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파시즘이라고 하면 먼저 독재와 전쟁, 인종차별, 대량학살 등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파시즘은 단순히 권력을 장악한 독재 체제가 아니라, 국가를 개인보다 우위에 두는 새로운 정치관을 제시하려 한 이념이었다.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하고, 국민을 모두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키려 했다. 따라서 파시즘을 이해하려면 독재와 폭력이라는 결과뿐 아니라 사람들이 왜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였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시즘이라는 이름의 유래
파시즘(Fascism)이라는 이름은 고대 로마의 파스케스(Fasces)에서 유래했다. 파스케스는 여러 개의 막대기를 묶고 가운데에 도끼를 꽂은 상징물로, 로마의 행정관이 권위를 나타낼 때 앞세우던 표장이었다.

파시즘의 명칭이 유래한 고대 로마의 상징물 ‘파스케스’.
By Jérôme BLUM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막대기 한 개는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를 묶으면 쉽게 꺾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상징했고, 도끼는 국가 권력을 의미했다. 무솔리니는 이 상징에서 이름을 따 자신의 정치운동을 ‘파쇼(Fascio, 결속·단결)’라 불렀고, 여기에서 ‘파시즘(Fascism)’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는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과 권위를 현대 이탈리아에서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따라서 파시즘은 미래를 향한 혁명이라기보다 잃어버린 과거를 회복하려는 정치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또한 파시즘은 일관된 철학 체계를 갖춘 순수한 이념이라기보다 여러 사상을 필요에 따라 결합한 혼성적 이념이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중심에 두면서도 사회주의의 대중동원 방식이나 자유주의 정치의 일부 기법 등을 선택적으로 흡수하였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파시즘은 국가마다 서로 다른 형태로 발전했으며, 각국의 지도자들은 자국의 정치·사회적 환경에 맞추어 정책과 선전 방식을 조정하였다.
국가를 최고의 가치로 만들다
파시즘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는 점이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정치의 출발점으로 본다면, 파시즘은 국가를 모든 가치의 기준으로 보았다.

군 사열 중인 베니토 무솔리니(가운데)와 아돌프 히틀러(왼쪽)
By Unknown,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모든 것은 국가 안에 있고, 국가에 반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국가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 한 문장은 파시즘의 국가관을 가장 잘 보여 준다.
파시스트들에게 국가는 단순한 행정기구가 아니었다. 국가는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공동체였으며, 개인의 생활뿐 아니라 경제와 교육, 문화, 심지어 종교까지도 국가의 목표에 맞게 조직되고 통제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개인은 독립된 권리의 주체라기보다 국가 공동체의 일부로 이해되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희생은 가장 높은 덕목으로 선전되었고, 개인의 자유는 국가의 목적에 종속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새로운 인간 만들기
파시즘은 정치 제도만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국가에 헌신하는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학교 교육과 선전 활동뿐 아니라 청년 조직과 대중행사를 통해 국가에 대한 충성과 소속감을 지속적으로 주입했다. 이탈리아의 발릴라(Opera Nazionale Balilla)와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가 대표적인 청년 조직이었다.

1930년, 폴라(Pola) 조선소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환영을 받는 베니토 무솔리니.
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성인이 된 뒤에도 이탈리아의 도폴라보로(Opera Nazionale Dopolavoro)와 같은 조직을 통해 스포츠와 문화, 여가 활동을 국가가 조직했으며, 노동조직과 군사훈련, 집단행사 등을 통해 국가에 대한 복종과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려 했다.
이처럼 국가가 개인의 삶 전반을 통제하려는 성향을 설명하기 위해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는 개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물론 현실에서 국가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완벽하게 통제한 것은 아니었지만,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하는 사회를 지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먼저 몰락을 이야기하다
파시스트 운동은 현재를 쇠퇴와 혼란의 시대로 묘사하는 데서 출발했다. 민족은 위대한 과거를 잃었고, 무능한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국가가 굴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서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더욱 큰 힘을 얻었다. 이탈리아는 승전국이었지만 기대했던 영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컸고, 독일은 패전과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 그리고 이어진 경제 위기로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특히 1929년 세계 대공황은 독일 사회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파시스트들은 이러한 현실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국가가 몰락했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강한 국가만이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역사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러한 이야기와 미래상을 믿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민족 재생(National Regeneration)이라는 구호였다. 파시스트들은 민족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민들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정치적으로 결집시켰다.
공포와 희생양의 정치
몰락의 서사는 반드시 위협을 필요로 했다. 파시스트 정권은 내부와 외부의 적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사회 전체에 긴장감을 조성했다. 국내에서는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노동운동가 등 반대 세력이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동시에 공산주의 혁명이 유럽 전체를 뒤덮을 것이라는 공포도 지속적으로 선전되었다.

1930년경 나치 선전 엽서. 하켄크로이츠와 반공·반유대주의를 결합한 선전물
By Uncredited illustrat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특히 나치 독일에서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가 이념의 핵심 요소였다. 유대인은 경제난과 사회 불안, 국가의 쇠퇴를 초래한 존재로 왜곡되었고, 이러한 선전은 결국 인종차별 정책과 집단학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협의 실제 규모보다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였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강력한 국가와 강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기 쉬웠다.
강한 지도자의 등장
민족이 몰락했고 외부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그다음에는 국가를 구할 지도자가 등장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무솔리니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자신을 국가를 재건할 지도자로 내세웠다. 민주주의의 복잡한 절차와 정당 간의 타협은 국가를 약하게 만든다고 비판했고, 위기 상황에서는 강력한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도자 숭배는 파시즘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국가마다 구체적인 모습은 달랐지만, 지도자를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대표하는 존재로 묘사하는 경향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파시즘이 남긴 교훈
파시즘은 처음부터 폭력과 학살의 모습으로만 등장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국가의 쇠퇴를 설명하는 이야기에서 출발했고, 국민에게 위기의식을 심어 주었으며, 공동의 적을 만들고, 강력한 지도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과정을 거쳐 성장했다.
결국 파시즘의 핵심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발상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점차 국가의 목적에 종속되었고, 비판과 다양성은 공동체를 해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파시즘의 역사가 보여 주는 것은 자유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의 안전과 민족의 부흥이라는 명분 아래 자유가 조금씩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렇기에 파시즘은 단지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가 어떻게 약화될 수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