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서운 꿈을 꾸는 것과는 다른 현상
한밤중 갑자기 비명을 지르거나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치고, 눈을 크게 뜬 채 극심한 공포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가족들은 놀라서 깨우려고 하지만 당사자는 거의 반응하지 않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을 야경증(Night Terrors) 또는 수면 공포증(Sleep Terrors)이라고 한다. 이름 때문에 무서운 꿈을 꾸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야경증은 일반적인 악몽과는 발생 원리부터 다른 수면 장애이다.
야경증은 파라솜니아(parasomnia)라고 하는 수면 이상 행동의 한 종류로, 깊은 수면 상태에서 뇌의 일부만 일시적으로 깨어나는 불완전한 각성(incomplete arousal)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는 잠들고 몸은 깨어 있는 상태
사람의 수면은 크게 렘(REM)수면과 비렘(NREM)수면으로 나뉜다. 야경증은 대부분 가장 깊은 비렘수면인 NREM 3단계에서 발생하며, 잠든 뒤 처음 1~3시간 사이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에는 뇌의 대부분이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지만, 각성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계와 자율신경계가 활성화될 수 있다. 그 결과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앉거나 몸부림을 치고, 비명을 지르거나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 행동이 나타난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식은땀을 흘리는 것도 흔한 증상이다. 이는 몸이 실제 위험에 처한 것처럼 반응하는 ‘투쟁-도피(fight-or-flight)’ 반응이 일시적으로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식은 여전히 깊은 수면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말을 걸어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며, 억지로 깨우더라도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 끝난 뒤 다시 잠이 들고, 다음 날에는 대부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야경증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야경증과 악몽의 차이
야경증은 흔히 악몽과 혼동되지만 두 현상은 서로 다르다. 악몽은 꿈을 활발하게 꾸는 렘수면(REM)에서 발생한다. 무서운 꿈 때문에 잠에서 깨는 경우가 많고, 깨어난 뒤에도 꿈의 내용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한다.
반면 야경증은 깊은 비렘수면에서 발생하는 불완전한 각성 현상이다. 몸은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의식은 충분히 깨어 있지 않으며, 대부분 다음 날 아무런 기억도 남지 않는다. 따라서 야경증은 무서운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깊은 수면에서 뇌와 몸의 각성 상태가 일시적으로 어긋나면서 나타나는 수면 이상 행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야경증의 원인
야경증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깊은 수면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요인으로는 수면 부족과 심한 스트레스가 있으며, 발열이나 질병, 불규칙한 수면 습관도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 더 흔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유전적 영향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에서는 수면무호흡증이나 하지불안증후군처럼 수면 중 반복적인 각성을 일으키는 질환이 함께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질환은 깊은 수면을 자주 방해해 불완전한 각성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뚜렷한 원인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유발 요인 없이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린이에게 흔한 이유
야경증은 모든 연령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어린이에게 훨씬 흔하다. 특히 4~12세 무렵에 많이 나타나며 대부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왜 어린이에게 더 흔한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어린이는 성인보다 깊은 비렘수면(NREM)의 비율이 높고,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신경계가 아직 발달하는 과정에 있어 이러한 특징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성인에게 야경증은 비교적 드문 편이다. 따라서 성인에게 새롭게 야경증이 나타나거나 증상이 반복된다면 수면무호흡증이나 다른 수면질환, 신경학적 질환 또는 정신건강 문제 등이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야경증이 나타났을 때의 대처법
가족이 야경증을 보이면 놀라서 급히 깨우려고 하기 쉽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억지로 깨우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혼란이 더 심해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치지 않도록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침대 주변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수면 중 다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도록 환경을 정돈하는 것이 좋다. 증상이 자연스럽게 끝날 때까지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 좋다.
평소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재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