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를 한곳에, 러시아 카잔의 만교 사원(모든 종교의 사원)

러시아 카잔의 만교 사원. 여러 종교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외관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 카잔의 만교 사원과 여러 종교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외관

By exlex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러시아 카잔의 볼가강변에는 어느 한 종교의 건물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물이 있다. 러시아 정교회를 연상시키는 둥근 돔 옆으로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트가 솟아 있고, 그 사이로 유대교와 불교, 가톨릭 등 여러 종교와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건축 요소가 뒤섞여 있다.

서로 다른 종교의 건축물이 한데 합쳐진 듯한 이곳은 바로 ‘만교 사원(Храм всех религий, 모든 종교의 사원)’이다.

한 예술가가 시작한 사원

이 독특한 건축물을 만든 사람은 카잔 출신의 예술가이자 조각가 일다르 하노프(Ildar Khanov, 1940~2013)다. 동양의 종교와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하노프는 인도와 티베트 등을 여행했고, 여러 문화와 종교를 하나의 건축물에 담겠다는 구상을 발전시켰다. 그는 1994년 카잔 외곽 스타로예 아락치노(Старое Аракчино)에 있던 가족의 집을 바탕으로 건축을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거대한 건물을 지을 자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노프는 자신의 작품을 팔아 공사비를 마련했고, 그의 구상에 공감한 사람들과 지역의 후원도 이어졌다. 그렇게 건물은 오랜 시간 조금씩 모습을 갖춰갔다.

만교 사원 외벽에 자리한 불상과 그 뒤로 보이는 다채로운 장식들

카잔 만교 사원 외벽에 자리한 불상과 다채로운 장식

By MBH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하노프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특정한 신을 모시는 새로운 종교의 사원이 아니었다. 그의 구상은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 불교뿐 아니라 현존하거나 과거에 존재했던 여러 신앙을 포함해 16개 종교의 건축적 상징을 하나의 복합공간에 담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물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종교시설처럼 보인다.

카잔 만교 사원 내부에는 고대 이집트 신들과 상형문자 모티프들도 배치되어 있다.

카잔 만교 사원 내부를 장식한 고대 이집트 신들과 상형문자 모티프

By Sergey A. Demidov – Own work, CC BY 4.0, wikimedia commons.

양파 모양의 돔과 첨탑, 미나레트와 동양적인 장식이 한 건물에서 이어지고, 내부에도 여러 종교와 문화를 주제로 한 공간이 마련됐다. 건물 곳곳에는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회화와 조각이 더해졌다.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곳에서는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모든 종교의 사원’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으면 여러 종교의 신자들이 한곳에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하는 장소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정식 예배나 종교의식을 거행하지 않는다.

만교 사원 내부에는 회화와 조각 작품 전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카잔 만교 사원 내부에 마련된 회화와 조각 작품 전시 공간

By MBH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건물은 교회도, 모스크도, 시나고그도 아니다. 하노프가 구상한 것은 서로 다른 종교를 하나로 합쳐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곳을 여러 종교와 문화가 함께 표현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자 문화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만교 사원 내부 한편을 힌두교 신 크리슈나와 라다의 벽화가 차지하고 있다.

카잔 만교 사원 내부를 장식한 힌두교 신 크리슈나와 라다의 벽화

By Sergey A. Demidov – Own work, CC BY 4.0, wikimedia commons.

그래서 ‘사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기능은 일반적인 종교시설과 상당히 다르다. 내부에는 종교와 문화를 주제로 한 공간뿐 아니라 전시와 공연 등을 위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에 가까운 셈이다.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한 건축가

하노프는 자신의 구상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는 2013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건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가족이 작업을 이어받았고, 동생 일기즈 하노프(Ilgiz Khanov)를 중심으로 건물을 계속 확장하고 보완해왔다.

2010년 가브둘라 투카이 타타르스탄 공화국 국가상 시상식에 참석한 일다르 하노프

만교 사원을 설계하고 건축한 러시아 예술가 일다르 하노프(2010년)

By Tatarstan.ru, CC BY 4.0, wikimedia commons.

시련도 있었다. 2017년에는 큰 화재가 발생해 건물 일부가 심하게 훼손됐고 이후 복구 작업이 진행됐다.

현재도 이곳은 수백 년 전에 완성된 전통적인 종교 건축물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처음부터 완성된 설계대로 한꺼번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구상에서 시작해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만들어져온 진행형 건축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카잔이었을까?

이 건물이 자리 잡은 카잔이라는 도시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러시아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수도인 카잔은 볼가강 유역의 오래된 도시로, 역사적으로 타타르계 이슬람 문화와 러시아 정교회 문화가 함께 자리해왔다. 도시를 대표하는 카잔 크렘린 안에서도 이슬람 사원과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함께 볼 수 있다.

그런 도시에서 하노프가 ‘모든 종교의 사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배경이 된다. 다만 그가 카잔의 종교적 공존을 표현하기 위해 이곳에 건물을 세웠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이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여러 종교와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하노프 개인의 세계관에서 출발한 작품이었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한자리에

정교회 돔과 이슬람 미나레트 등 다양한 종교 건축 요소가 공존하는 카잔 만교 사원의 외관.

여러 종교의 건축양식과 다채로운 돔·첨탑이 어우러진 카잔 만교 사원의 외관

By MBH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카잔의 만교 사원을 마주하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낯선 건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요소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한 공간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의 차이를 지우지 않은 채 한자리에 담아냈다는 것, 그것이 카잔의 만교 사원을 특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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