습이다. 

높은 천장 아래로 발코니와 박스석이 층층이 이어지고, 정면에는 붉은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무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 객석이 있던 자리에는 책장이 늘어서 있고, 무대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신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은 처음부터 서점이 아니었다. 100여 년 전에는 극장이었다.

1919년 문을 연 그랜드 스플렌디드 극장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 아테네오 서점의 전면 사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 아테네오 서점

By Stanley Wood – Buenos Aires – 164, CC BY 2.0, wikimedia commons.

이 건물은 건축가 라파엘 페로(Rafael Peró)와 마누엘 토레스 아르멘골(Manuel Torres Armengol)의 설계로 지어져 1919년 그랜드 스플렌디드 극장(Teatro Grand Splendid)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은 탱고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탱고의 전설로 불리는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도 이곳 무대에서 노래했다. 건물에는 음반사 Nacional Odeón의 녹음 시설도 마련되어 가르델을 비롯한 음악가들이 녹음했고, 1923년에는 이곳에서 Radio Splendid가 방송을 시작했다. 극장이 공연뿐 아니라 음반과 라디오라는 새로운 대중문화가 만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영화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그랜드 스플렌디드는 영화관으로도 사용됐다. 1929년에는 《The Divine Lady》가 이곳에서 상영됐다.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자료에 따르면 이는 아르헨티나 최초의 유성영화 상영이었다.

그렇게 그랜드 스플렌디드는 공연과 음악, 라디오와 영화를 품으며 시대의 변화와 함께해 왔다.

의자를 걷어내고 책을 채우다

그랜드 스플렌디드 영화관은 1999년 문을 닫았다. 하지만 건물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0년, 건물은 엘 아테네오 서점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엘 아테네오 서점 내부. 극장 객석을 개조해 책장으로 채웠다.

극장 객석을 개조해 책장으로 채운 엘 아테네오 서점 내부

By Galio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서점으로 개조하면서도 극장을 최대한 극장답게 남겨두었다. 그 안에 서점을 집어넣은 것이다. 관객들이 앉아 있던 객석에는 책장이 들어섰다. 위층의 박스석은 독자들이 앉아 책을 펼쳐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그리고 극장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던 무대는 카페로 변했다. 붉은 벨벳 커튼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한때 카를로스 가르델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공연하던 무대에서 이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천장에는 1919년의 그림이 남아 있다

엘 아테네오의 천장 돔

평화를 주제로 한 나사레노 오를란디의 프레스코화가 장식된 엘 아테네오의 천장 돔

By Andrzej Otrębski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엘 아테네오에 들어서면 책장과 무대 못지않게 시선을 끄는 것이 거대한 천장이다. 지름 약 20m의 돔에는 이탈리아 출신 화가 나사레노 오를란디(Nazareno Orlandi)가 그린 프레스코화가 펼쳐져 있다. 그림의 주제는 평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전쟁이 끝난 뒤 찾아온 평화를 상징한다.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천장화뿐 아니라 발코니와 난간, 조각 장식, 박스석, 무대와 붉은 커튼 등 옛 극장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래서 이곳을 걷다 보면 새로 지은 화려한 서점에 들어와 있다기보다 오래된 극장 한가운데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서점이 되다

극장의 모습을 간직한 독특한 공간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은 2008년 세계의 뛰어난 서점 10곳을 소개하면서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를 2위에 올렸다.

201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도 “This is the world’s most beautiful bookstore”라는 제목으로 이곳을 소개했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객관적으로 하나만 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엘 아테네오가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곳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예전에 극장의 무대 자리에 만들어진 카페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의 무대에 자리한 카페

By Luisalvaz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옛 박스석에 앉아 책을 읽고, 발코니에서 서점 전체를 내려다보고, 무대에 마련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건물 자체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다. 서점이면서 동시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관광명소인 셈이다.

100년 된 극장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엘 아테네오의 변화는 서점으로 끝나지 않았다. 2026년 3월에는 건물 3층에 Experiencia Grand Splendid라는 체험 공간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건물의 역사와 건축, 천장 프레스코화 등을 살펴볼 수 있으며, 카를로스 가르델의 홀로그램을 활용한 몰입형 영상도 볼 수 있다.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옛 무대 뒤편 공간도 둘러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이 건물에는 한 가지 일관된 역사가 흐른다. 1919년 사람들은 이곳에 공연을 보러 왔다. 이후에는 영화가 상영되고 라디오 전파가 이곳에서 퍼져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이 책을 만나러 온다.

사람들이 문화를 즐기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그랜드 스플렌디드는 100년 넘게 사람들이 문화를 만나러 오는 장소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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