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 73초 만의 참사, 우주왕복선 챌린저(Space Shuttle Challenger)

1986년 1월 28일, 발사 73초 만에 공중에서 붕괴하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1986년 1월 28일, 발사 73초 만에 공중에서 붕괴하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By Kennedy Space Cente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1986년 1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발사대를 떠났다. 그러나 이륙한 지 불과 73초 뒤, 하늘로 솟아오르던 챌린저호가 화염과 연기에 휩싸이며 공중에서 붕괴했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된 우주 비행은 순식간에 충격적 참사로 바뀌었다.

우주로 향한 챌린저호

일곱명의 승무원.  엘리슨 오니즈카, 크리스타 매콜리프, 그레고리 자비스, 주디스 레스닉, 마이클 스미스, 딕 스코비, 로널드 맥네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STS-51-L 임무 승무원 7명의 공식 단체 사진(1985. 11. 15.)

By NASA,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챌린저호는 NASA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투입된 우주왕복선 가운데 하나였다. 이날 챌린저호에는 모두 7명의 승무원이 탑승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중의 관심을 끈 인물은 뉴햄프셔의 고등학교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Christa McAuliffe, 사진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였다.

매콜리프는 NASA의 ‘우주 교사 프로젝트(Teacher in Space Project)’를 통해 1만 1천 명이 넘는 지원자 가운데 선발됐다. 우주에 간 최초의 교사가 되어 궤도상에서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교사가 우주로 간다는 사실은 큰 화제가 됐고, 평소 우주개발에 관심이 없던 일반인들에게까지 챌린저호의 임무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발사 73초 만에 벌어진 참사

1986년 1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 거대한 화염을 뿜으며 상승하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1986년 1월 28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By NASA,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발사 73초 뒤 비행체가 공중에서 붕괴했고, 탑승했던 승무원 7명 모두 목숨을 잃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오른쪽 고체 로켓 부스터(SRB)의 접합부를 밀폐하는 O링(O-ring)의 기능 상실이었다.

발사 당일 기온은 매우 낮았다. 추위로 인해 고무 재질의 O링이 정상적으로 밀폐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접합부 사이로 고온의 연소 가스가 새어나왔다. 이 가스가 외부 연료탱크와 주변 구조물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켰고, 결국 상승 중이던 비행체가 공중에서 붕괴했다.

따라서 흔히 ‘챌린저호 폭발 사고’라고 부르지만, 기술적으로는 단순한 폭발이라기보다 여러 구조물이 손상되면서 비행체가 공중에서 붕괴한 사고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위험을 경고한 기술자들

챌린저호 참사가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사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발사 전에 이미 나왔다는 점이다.

고체 로켓 부스터 제작업체인 모턴 사이오콜(Morton Thiokol)의 기술자들은 낮은 기온에서 O링의 밀폐 성능이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발사 전날에는 추운 날씨를 이유로 발사를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업체 측의 입장은 바뀌었고, 결국 발사는 예정대로 승인됐다.

사고 후 설치된 로저스 위원회(Rogers Commission)는 O링이라는 기술적 문제뿐 아니라 발사 결정 과정과 NASA 내부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챌린저호 참사는 단순히 작은 부품 하나가 고장 나서 일어난 사고만은 아니었다. 위험 신호가 존재했음에도 그것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조직적 실패이기도 했다.

73초가 남긴 교훈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 세워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희생자 추모비

알링턴 국립묘지에 세워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희생자 추모비

By Dudva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챌린저호 사고는 우주개발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특히 사고 장면이 영상으로 생생하게 기록되고 방송되면서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사고 이후 미국의 우주왕복선 비행은 중단됐다. 사고 원인과 NASA의 의사결정 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우주왕복선의 설계와 안전 관리 절차도 재검토됐다. 우주왕복선이 다시 비행한 것은 1988년 9월이었다.

아무리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도 작은 기술적 결함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험을 경고하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일정이나 조직의 목표보다 뒤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챌린저호 참사는 기술의 실패인 동시에, 위험을 어떻게 판단하고 전달하며 그에 따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를 보여준 뼈아픈 사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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