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바스티안 비에니에크, 「도플갱어 No. 1」(2018), 캔버스에 유채
By Sebastian Bieniek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도플갱어란 무엇일까?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소설과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이런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도플갱어(doppelgänger)다.
도플갱어는 독일어 Doppel(둘)과 Gänger(걷는 사람)가 합쳐진 말로, 문자 그대로는 ‘함께 걷는 또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18~19세기 독일 문학에서는 자신의 분신이나 또 다른 자아를 의미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묘사되었지만, 오늘날에는 혈연관계가 없는데도 놀랄 만큼 닮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서로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데도 쌍둥이처럼 닮은 사람들의 사진이 화제가 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도 나와 매우 닮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까?
얼굴은 왜 서로 닮을까?
사람의 얼굴은 수많은 특징이 조합되어 만들어지지만, 그 조합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얼굴형, 눈의 크기와 간격, 코의 높이와 폭, 입술의 형태, 턱선, 광대뼈의 돌출 정도 등 여러 형태적 특징이 다양한 조합으로 나타나 하나의 얼굴을 만든다.
이러한 특징은 수많은 유전자의 영향을 받으며, 환경적 요인도 일부 작용한다. 서로 혈연관계가 없더라도 얼굴 형성에 영향을 주는 여러 형질이 우연히 비슷하게 조합되면 상당히 닮은 얼굴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사람의 뇌는 얼굴 전체를 정밀하게 측정하기보다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바탕으로 상대를 빠르게 인식한다. 헤어스타일이나 안경, 수염, 표정, 촬영 각도처럼 눈에 잘 띄는 요소가 비슷하면 실제보다 훨씬 닮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혈연관계가 없는 닮은꼴은 유전적으로도 비슷할까?

음악사학자 로스 W. 더핀이 자신과 매우 닮았다고 알려져 화제가 된 그림
By Beverly Simmons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질문을 직접 조사한 연구가 2022년 국제학술지 《Cell Reports》에 발표되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연구진은 캐나다 사진작가 프랑수아 브뤼넬이 수집한 닮은꼴 사진 가운데 얼굴 인식 알고리즘 세 종류 모두에서 높은 유사성을 보인 혈연관계 없는 16쌍을 선별했다.
연구진은 이들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DNA 염기 하나의 차이로 나타나는 유전적 변이인 단일염기다형성(SNP) 가운데 얼굴 형성과 관련된 일부 변이에서 공통된 특징이 나타나는 경향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들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얼굴 형성과 관련된 유전적 변이(단일염기다형성, SNP)에서 공통된 특징이 나타나는 경향을 확인했다.
이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얼굴 형성에 영향을 주는 일부 유전적 변이가 우연히 비슷하게 조합되면 상당히 닮은 얼굴이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연구를 “도플갱어는 DNA가 거의 같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연구에서 유사성이 확인된 것은 얼굴과 관련된 일부 유전적 변이였으며, 사람 전체의 유전자가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진은 후성유전학적 특징을 반영하는 DNA 메틸화와 장내 미생물군도 함께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에서는 뚜렷한 유사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 얼굴은 비슷할 수 있어도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후성유전학적 특성과 생활환경의 영향은 서로 달랐던 것이다.
다만 이 연구는 16쌍의 닮은꼴을 대상으로 수행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연구라는 점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모든 닮은꼴이 같은 유전적 특징을 공유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일란성 쌍둥이도 완전히 같은 사람은 아니다
도플갱어보다 훨씬 닮은 사례는 일란성 쌍둥이다. 일란성 쌍둥이는 하나의 수정란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전정보를 공유한다. 그러나 같은 유전정보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서 평생 완전히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 공군에서 복무 중인 일란성 쌍둥이 자매 케이틀린 커티스와 크리스틴 커티스(2018)
By U.S. Air Force photo by Airman William Tracy,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발생 과정에서 생기는 새로운 돌연변이와 자궁 내 환경의 차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서로 다른 환경은 신체와 건강, 성격에 조금씩 차이를 만든다. 특히 DNA 메틸화와 같은 후성유전학적 변화는 태어나기 전부터 조금씩 차이가 나타날 수 있으며, 성장하면서 그 차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유전적으로 가까운 일란성 쌍둥이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사람으로 성장한다.
실제 사람이 없는데도 자신의 분신을 볼 수 있을까?
도플갱어는 문화와 문학뿐 아니라 신경과학에서도 오래전부터 관심을 받아 온 주제다. 드물지만 뇌전증이나 조현병과 같은 질환에서는 자신의 분신이나 또 다른 자신을 본 것처럼 느끼는 경험이 보고된 바 있다.
또한 뇌의 측두두정접합부(temporoparietal junction, TPJ)를 전기적으로 자극했을 때 자신의 몸 뒤에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처럼 느끼거나, 자신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는 존재가 있다고 인식하는 현상이 관찰된 사례도 있다.
TPJ는 시각과 촉각, 균형감각, 몸의 위치 정보 등을 통합해 ‘내 몸’이라는 감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영역이다. 이 과정에 일시적인 이상이 생기면 자신의 몸을 낯설게 느끼거나 분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특정 환자에서 관찰된 신경학적 증상이며, 일반인이 경험하는 모든 도플갱어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 속 도플갱어와 현실의 도플갱어

1913년 독일 무성영화 《프라하의 학생》에서 자신의 도플갱어와 마주친 주인공
By Hanns Heinz Ewers and Stellan Rye,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도플갱어는 오래전부터 문학 작품의 소재로 등장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도스토옙스키의 《분신》이다. 이 소설은 자신과 똑같이 생겼지만 성격과 능력이 정반대인 또 다른 ‘나’를 만나면서 무너져 가는 한 인간의 심리를 그린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가 뇌전증을 앓았다는 사실 때문에 작품을 신경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실제 경험을 작품에 그대로 옮겼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분신》은 의학 사례라기보다 자아의 분열과 인간 심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얼굴은 닮을 수 있어도 사람은 닮지 않는다
2022년 연구는 얼굴이 매우 닮은 사람들 사이에 일부 유전적 공통점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얼굴 형성과 관련된 일부 유전적 특징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대부분의 유전정보를 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사람이 된다.
결국 현실의 도플갱어는 우연히 비슷한 얼굴을 가진 또 다른 한 사람이다. 얼굴은 유전자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사람을 만드는 것은 얼굴만이 아니다.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오랜 시간 더해져 저마다 고유한 한 사람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