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지적했는데 내가 사과하게 된다면: 다르보(DARVO)란 무엇인가

대화에서 공격자와 수비자가 바뀌는 과정을 묘사한 그림

엉뚱한 결말

“어제 사람들 앞에서 네가 내 말을 여러 번 끊어서 불편했어.” 어렵게 꺼낸 말에 상대가 대답한다. “내가 언제 그랬어? 너는 원래 내 말을 나쁘게 받아들이잖아. 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무례한 사람으로 몰아서 오히려 내가 상처받았어.”

처음에는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기억이 맞는지 증명해야 하고, 내가 상대를 부당하게 비난한 것은 아닌지 해명해야 한다. 대화가 끝날 무렵에는 상대가 아니라 내가 사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짧은 대화만으로 누가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눈여겨볼 만한 변화가 있다. 처음 제기한 행동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는데,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해명할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책임의 전환을 설명할 때 다르보(DARVO)라는 용어를 쓴다.

세 번의 전환

DARVO는 Deny(부인), Attack(공격), Reverse Victim and Offender(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 뒤집기)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심리학자 제니퍼 프레이드(Jennifer J. Freyd)가 1997년 제시한 개념으로, 잘못을 지적받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 할 때 보이는 반응을 가리킨다.

앞의 대화에서 “내가 언제 그랬어?”는 부인이다. “너는 원래 내 말을 나쁘게 받아들여”는 어제의 행동보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의 성격이나 판단력을 따지는 공격이다. 마지막으로 “오히려 내가 상처받았어”는 자신을 피해자의 자리에 놓는다.

이 세 가지가 반드시 교과서처럼 차례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행동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상대를 공격할 수 있고, 공격부터 시작해 자신이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말의 순서보다 대화의 초점이 ‘무슨 일이 있었나’에서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흔들리는 판단

이런 대화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상대의 모든 말이 거짓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적하는 말투가 날카로웠을 수도 있고, 상대 역시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 감정을 듣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가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처음 제기된 행동에 대한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두 문제를 한꺼번에 뒤섞으면 어느 순간 “왜 내 말을 끊었어?”라는 질문에 답을 듣기도 전에 “그런 식으로 말해서 미안해”라는 사과부터 하게 된다. 다르보의 영향에 관한 연구도 이 지점을 보여 준다. 2017년 연구에서는 다르보에 더 많이 노출된 사람이 자신을 더 탓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2023년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성폭력에 관한 가상 사례를 보여 주었다. 가해자가 잘못을 부인하고 피해자를 공격하며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자, 참가자들은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대화 당사자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사람의 판단도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 주지만 실험 결과만으로 눈앞의 모든 갈등을 다르보라고 판정할 수는 없다.

질문을 붙잡기

그렇다면 상대가 “그런 적 없어”라고 말할 때마다 다르보를 의심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기억이 다를 수도 있고, 실제로 억울한 지적을 받은 사람이라면 부인할 수도 있다.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살펴볼 것은 반응 하나가 아니라 대화 전체의 흐름이다. 구체적인 행동에 관해 묻는데 대답 대신 내 성격이나 의도만 문제 삼는가? 상대의 억울함을 이야기하느라 처음 꺼낸 문제는 매번 뒤로 밀리는가?

그럴 때는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 즉석에서 가리려 애쓰기보다 질문을 분리하는 편이 낫다. “내 말이 공격적으로 들렸다면 그 부분도 이야기할게. 먼저 어제 내 말을 끊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상대가 받은 상처를 듣되, 처음 제기한 일도 그대로 남겨 두는 것이다.

다르보라는 용어는 상대에게 이름표를 붙이는 데 쓰기보다 대화가 어디서 방향을 틀었는지 알아차릴 때 더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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