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레오 10세에게 선물된 코끼리 안노네를 묘사한 르네상스 시대 프레스코화.
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과 교황청으로 유명한 이곳에는 뜻밖에도 한 마리의 코끼리에 얽힌 이야기가 남아 있다. 주인공은 16세기 초 교황 레오 10세의 사랑을 받았던 코끼리 안노네(Annone)다.
포르투갈 국왕이 교황에게 보낸 특별한 선물
1514년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는 교황 레오 10세에게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보냈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으로 진출하며 유럽의 대표적인 해양 강국으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당시 마누엘 1세가 로마에 파견한 사절단은 여러 진귀한 선물을 가져왔는데, 그중에서도 코끼리 안노네는 단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바티칸 도서관에는 이 사절단과 안노네의 도착을 기념해 1514년 교황 레오 10세가 발행한 금화도 남아 있다. 그만큼 코끼리의 등장은 당시 교황청에서도 특별한 사건이었다.
안노네는 아시아코끼리였으며, 당시 자료에서는 흰 코끼리로 묘사되어 있다. 아시아에서 포르투갈을 거쳐 로마까지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를 사로잡은 코끼리
16세기 유럽에서 살아 있는 코끼리를 직접 보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때문에 안노네가 로마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안노네는 행렬과 공개 행사에 등장했고, 곧 교황 레오 10세가 각별히 아끼는 동물로 알려졌다.
당시의 코끼리는 단순한 구경거리만은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데려온 희귀한 동물은 이를 보낼 수 있는 군주의 권력과 부, 해외 진출을 과시하는 외교적 선물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안노네는 당시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던 포르투갈과 교황청의 관계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라파엘로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코끼리 안노네의 16세기 소묘.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642290
로마 시민들의 관심뿐 아니라 예술가들의 관심도 컸다. 오늘날에도 안노네의 모습은 라파엘로와 관련된 소묘 등을 통해 전해진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역시 안노네가 라파엘로의 그림을 통해 알려져 있다고 설명한다.
너무 짧았던 로마 생활
그러나 안노네의 로마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안노네는 로마에 도착한 지 약 2년 뒤인 1516년에 죽었다. 당시 기록에는 병에 걸린 안노네를 치료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노네의 죽음은 교황에게도 큰 슬픔을 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은 안노네를 기리도록 했고, 그의 사체는 바티칸에 묻혔다.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따르면 안노네의 유해는 지금도 당시 매장된 바티칸의 뜰 아래에 남아 있다고 한다.

1539년경 프란시스코 드 올란다가 그린 코끼리 안노네와 묘비명
By Francisco Orlando,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코끼리가 보여주는 대항해시대의 한 장면
안노네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교황이 코끼리를 키웠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15~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유럽 왕실에는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동물과 물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끼리 같은 희귀 동물은 권력자들 사이에서 외교적 선물이 되었고, 먼 세계에 대한 유럽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누엘 1세가 교황에게 안노네를 보낸 것도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마누엘 1세는 안노네 이후에도 교황에게 또 다른 희귀 동물을 보내려 했다. 그 동물이 바로 1515년 유럽에 도착해 알브레히트 뒤러의 유명한 목판화로 남게 된 인도코뿔소였다. 코뿔소는 로마로 향하던 배가 난파하면서 결국 교황에게 살아 있는 모습으로 전달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