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검은 바다, 흑해

유럽의 동쪽 끝과 아시아의 서쪽 끝이 맞닿는 곳에 흑해(Black Sea)가 있다. 이 바다에서는 유럽과 아시아, 유라시아 초원과 지중해 세계가 오랫동안 만나고 갈라졌다.

여섯 나라가 둘러싼 바다

흑해 북쪽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동쪽에는 조지아, 남쪽에는 튀르키예, 서쪽에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가 자리한다. 여섯 나라가 해안선을 나누고 있어 어느 한 지역에만 속하는 바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흑해를 둘러싼 주변 국가 및 주요 항구를 표시한 지도

흑해의 위치와 주변 국가 및 주요 항구(보스포루스 해협과 케르치 해협 포함)

By User:NormanEinstein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지도에서 보면 흑해는 육지에 갇힌 거대한 호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남쪽의 보스포루스 해협(Bosporus Strait)을 지나 마르마라해(Sea of Marmara)로, 다시 다르다넬스 해협(Dardanelles Strait)과 에게해를 거쳐 지중해로 이어진다. 북동쪽으로는 케르치 해협을 통해 아조프해와 연결된다.

대양으로 나가는 물길이 좁은 해협에 집중돼 있어 바깥 바다와의 물 교환은 제한적이다. 이러한 지리적 구조는 흑해만의 독특한 해양 환경을 만들어냈다.

검은 바다라는 이름

흑해의 물이 언제나 검게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이름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두고는 여러 설명이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흑해를 ‘폰토스 악세이노스’(Póntos Áxeinos, Πόντος Ἄξεινος)라고 불렀다. 그리스어로는 ‘손님을 반기지 않는 바다’로 이해되는 이름이지만, 고대 이란계 언어에서 ‘어두운 빛깔’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리스인들이 낯선 이름을 자신들의 언어에 맞게 받아들이면서 ‘불친절한 바다’라는 의미가 덧씌워졌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바라본 흑해 연안의 풍경.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바라본 흑해 연안의 풍경.

By Юлія Рядченко – Own work, CC BY 4.0, wikimedia commons.

고대인들에게 흑해는 항해가 쉽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를 알기 어려운 바다였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이 연안 곳곳에 정착하고 교역망을 넓힌 뒤에는 정반대 뜻을 가진 ‘폰토스 에우크세이노스’(Póntos Eúxeinos, Πόντος Εὔξεινος), 곧 ‘손님을 반기는 바다’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됐다. 바다의 이름이 달라진 것은 물빛이 변해서가 아니라, 그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깊은 바다에 형성된 무산소층

흑해의 가장 특별한 모습은 수면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다. 다뉴브강과 드네프르강을 비롯한 여러 강이 흘러들면서 표층에는 염분이 비교적 낮고 가벼운 물이 형성된다. 반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들어오는 지중해 계통의 바닷물은 염분이 높고 무거워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밀도가 다른 두 물층은 쉽게 뒤섞이지 않는다.

식물플랑크톤과 강에서 유입된 퇴적물이 푸른 소용돌이 무늬를 만든 흑해의 위성사진, 2004년.

식물플랑크톤과 하천 퇴적물이 이룬 푸른 소용돌이(흑해 위성사진, 2004년)

By Jeff Schmaltz,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표면 가까이에는 산소가 공급되어 물고기와 플랑크톤이 살아가지만 밀도가 다른 물층이 쉽게 섞이지 않아 산소는 깊은 바다까지 전달되지 못한다. 그 결과 대체로 수심 약 150m 아래에는 흑해 전체 물 부피의 약 85~90%를 차지하는 영구적인 무산소층(Anoxic Zone)이 형성돼 있다. 이곳에서는 미생물이 황산염을 이용해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황화수소(H₂S)가 생성되며, 대부분의 해양 생물은 살아갈 수 없다.

이 특이한 환경은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시간 저장고 역할도 했다. 산소가 없는 깊은 수역에서는 목재를 분해하는 생물의 활동이 크게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흑해 해저에서는 고대와 중세의 목조 난파선이 돛대와 선체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하게 발견되기도 한다. 바다 위의 역사는 사라졌지만 깊은 물속에서는 그 흔적이 오랫동안 썩지 않고 남은 것이다.

낯선 바다에서 문명의 통로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흑해는 처음에는 세계의 변방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 무렵까지 연안 곳곳에 그리스계 정착지와 도시가 세워지면서, 흑해는 지중해 세계와 유라시아 내륙을 연결하는 교역로로 바뀌었다.

북쪽 연안과 내륙에서 나온 곡물과 목재, 금속과 여러 물자가 지중해 세계로 이동했고, 그리스의 도자기와 포도주는 반대 방향으로 건너갔다. 흑해 연안의 도시들은 서로 다른 지역의 사람과 상품이 만나는 접점이 되었다.

쥐라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크림반도의 피올렌트곶

약 1억 6천만 년 전 쥐라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크림반도의 피올렌트곶

By © Vyacheslav Argenberg, CC BY 4.0, wikimedia commons.

이후 로마와 비잔티움,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을 비롯한 여러 세력이 흑해의 항구와 해협을 두고 경쟁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보스포루스 해협은 흑해의 역사와 전략적 가치를 좌우하는 좁은 문이었다.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가려는 배는 이스탄불 앞을 지나는 이 해협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흑해와 마르마라해, 에게해를 잇는 튀르키예 해협의 위치.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붉은색 표시)과 에게해

By User:Interiot, CC BY-SA 2.5, wikimedia commons.

시대는 바뀌었지만 흑해의 전략적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이 바다는 곡물과 에너지, 각종 화물이 오가는 주요 항로이면서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공간이다. 흑해를 둘러싼 긴장은 최근에 갑자기 생긴 현상이 아니라, 지리적 조건 위에 오랜 역사가 겹치며 만들어진 결과에 가깝다.

열려 있으면서 닫힌 바다

사실 흑해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어느 한 가지가 아니다. 좁은 해협을 통해 지중해와 이어지는 지리, 서로 다른 밀도로 인해 뒤섞이지 않는 물, 깊은 곳에 형성된 거대한 무산소층이 흑해만의 환경을 만들었다. 그 해안을 따라서는 고대의 교역도시가 성장했고, 여러 제국이 항구와 바닷길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흑해의 자연과 역사는 서로 무관하지 않다. 바닷물의 흐름을 제한한 좁은 통로는 독특한 해양 환경을 만들었고, 동시에 흑해의 경제적·전략적 가치를 높였다. 결국 흑해를 이해하는 열쇠는 바깥 세계와 연결돼 있으면서도 완전히 열려 있지 않은 그 독특한 지리적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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