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의 작은 사람 ᅳ 호문쿨루스 오류(homunculus fallacy)

머릿속 관찰자가 끝없이 반복되는 호문쿨루스의 무한퇴행을 시각화한 그림

머릿속 관찰자가 끝없이 반복되는 호문쿨루스의 무한퇴행.

By Jennifer Garcia, Pbroks13, Was a bee, 「Cartesian Theater」, CC BY-SA 2.5. wikimedia commons.

누가 화면을 보는가

우리는 어떻게 눈앞의 사물을 알아볼까? 눈이 받아들인 영상을 머릿속 화면에 띄우고, 작은 관찰자가 그 화면을 바라본다고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워 보인다. 그 관찰자가 “저것은 사과다”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곧 의문이 생긴다. 그 관찰자는 어떻게 사과를 알아보는가?

설명이 되풀이되는 오류

‘호문쿨루스(homunculus)’는 라틴어로 ‘작은 사람’을 뜻한다. 호문쿨루스 오류는 어떤 능력을 설명하면서 그 능력을 이미 갖춘 존재를 설명 속에 도입하는 오류다.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 설명하려고 또 하나의 보는 사람을 넣으면 원래의 문제를 그 작은 사람에게 떠넘기게 된다. 그 관찰자의 시각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한다면 그의 머릿속에도 화면과 관찰자가 필요하다. 이 과정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무한퇴행’이다. 다만 무한한 사슬에 이르기 전에도 문제는 생긴다. 첫 번째 관찰자의 보는 능력을 설명 없이 전제한 것만으로도 원래의 질문은 답을 얻지 못한다.

판단하는 작은 존재

이 오류는 시각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인간이 결정을 내리는 것은 머릿속의 중앙 통제자가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마찬가지다. 그 통제자가 어떻게 판단하는지 밝히지 않은 채 인간과 같은 판단력을 부여한다면 결정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결정하는 주체를 하나 더 세운 것이다. ‘중앙 통제자’나 ‘내면의 나’라는 이름만으로 판단 과정이 밝혀지지는 않는다.

기능을 나누어 설명하기

설명을 진전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복잡한 능력을 더 제한된 기능들로 나누고, 그 기능들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밝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방향의 선에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신경세포는 장면 전체를 바라보거나 사과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특정 자극에 일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면 된다. 이런 반응과 여러 처리 과정이 어떻게 사물 인식에 기여하는지를 밝히면 모든 것을 알아보는 작은 관찰자를 가정하지 않고도 설명을 진전시킬 수 있다. 물론 선에 반응하는 세포만으로 사물 인식 전체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 사이의 과정도 밝혀야 한다.

표상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뇌 안에 정보나 표상이 있다는 주장 자체가 호문쿨루스 오류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표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또 하나의 마음을 가정하면서 그 마음의 이해 능력은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뇌가 정보를 읽는다”는 표현도 복잡한 과정을 간단히 서술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작동 원리를 설명하려면 그 ‘읽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비유는 설명을 도울 수 있지만 설명을 대신할 수는 없다.

능력을 설명했는가

호문쿨루스 오류는 마음의 작동 원리에 대한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설명을 점검하는 기준이다. 능력이 어떻게 가능한지 밝혔는가, 아니면 그 능력을 가진 존재를 하나 더 만들어 냈는가? 머릿속에 작은 관찰자를 앉혀 놓으면 보는 과정이 쉽게 이해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 관찰자의 시각을 설명하지 못했다면 정작 설명하려던 보는 능력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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