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과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이름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나라가 시대에 따라 이름을 바꾸며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로마 제국(Imperium Romanum)과 신성 로마 제국(Sacrum Romanum Imperium)은 시대와 중심 지역, 주민과 정치제도가 서로 달랐다. 고대 로마 제국은 지중해를 둘러싼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반면 신성 로마 제국은 오늘날의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중부 유럽에 자리했다.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때와 신성 로마 제국이 형성된 때 사이에는 약 500년의 간격도 있었다.
476년, 로마 제국은 사라졌을까?
로마 제국은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가 죽은 뒤 동서의 두 황제가 각기 다른 지역을 통치하는 체제로 굳어졌다. 처음부터 완전히 별개의 두 나라로 갈라졌다기보다 하나의 제국을 두 황제가 나누어 다스리는 형태였다.

서로마 제국 멸망 직전인 476년 무렵의 서로마 제국(보라색)과 동로마 제국(분홍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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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의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이동과 침입, 거듭된 내전과 정치적 혼란으로 점차 쇠퇴했다. 476년 게르만인 장군 오도아케르(Odoacer)가 이탈리아를 통치하던 어린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를 폐위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서로마 황제의 통치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다만 로물루스가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은 마지막 서로마 황제였던 것은 아니다. 동로마 제국이 정통 황제로 인정한 율리우스 네포스(Julius Nepos)는 달마티아에서 480년까지 서로마 황제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476년은 서로마 제국의 통치가 이탈리아에서 끝난 해라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서로마 멸망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것이 로마 제국 전체의 멸망을 뜻하지는 않는다.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le)를 수도로 삼은 동로마 제국은 1453년까지 거의 천 년을 더 존속했다.
오늘날에는 이 나라를 흔히 비잔티움 제국(Byzantine Empire)이라고 부르지만,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로마 제국, 자신들을 로마인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서유럽에서 로마 황제가 사라진 뒤에도 동쪽에는 여전히 로마 황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300여 년 만에 되살아난 서유럽의 황제

481년부터 814년까지 프랑크 왕국의 성장과 영토 확장 (편입 시기별 색깔 표시)
By William Robert Shepherd,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서유럽에는 여러 게르만 왕국이 들어섰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나라가 프랑크 왕국(Frankish Kingdom)이었다. 카롤루스 대제(Charlemagne)에 이르러 프랑크 왕국은 오늘날의 프랑스와 독일, 북부 이탈리아에 걸친 광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800년 교황 레오 3세에게 황제관을 받는 카롤루스 대제, 요제프 케렌
By Josef Kehren, 1860,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800년 성탄절, 로마의 옛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레오 3세(Pope Leo III)는 카롤루스에게 황제관을 씌웠다 서로마 황제의 자리가 사라진 지 300여 년 만에 서유럽에 다시 황제가 등장한 것이다. 교황에게는 자신과 서방 교회를 보호해 줄 강력한 군주가 필요했고, 카롤루스에게는 넓은 영토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할 권위가 필요했다. 로마 황제라는 칭호는 양쪽 모두에게 유용했다.
그러나 카롤루스가 고대 로마 제국을 실제로 복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다스린 나라는 프랑크족을 중심으로 세워진 새로운 제국이었다. 계승된 것은 고대 로마의 영토와 행정조직이라기보다 ‘황제’라는 칭호와 로마라는 이름이 지닌 권위였다.
오토 1세와 새로운 제국
카롤루스 대제가 죽은 뒤 프랑크 제국은 여러 나라로 나뉘었다. 그중 동프랑크 왕국을 바탕으로 오늘날 독일 지역의 왕권이 형성되었다.

