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황금 구두: 우리가 몰랐던 그림 형제의 신데렐라

유리구두 이미지

신데렐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리 구두다. 요정 대모가 호박을 마차로 바꾸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신데렐라는 무도회에서 왕자를 만난다. 그러나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마법이 풀리기 시작하고, 황급히 궁전을 빠져나오던 그녀는 계단에 구두 한 짝을 남긴다.

1950년에 개봉한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신데렐라》(Cinderella)는 이 이야기를 전 세계 어린이에게 익숙한 동화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림 형제가 기록한 신데렐라에는 요정 대모도, 호박 마차도 없다. 신데렐라가 신는 구두도 유리 구두가 아니라 황금 구두다. 그 구두에는 동화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잔혹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신데렐라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데렐라와 비슷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해졌다. 따라서 어느 한 작품만을 신데렐라의 유일한 ‘원작’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오늘날 신데렐라의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은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가 1697년에 발표한 《상드리용 또는 작은 유리 구두》(Cendrillon ou la petite pantoufle de verre)와 독일의 야코프 그림(Jacob Grimm)·빌헬름 그림(Wilhelm Grimm)이 기록한 《아셴푸텔》(Aschenputtel)이다.

그림 형제의 《아셴푸텔》은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Kinder- und Hausmärchen)에 처음 수록됐다. 이후 그림 형제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고쳤으며, 오늘날 널리 알려진 형태는 1857년에 나온 제7판이자 최종판이다.

두 작품 모두 계모와 의붓자매들에게 학대받던 소녀가 왕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얻는다는 기본 줄거리를 지닌다. 하지만 주인공을 돕는 존재와 구두의 재질, 악한 인물들이 맞는 결말은 크게 다르다.

유리 구두를 만든 샤를 페로

샤를 페로의 《상드리용 또는 작은 유리 구두》에 삽입된 그림. 신데렐라에게 신발을 신겨보고 있다.

샤를 페로의 《상드리용 또는 작은 유리 구두》 삽화, 1908년.

By Internet Archive Book Images, No restrictions, wikimedia commons.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모습은 대부분 샤를 페로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페로의 작품에는 신데렐라를 무도회에 보내 주는 요정 대모가 등장한다. 요정은 호박을 마차로, 생쥐를 말로 바꾸고 신데렐라에게 화려한 옷과 유리 구두를 마련해 준다.

마법은 자정까지만 지속된다. 두 번째 무도회에서 왕자와 춤을 추던 신데렐라는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달아나다가 유리 구두 한 짝을 떨어뜨린다. 왕자는 그 구두를 단서로 신데렐라를 찾아낸다.

결말도 비교적 온화하다. 신데렐라는 자신을 괴롭힌 두 의붓자매를 용서하고 궁전에서 살도록 해 준다. 나아가 두 사람을 궁정의 귀족들과 결혼시킨다. 1950년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그림 형제의 이야기보다 페로의 판본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요정 대모가 없는 《아셴푸텔》

그림 형제의 《아셴푸텔》 삽화, 월터 크레인, 1882년.

By Walter Crane,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그림 형제의 이야기에서 신데렐라는 ‘아셴푸텔’이라고 불린다. 독일어로 재를 뜻하는 아셰(Asche)에서 나온 이름으로, 아궁이 곁에서 재를 뒤집어쓴 채 살아가는 소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셴푸텔에게는 요정 대모가 없다. 대신 어머니의 무덤에서 자란 개암나무와 그 나무에 찾아오는 흰 새들이 그녀를 돕는다. 아셴푸텔이 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빌면 새는 아름다운 옷과 구두를 내려 준다.

왕궁의 연회는 사흘 동안 계속되고, 아셴푸텔은 날마다 다른 옷을 입고 그곳에 나타난다. 왕자는 정체를 밝히지 않고 사라지는 그녀를 붙잡으려 하지만 번번이 놓친다.

마지막 날 왕자는 궁전 계단에 역청을 발라 둔다. 아셴푸텔은 급히 달아나다가 계단에 구두 한 짝을 남긴다. 그것은 유리 구두가 아니라 황금 구두였다.

