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가 ᅳ 월터 리프만의 《여론》(Public Opinion)

1914년, 유럽에서 전쟁이 시작됐는데도 그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섬을 상상해 보자. 그곳에 사는 영국인과 프랑스인, 독일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예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바깥세상은 이미 달라졌지만 그들이 아는 세상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다.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 1889~1974)은 1922년에 출간한 《여론》(Public Opinion)을 이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가 묻는 것은 사람들이 뉴스를 얼마나 빨리 받아보느냐만이 아니다. 우리가 현실을 직접 알 수 없을 때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고 행동하는가? 이 질문은 개인의 인식에서 출발해 여론과 민주주의의 문제로 이어진다.

머릿속의 그림: 사람은 자신이 아는 세계에 반응한다

어떤 사건에 대하여 각가자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는 모습

우리는 직접 겪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갖는다. 외국의 전쟁, 경제 정책, 낯선 집단의 삶에 관한 판단은 대부분 기사, 통계, 타인의 설명에 의존한다. 그렇게 얻은 정보에 자신의 경험을 보태 세계가 어떠한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

리프만의 요점은 사람이 이 그림을 바탕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지도가 틀리면 길을 잘못 들 수 있듯, 현실에 관한 그림이 잘못되면 판단도 빗나갈 수 있다. 그러나 행동의 결과는 머릿속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나타난다.

섬사람들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도 이 차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유럽과 실제 유럽은 한동안 달랐다. 리프만은 세계와 세계에 관한 인식 사이에 생기는 틈을 여론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의사환경: 현실과 반응 사이에 놓인 세계

리프만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해석한 세계를 의사환경(pseudo-environment)이라고 부른다. 순전히 꾸며낸 세계라는 뜻은 아니다. 의사환경에는 실제로 전해진 사실도 들어 있다. 다만 사람은 그 사실을 자신의 경험과 기대, 집단의 관습에 비추어 이해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같은 파업 소식을 듣더라도 한 사람은 생계의 위협을, 다른 사람은 노동 조건의 문제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두 사람은 같은 사건에 관해 말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그림은 다르다. 여론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지뿐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리프만은 이를 일부 사람의 무지로 돌리지 않는다. 사회가 넓고 복잡해질수록 누구나 직접 볼 수 있는 범위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대해 의견을 내야 한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나 조약을 협상하는 사람도 자신이 다루는 현실의 일부만 직접 경험한다.

고정관념: 세상을 보게 해주는 틀이자 사각지대

고정관념을 표상하는 이미지

그렇다면 우리는 불완전한 정보로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판단할까? 여기서 고정관념(stereotype)이 작동한다. 리프만에 따르면 우리는 대상을 언제나 자세히 관찰한 뒤 분류하지 않는다. 이미 익숙한 유형으로 대상을 알아보고, 그 유형에 맞는 특징을 먼저 발견한다.

고정관념에는 쓰임이 있다. 매번 모든 것을 처음부터 조사할 수 없는 우리에게 판단의 수고를 덜어준다. 그러나 익숙한 틀에 맞지 않는 사실을 놓치게 할 수도 있다. 리프만은 고정관념이 오래 유지되는 이유를 편리함에서만 찾지 않는다. 익숙한 세계의 질서는 자신의 생활 방식, 소속감, 자존감과도 연결된다. 그 질서를 흔드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므로 “편견을 버리자”라는 권고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분류가 무엇을 보게 하고, 무엇을 놓치게 하는지 물어야 한다.

상징과 동의의 제조: 흩어진 의견은 어떻게 한 방향으로 모이는가

사람들이 가진 그림은 서로 다르다. 정치에서는 이렇게 다른 경험과 이해관계를 하나의 주장이나 선택으로 묶어야 한다. 리프만은 이 과정에서 ‘독립’, ‘평화’처럼 폭넓은 호응을 얻는 상징에 주목한다. 멀리 있는 문제를 직접 확인하기 어려울 때는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의 권위도 판단에 영향을 준다.

지도자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이나 희망을 말로 표현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책과 연결한다. 서로 다른 뜻으로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도 같은 정책에 동의할 수 있다. 정책의 내용과 결과를 충분히 알지 못해도 상징에 끌려 지지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리프만이 말하는 ‘동의의 제조’는 사람들이 같은 의견을 갖게 되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는 심리 연구와 새로운 전달 수단이 그 기술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모든 동의가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알고 동의했으며, 어떤 감정과 상징을 통해 정책을 이해했는지가 중요하다.

뉴스와 진실: 사건을 아는 것과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언론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기대하기 쉽다. 리프만도 신문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뉴스와 진실의 역할을 구분한다. 뉴스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신호를 보낸다. 진실에 다가가려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실을 찾고, 그 사실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밝혀야 한다.

파업이 시작됐다는 사실은 비교적 빨리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왜 파업이 일어났는지, 임금과 물가와 작업 조건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별도의 조사 없이는 알기 어렵다. 더구나 사회의 많은 일은 처음부터 정확히 기록되거나 측정되지 않는다. 기자가 현장에 가더라도 확인할 자료 자체가 부족할 수 있다.

따라서 신문이 모든 문제의 진실을 시민에게 알려주리라고 기대하려면, 먼저 사회가 필요한 사실을 어떻게 기록하고 조사하는지 살펴야 한다. 리프만에게 언론의 한계는 기자 개인의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주의와 조직된 지성: 누가 보이지 않는 사실을 드러낼 것인가

여기서 《여론》의 정치적 주장이 분명해진다. 시민이 정치적 권리를 갖는다는 것과 시민 각자가 모든 공적 사안을 충분히 안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리프만은 후자를 당연하게 여기는 민주주의관을 비판한다. 각자가 경험한 것과 의견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복잡한 사회의 관계나 정책의 효과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리프만은 체계적인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통계, 기록, 감사,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실을 드러내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전문가가 시민을 대신해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조사하는 사람이 결정을 좌우하려 들면 자신이 원하는 사실만 골라 제시할 위험도 경계했다. 그래서 사실을 조사하는 일과 정책을 결정하는 일은 서로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이 제안에도 질문은 남는다. 무엇을 조사할지 정하는 사람에게는 영향력이 생긴다. 조사 결과를 어떻게 공개하고, 전문가의 판단을 누가 검증할 것인가? 리프만 자신도 전문가가 검열자처럼 행동할 위험을 지적한다. 사실을 드러낼 조직이 필요하다면 그 조직을 살필 방법도 필요하다.

리프만이 《여론》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누구나 제한된 그림을 통해 거대한 사회를 판단하며, 그 그림을 만드는 과정도 정치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좋은 여론을 바라기 전에 물어야 한다. 시민과 결정권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어떤 사실을 기록하고 어떤 현실을 보이게 만들고 있는가?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