962년 황제와 황후로 대관하는 오토 1세와 아델하이트
By Lodovico Pogliaghi, 1890,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10세기 독일 왕 오토 1세(Otto I, Otto the Great)는 독일 지역의 여러 제후를 제압하고 북부 이탈리아까지 세력을 넓혔다. 962년 2월 2일, 교황 요한 12세(Pope John XII)는 로마에서 오토 1세의 머리에 황제의 관을 씌웠다.
신성 로마 제국의 시작을 언제로 볼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로마 황제의 칭호가 서유럽에서 부활한 800년을 출발점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이후의 제국으로 이어지는 체제가 확립된 962년을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에서 기원을 찾고, 오토 1세의 대관식부터 신성 로마 제국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11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영역과 주요 구성 지역
By A09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오토 1세의 제국은 독일을 중심으로 북부 이탈리아 등 여러 지역을 포괄했다. 이후 부르고뉴도 제국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하나의 수도와 중앙정부가 모든 지역을 일관되게 다스리는 국가는 아니었다.
제국 안에는 수많은 공국과 백작령, 주교령과 자유도시가 존재했다. 이들은 각자의 법과 지배자를 유지했으며 황제의 권력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처음부터 ‘신성 로마 제국’은 아니었다
오토 1세가 황제로 즉위한 962년부터 이 제국이 곧바로 ‘신성 로마 제국’이라고 불린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주로 ‘로마 제국’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신성 제국’을 뜻하는 라틴어 Sacrum Imperium은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Frederick I Barbarossa) 시대인 1157년에 처음 확인된다. ‘신성 로마 제국’을 뜻하는 Sacrum Romanum Imperium이라는 표현은 1184년에 나타났으며, 13세기 중반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신성’이라는 표현에는 황제권과 제국이 기독교 신앙에 기반을 둔 신성한 질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는 교회와의 관계뿐 아니라 황제권 자체의 종교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황제는 단순히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서유럽 기독교 세계를 보호하는 군주로 여겨졌다.
‘로마’는 제국의 수도가 로마였다거나 주민들이 고대 로마인의 후손이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자신들이 고대 로마 황제의 권위와 보편적인 제국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로마라는 이름은 특정 도시를 넘어 세계를 다스리는 제국의 권위를 상징했다.
황제가 있지만 하나의 나라는 아니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오늘날의 독일처럼 중앙정부가 전국을 직접 통치하는 통일국가가 아니었다. 황제를 정점으로 수많은 제후국과 교회 영지, 자유도시가 느슨하게 결합한 정치 공동체에 가까웠다.
유력 제후들은 먼저 독일 왕이자 황제 후보자인 ‘로마인의 왕’(King of the Romans)을 선출했다. 중세 후기에는 이러한 선출권을 지닌 제후들을 선제후(Prince-elector)라고 불렀다. 1356년 금인칙서(Golden Bull)는 일곱 선제후와 이들의 권리를 명확하게 규정했다.

1308년 하인리히 7세를 로마인의 왕으로 선출하는 일곱 선제후, 1341년 세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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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황제는 이름처럼 제국 전체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었다. 각 지역의 제후 및 도시와 권력을 나누고 끊임없이 협상해야 했다. 황제의 힘이 강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름뿐인 권위에 가까워진 시기도 있었다.
같은 나라는 아니지만 관계는 있었다
로마 제국과 신성 로마 제국은 같은 나라가 아니었다. 중심 영토와 주민, 언어와 정치제도가 달랐으며 고대 로마의 국가조직이 신성 로마 제국으로 그대로 이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두 제국의 관계가 이름뿐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신성 로마 제국은 로마 황제의 권위와 로마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보편 제국의 이상, 기독교 세계를 하나로 묶는다는 관념을 계승하려 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직접적인 연속이라기보다 로마의 후계자를 자처한 중세의 새로운 제국이었던 셈이다.
한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동로마 제국은 고대 로마 제국의 제도와 국가를 실제로 이어 가고 있었다. 동로마 황제의 입장에서 서유럽에 새로 등장한 황제는 또 다른 정통 로마 황제가 아니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경쟁자에 가까웠다.
신성 로마 제국은 962년부터 1806년까지 800년 넘게 존속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의 질서를 뒤흔들던 1806년, 황제 프란츠 2세(Franz II)가 제위를 내려놓으면서 제국도 역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