구두에 발을 맞추려 한 의붓자매들

왕자는 황금 구두를 들고 주인을 찾아 나선다. 이 구두가 맞는 여성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듣고 첫째 의붓자매가 나서지만, 엄지발가락 때문에 구두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자 계모는 딸에게 칼을 건네며 엄지발가락을 잘라 내라고 한다.

“왕비가 되면 걸어 다닐 필요가 없을 테니까.”

첫째 의붓자매는 발가락을 자르고 고통을 참으며 구두를 신는다. 왕자는 그녀를 신부라고 믿고 말에 태운다. 그러나 어머니의 무덤가에 있는 개암나무를 지나자 그곳에 앉아 있던 두 마리 비둘기가 구두 안에 피가 흐르고 있다고 노래한다.

왕자는 의붓자매의 발을 살펴보고 속임수를 알아챈다. 그는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다른 의붓자매에게 구두를 신겨 보라고 한다.

둘째 의붓자매는 발가락을 구두에 넣는 데 성공하지만 발뒤꿈치가 걸린다. 계모는 이번에도 칼을 건네며 발뒤꿈치 일부를 잘라 내라고 한다. 둘째 역시 살을 잘라 내고 억지로 구두를 신지만, 두 비둘기가 다시 피 묻은 구두를 지적하면서 거짓말이 드러난다.

마침내 아셴푸텔이 나타나 황금 구두를 신는다. 구두가 꼭 맞자 왕자는 그녀가 자신이 찾던 진짜 신부임을 확인한다.

두 눈을 잃은 의붓자매들

이야기는 아셴푸텔이 왕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의붓자매들은 아셴푸텔의 환심을 사고 그녀가 얻은 행복에 편승하려고 결혼식에 참석한다.

비둘기들이 신데렐라 언니들의 눈을 공격하고 있다

신랑과 신부가 교회로 들어갈 때 두 마리 비둘기가 날아와 의붓자매들의 한쪽 눈을 각각 쪼아 버린다. 예식이 끝나고 교회에서 나올 때는 남은 눈마저 쪼아 버린다. 두 사람은 결국 평생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결말은 1812년 초판에는 없었다. 그림 형제가 이야기를 수정하면서 1819년 제2판부터 추가한 장면이다. 이후 1857년 최종판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의붓자매들이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르는 장면도 끔찍하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 기다리는 형벌은 더욱 가혹하다. 그들은 왕비가 되려는 욕망 때문에 스스로 몸을 훼손하고, 거짓으로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려 한 대가로 두 눈까지 잃는다.

옛 동화는 왜 이렇게 잔혹했을까

옛 민담에는 가난과 굶주림, 폭력과 죽음처럼 당시 사람들이 익숙하게 마주하던 현실이 자주 스며들었다. 선과 악의 결과를 분명하게 보여 주기 위해 신체 훼손이나 죽음 같은 극단적인 처벌이 이야기의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셴푸텔》에 등장하는 피 묻은 구두도 단순히 독자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장면만은 아니다. 왕비가 되려는 욕망 때문에 자신의 몸까지 훼손하는 의붓자매들의 집착을 보여 준다. 마지막에 두 눈을 잃는 결말은 남의 행복을 시기하고 거짓으로 빼앗으려 한 행동에 대한 처벌이다.

반면 페로의 이야기는 신데렐라의 우아함과 친절, 용서를 강조한다. 하나는 악한 인물을 포용하며 끝나고, 다른 하나는 가혹하게 응징하며 끝난다.

유리 구두 뒤에 감춰진 황금 구두

디즈니 영화의 밝고 낭만적인 이야기는 그림 형제의 판본이 아니라 샤를 페로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요정 대모와 호박 마차, 자정에 풀리는 마법과 유리 구두 등은 페로의 이야기에 들어 있던 요소들이다.

그림 형제의 《아셴푸텔》에는 특히 유리 구두 대신 피 묻은 황금 구두가 있었다. 페로의 유리 구두가 용서와 행복한 결말을 상징한다면 그림 형제의 황금 구두는 욕망과 거짓말, 그에 따른 처벌을 보여 준다.

두 구두의 차이는 어느 이야기가 진짜인가를 가리는 단서가 아니다. 같은 이야기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무엇을 강조하고 어떤 결말을 선택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흔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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