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주의(Anarchism)에 대한 오해와 진실

벽에 그려진 아나키즘(A) 상징 그래피티

프랑스 세브르의 벽에 그려진 아나키즘(A) 상징 그래피티

By An anarchist in Sèvres, CC0, wikimedia commons.

무정부주의란 무엇인가

‘무정부주의'(Anarchism)만큼 오해를 많이 받은 정치사상도 드물다. 오늘날 이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폭탄 테러와 정치적 암살, 혼란과 무질서를 먼저 떠올린다. 실제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일부 무정부주의자들(Anarchists)이 폭력적인 행동을 선택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정부주의의 여러 흐름 가운데 하나였을 뿐, 그 사상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무정부주의는 단순히 국가를 없애자는 주장이 아니라, 국가 권력은 왜 존재하는가, 인간은 강제적인 권위 없이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묻는 정치사상이다.

1848년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자 안셀름 벨레가리그(Anselme Bellegarrigue)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무정부는 질서이며, 정부는 내전이다.”

프랑스의 연방주의적 무정부주의자 안셀름 벨레가리그의 얼굴 사진

프랑스의 연방주의적 무정부주의자 안셀름 벨레가리그

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얼핏 역설처럼 들리는 이 문장은 무정부주의의 핵심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가 있어야 질서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자들은 오히려 국가 권력이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고 갈등을 확대한다고 보았다. 그들이 꿈꾸었던 사회는 무질서가 아니라, 강제적인 권력이 없어도 사람들이 자발적인 협력과 합의를 통해 유지하는 새로운 질서였다.

무정부’는 정말 무질서를 뜻할까?

오늘날 ‘무정부’라는 말은 흔히 법과 질서가 사라진 혼란스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아나키(Anarchy)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다르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권위나 통치자가 없는 상태’를 뜻한다. 다시 말해, 본래의 의미는 무질서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나 지배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물론 이 단어가 처음부터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이전 유럽에서 아나키는 정치적 비난의 표현이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급진파인 앙라제(Enragés)를 비판하는 말로 쓰였으며, 정부와 법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일부 사상가들은 이 용어를 스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국가 권력이 없는 사회를 혼란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들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가는 사회로 해석했고, 여기서 근대 무정부주의가 출발했다.

국가는 왜 정당한 권력이 아니라고 보았을까?

무정부주의의 출발점은 권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였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누구도 다른 사람을 지배할 권리를 타고나지 않았으며, 국가 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보았다. 그들의 시각에서 국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을 가진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게 되고, 결국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쉽다고 여겨졌다.

무정부주의가 추구한 자유는 정치적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미국의 무정부주의자 엠마 골드먼(Emma Goldman)은 무정부주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종교의 지배로부터 인간 정신의 해방, 재산의 지배로부터 인간 육체의 해방, 정부의 족쇄와 구속으로부터의 해방.”

무정부주의 운동가 엠마 골드먼의 얼굴 사진

무정부주의 운동가이자 작가였던 엠마 골드먼

By Takuma Kajiwara,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이처럼 무정부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인간을 얽매는 권위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많은 무정부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본래 협력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국가의 강제력이 없어도 사람들은 자발적인 협력과 합의를 통해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으며, 오히려 위계적인 권력 구조가 인간의 자율성과 연대 의식을 훼손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무정부주의에서 말하는 ‘무정부’는 혼란이 아니라 자생적인 질서를 의미했다.

왜 무정부주의는 폭력의 상징이 되었을까?

오늘날 무정부주의가 폭력과 동일시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혁명적 무정부주의(Revolutionary Anarchism)의 등장에 있다.

러시아의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Mikhail Bakunin)은 국가가 인간에게 미치는 해악이 너무 크기 때문에 폭력을 포함한 수단으로 국가를 전복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파괴의 충동은 또한 창조의 충동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압축했다.

이러한 사상은 일부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국가 지도자를 암살하거나 폭탄을 사용하는 행동에 의한 선전(Propaganda of the deed)이라는 전략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극적인 행동을 통해 국가 권력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혁명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프랑스 대통령 사디 카르노(Sadi Carnot),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Umberto I),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등이 이러한 공격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나 혁명적 무정부주의는 여러 흐름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같은 시대에도 많은 무정부주의자들은 폭력보다 교육, 자치 공동체, 노동운동, 상호 협력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다. 무정부주의를 폭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그 역사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무정부주의를 발전시킨 사상가들

근대 무정부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는 영국의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이 꼽힌다. 그는 1793년 출간한 『정치적 정의에 관한 탐구(Enquiry Concerning Political Justice)』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는 존재이며, 작은 자치 공동체 안에서 국가의 강제 없이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을 더욱 발전시킨 인물이 프랑스의 사회사상가 피에르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이다. 그는 스스로를 처음으로 ‘무정부주의자’라고 부른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국가 없는 사회를 혼란이 아닌 새로운 질서로 이해했다.

무정부주의자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의 초상 몽타주

무정부주의를 대표하는 세 사상가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의 초상 몽타주

By Artistosteles, Endika Amundarain,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프루동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말은 “재산은 도둑질이다.”였다. 이 문장은 모든 사유재산을 부정한 선언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그의 비판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노동하지 않고 타인의 노동에서 이익을 얻는 재산권을 문제 삼았으며, 개인이 자신의 노동을 위해 토지와 도구를 사용하는 점유(Possession)는 자유인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보았다.

그가 제안한 상호주의(Mutualism)는 국가의 통제가 아니라 자율적인 공동체와 생산자들이 상호 이익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교환하고 협력하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았다.

무정부주의는 이후 여러 갈래의 사상으로 발전했다.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는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우선시했고, 바쿠닌은 혁명적 집단주의를 주장했으며, 러시아의 표트르 크로포트킨(Pyotr Kropotkin)은 협동과 상호부조를 바탕으로 한 아나키스트 공산주의를 발전시켰다. 따라서 무정부주의는 하나의 통일된 이론이라기보다 다양한 사상들이 공존하는 폭넓은 사상 전통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현실에서 이루어진 무정부주의의 실험

20세기 초 여러 갈래의 무정부주의는 노동운동과 결합하면서 아나코-생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으로 발전했다. 이 사상은 노동조합을 사회 변혁의 중심으로 보고, 노동자들이 생산과 사회 운영을 직접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6년 바르셀로나 노동자 집회. 노동자 연대의 깃발이 보인다.

1936년 바르셀로나 노동자 집회. 「노동자 연대(Solidaridad Obrera)」 깃발.

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무정부주의가 가장 큰 규모로 현실에서 실험된 사례는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이어진 스페인 내전이었다. 카탈루냐에서는 노동자들이 철도와 공장을 직접 운영했고, 농촌에서는 공동체를 조직해 토지를 함께 경작하고 생산물을 공동으로 분배했다. 국가 권력을 대신해 자율적인 공동체가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지를 실제로 시험한 역사적 사례였다.

그러나 이 실험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스페인 내전의 패배와 함께 무정부주의 운동도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유럽에서는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부상 속에서 급속히 쇠퇴했다.

무정부주의가 남긴 질문

무정부주의는 현실 정치에서 주류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이 사상이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국가 권력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인간은 강제적인 권위 없이도 협력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자유와 질서는 반드시 서로 대립하는가?

무정부주의는 정부가 없는 사회를 막연히 꿈꾼 사상이 아니라, 권력과 자유의 관계를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 정치철학이었다. 현실에서 여러 한계를 드러냈음에도 이러한 질문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바로 그 점이 무정부주의가 오늘날에도 정치철학과 사회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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