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츠 칸의 〈산업 궁전으로서의 인간〉 프랑스어판 도해
By Kahn, Arthur and Fritz, No restrictions, wikimedia commons.
산업 궁전으로서의 인간
밥 한 숟가락을 먹으면 몸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음식이 잘게 부서지고 소화되는 동안에도 우리는 숨을 쉬고, 심장은 뛰며, 눈과 귀는 주변의 정보를 받아들인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속은 분주하다.
이 일을 하나의 공장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음식은 원료가 되고, 혈관은 배관이 된다. 작은 작업자들이 몸속 곳곳에서 기계를 움직이며 각자의 일을 맡는다.
독일의 의사이자 과학 저술가 프리츠 칸(Fritz Kahn, 1888~1968)은 이런 상상을 그림으로 구현했다. 1926년에 발표된 〈산업 궁전으로서의 인간〉(Der Mensch als Industriepalast), 이른바 ‘인간 공장’이다. 사람의 머리와 몸통 안을 기계와 작업실, 작은 노동자들로 채운 이 포스터는 인체의 기능을 산업 시설에 빗대어 보여준다.
몸속 공장
그림 속 뇌에는 관리자들이 일하는 사무실이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음식을 처리하는 작업자들과 각종 설비가 나타난다. 심장은 펌프처럼, 혈관은 배관처럼 표현된다. 소화기관은 음식물을 받아 가공하는 시설로 바뀐다.
보는 사람은 몸속 공장의 방문객이 된다. 장기의 이름과 위치를 살피는 데서 더 나아가 각 부분이 어떤 일을 하는지 따라가게 된다. 원료가 들어오고 처리되어 이동하는 과정은 여러 장기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작은 작업자들은 이 그림에 이야기를 더한다. 기계만 늘어서 있었다면 복잡한 설비도로 보였을 장면이 사람들의 일터가 된다. 저 사람은 무엇을 옮기고 있을까? 저 기계가 멈추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림을 구경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림으로 설명하기
칸은 복잡한 과학 개념을 눈에 보이는 장면으로 바꾸는 데 능했다. 그가 1922년부터 1931년까지 펴낸 5권짜리 《인간의 삶》(Das Leben des Menschen)은 인체의 구조와 작동을 설명하는 대중 과학서였다. ‘인간 공장’ 포스터도 이 책에 딸린 자료였다. 전시 자료에 따르면 포스터의 그림은 프리츠 슐러가 맡았다. 칸의 발상과 삽화가의 표현이 함께 만든 작품인 셈이다.

아서·프리츠 칸 컬렉션(1889~1932) 수록 자료. 소장: 레오 백 연구소 아카이브
By Kahn, Arthur and Fritz, No restrictions, wikimedia commons.
칸의 기술 비유는 공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의 책에는 조립 라인, 내연기관, 정유 시설, 발전기, 전화기 등 산업사회의 장치들이 등장한다. 신경계의 작동을 전기 신호에 빗대고, 뇌를 들어오는 메시지를 분류하는 사무실로 표현한 그림도 있다.
그의 방식은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건너가는 설명이었다. 몸속에서 직접 볼 수 없는 과정을 기계와 작업 장면으로 바꾸어, 독자가 기능을 짐작하도록 했다.
시대의 비유
공장이라는 선택에는 칸이 살던 시대가 담겨 있다. 산업 시설과 통신 장치는 그의 그림에서 몸을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 이를 통해 인체는 여러 부분이 협력하며 움직이는 생산 시설처럼 보인다.
오늘날 같은 발상을 시도한다면 눈을 카메라에, 신경을 통신망에, 뇌를 정보처리 장치에 빗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은 우리가 덧붙여 보는 상상이다. 어떤 비유를 고르는지는 설명하려는 대상뿐 아니라 설명하는 사람이 익숙하게 접하는 세계도 드러낸다.
이렇게 보면 ‘인간 공장’은 인체에 관한 그림인 동시에, 기술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 했던 시대의 그림이기도 하다.
비유의 한계
공장 그림은 이해를 돕지만 몸의 작동 원리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뇌 속에 판단을 내리는 작은 관리자가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관리자를 설명으로 받아들이면, 이번에는 그의 판단을 누가 담당하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몸이 공장과 다른 점도 있다. 몸은 자라고, 손상을 회복하며, 경험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공장의 설비와 작업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이런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림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비유는 복잡한 대상에 처음 접근할 때 유용하다. 어느 부분이 닮았고 어디서부터 달라지는지 살피면 이해를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
칸은 복잡한 과학 개념을 이해하기 쉬운 그림으로 풀어낸 정보 디자인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그의 대표작인 ‘인간 공장’은 산업 시설의 구조와 작업 과정을 빌려 각 장기가 어떤 일을 하고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