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는 정말 사자와 싸웠을까 ᅳ 최초로 발견된 직접 증거

로마 콜로세움에서 사자와 싸우는 검투사의 모습

로마 콜로세움에서 사자와 싸우는 검투사의 모습

By French Painting,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고대 로마의 검투사(gladiator)들은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영화와 소설에서도 익숙하게 등장하는 장면이지만, 지금까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모자이크와 벽화, 고대 문헌에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고고학자들이 검투사의 유골에서 사자의 이빨 자국을 확인하면서, 이러한 기록이 실제였음을 보여 주는 최초의 직접 증거가 발견됐다.

검투사 묘지에서 발견된 이상한 유골

아일랜드 메이누스 대학교(Maynooth University)의 팀 톰슨(Tim Thompson) 교수 연구팀은 영국 요크(York) 인근의 로마 시대 공동묘지를 조사했다. 이곳에서는 약 1,800년 전의 유해 80여 구가 발견됐는데, 대부분이 18~45세의 젊은 남성이었다.

유골에서는 반복적인 전투로 생긴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 골절과 얼굴뼈 외상이 다수 확인됐다. 또한 많은 유골에는 이미 치유된 상처가 남아 있었으며, 약 70%는 참수된 상태로 매장되어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일반 공동묘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으로, 연구진은 이곳이 검투사들의 공동묘지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한 구의 유골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이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골반뼈 양쪽에 여러 개의 작은 함몰 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자의 흔적은 어떻게 확인됐을까?

연구진은 상처의 모양만 보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다양한 대형 육식동물의 흔적과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유골을 3차원 스캐너로 기록한 뒤, 현대 동물원에서 확보한 사자와 표범 등 대형 고양잇과 동물의 이빨 자국을 비교하는 법의학적 분석을 진행했다.

터키 키비라에서 발견된 검투사와 맹수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부조

터키 키비라(Kibyra)에서 발견된 검투사와 맹수의 전투 장면 부조

By Dosseman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그 결과 상처의 모양과 깊이, 간격이 사자의 이빨 자국과 가장 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상처 주변에는 뼛조각이 안쪽으로 눌려 들어간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생긴 손상이 아니라 뼈에 아직 연부조직이 남아 있던 죽음 무렵에 생긴 상처임을 보여 준다.

흥미로운 점은 상처가 목이 아니라 골반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사자가 검투사를 정면으로 공격한 흔적이라기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나 사망 직후 시신을 물거나 끌어당기면서 생긴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로마 제국의 거대한 검투 경기

이번 발견의 의미는 한 사람의 죽음을 밝힌 데만 있지 않다. 로마 시대 검투 경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의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증거가 추가됐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그동안 검투사와 사자의 싸움은 모자이크와 도자기, 문헌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실제 사람의 뼈에서 사자의 이빨 자국을 확인함으로써 유럽에서 처음으로 검투사와 맹수의 전투를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고고학 증거를 제시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이 유골이 발견된 곳이 오늘날의 영국이라는 점이다. 당시 영국은 로마 제국의 변방이었지만, 사자를 경기장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북아프리카 등에서 맹수를 배와 마차로 운반하고, 사육사와 먹이까지 함께 이동시켜야 했다. 이번 발견은 로마 제국이 맹수를 제국의 변방까지 운반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물류망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전설이 역사로 바뀌는 순간

고고학은 오래된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유물과 유해를 통해 실제 있었던 일을 하나씩 확인해 나간다.

이번 연구 역시 오랫동안 전설처럼 여겨졌던 검투사와 사자의 전투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보여 준 사례다. 검투사의 골반에 남은 작은 이빨 자국은 약 1,800년 전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오락 문화와 로마 제국의 거대한 규모를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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