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178그루로 만든 알메러의 ‘녹색 대성당(De Groene Kathedraal)’

하늘에서 내려다본 네덜란드 알메러의 ‘녹색 대성당(De Groene Kathedraal)’. 178그루의 포플러가 프랑스 랭스 대성당의 평면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178그루의 포플러로 랭스 대성당의 평면을 재현한 알메러의 ‘녹색 대성당’.

By RogAir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녹색 대성당

네덜란드 알메러(Almere)에는 조금 특별한 대성당이 있다. 높은 첨탑도, 돌로 쌓은 벽도,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도 없다. 성당을 이루는 것은 178그루의 살아 있는 나무다.

이곳은 네덜란드 개념미술가 마리누스 뵈젬(Marinus Boezem)이 만든 대지미술 작품 ‘녹색 대성당(De Groene Kathedraal)’이다. 뵈젬은 프랑스의 랭스 대성당을 본떠, 돌 대신 나무로 고딕 성당의 공간을 표현했다.

새 도시를 위한 현대의 대성당

알메러는 네덜란드에서도 비교적 역사가 짧은 도시다. 바다를 막아 만든 플레볼란트의 간척지 위에 20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178그루의 포플러로 조성된 ‘녹색 대성당’의 배치를 보여주는 평면도 석판

알메러 ‘녹색 대성당’의 평면도가 새겨진 석판.

By Tkarcher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뵈젬은 이런 새로운 도시 한가운데에 전통적인 고딕 대성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1978년 ‘고딕 성장 프로젝트(Gothic Growing Project)’를 구상했고, 프랑스 고딕 건축을 대표하는 랭스 대성당의 평면을 살아 있는 나무로 재현하기로 했다.

돌기둥 대신 178그루의 포플러

1987년 4월, 랭스 대성당의 평면에 맞춰 178그루의 이탈리아 포플러가 심어졌다. 나무들은 성당의 평면을 따라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고딕 성당의 기둥을 연상시킨다. 건물의 지붕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하늘이 펼쳐지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성당의 전체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품의 규모는 약 150m×75m에 이른다. 각 나무의 밑동 주변에는 조개껍데기가 깔려 있는데, 이는 지금은 육지가 된 이곳이 과거 바다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장치다.

시간이 작품의 일부가 되다

녹색 대성당은 처음부터 완성된 상태로 존재하는 작품이 아니었다. 포플러가 자라면서 작품의 모습도 함께 변했다. 나무가 높이 자랄수록 성당의 기둥 같은 인상이 강해졌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공간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뵈젬이 포플러를 선택한 데에는 이런 성장 속도와 함께 비교적 짧은 수명도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탈리아 포플러는 빠르게 자라지만 수명이 길지 않다. 그는 나무가 성장하고 늙고 쓰러지는 과정까지 작품의 일부로 보았다.

나무가 없는 또 하나의 성당

녹색 대성당 옆에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만든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는 숲 속에서 랭스 대성당과 같은 형태의 영역만 비워 두었다. 나무를 심어 성당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나무가 없는 빈 공간으로 성당의 형태를 드러낸 것이다.

녹색 대성당 인근의 숲에 조성된 ‘네거티브 대성당’. 나무를 심는 대신 숲의 일부를 대성당 형태로 비워 같은 윤곽을 표현했다.

왼쪽의 ‘네거티브 대성당’과 오른쪽의 나무로 이루어진 ‘녹색 대성당’.

By Supercarwaar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한쪽에서는 나무의 존재가 성당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나무의 부재가 성당을 만든다. 뵈젬은 이렇게 같은 형태를 서로 반대되는 방식으로 보여주면서 존재와 부재, 성장과 소멸이라는 개념을 함께 드러냈다.

사라지는 작품, 그리고 보존의 문제

원래의 구상대로라면 녹색 대성당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쇠퇴하고 사라지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작품이 알메러를 대표하는 대지미술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2018년 폭풍으로 일부 나무가 쓰러진 뒤 뵈젬은 작품을 그대로 사라지게 두기보다 복원해 유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오늘날 녹색 대성당은 보존해야 할 문화적 장소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알메러시와 네덜란드 국유림관리청, 플레볼란트주 등이 협력해 작품을 관리하고 있으며, 각종 행사와 공연은 물론 결혼식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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