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사이에서 탄생한 예술, 판타스틱 리얼리즘

판타스틱 리얼리즘 뮤지엄

오스트리아 빈 펜칭 지구에 있는 에른스트 푹스 미술관

By C.Stadler/Bwag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20세기 중반 유럽 미술에는 현실과 환상을 동시에 붙잡으려 했던 독특한 흐름이 등장한다. 바로 판타스틱 리얼리즘(Fantastic Realism)이다. 이들은 꿈과 환각, 종교적 상징, 무의식 같은 주제를 다루었지만 단순한 초현실주의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해석’하려 했다.

빈에서 시작된 환상 미술

이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되었다. 빈 분리파(Vienna Secession)의 장식성과 상징주의, 그리고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섞여 있었으며, 빈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였던 알베르트 파리스 폰 귀터슬로( Albert Paris Gütersloh)의 영향도 컸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에른스트 푹스(Ernst Fuchs), 아릭 브라우어(Arik Brauer), 볼프강 후터(Wolfgang Hutter), 안톤 렘덴(Anton Lehmden), 루돌프 하우스너(Rudolf Hausner)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무의식의 흐름을 최대한 통제 없이 드러내려 했다면, 판타스틱 리얼리스트들은 무의식 속 이미지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에른스트 푹스는 인간이 꿈이나 환각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현실 속 이미지로 끌어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들에게 환상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구조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에른스트 푹스와 다층적 환상 세계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에른스트 푹스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에른스트 푹스 (빈, 2007년)

By Tsui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판타스틱 리얼리즘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심에 놓이는 인물은 에른스트 푹스(Ernst Fuchs, 1930 – 2015) 이다. 그는 환상적이고 기괴한 이미지를 극도로 정교한 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환상적인 상징과 현실·비현실의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뒤섞여, 중세 종교화와 초현실주의가 결합한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특징은 《빌라도 앞의 그리스도(Christ Before Pilate)》이나 클라겐푸르트 성 에기트 교회의 《최후의 만찬》 제단화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57년 작품인 《빌라도 앞의 그리스도(Christ Before Pilate)》에서는 예수의 수난 장면 여러 개를 하나의 공간 속에 동시에 겹쳐 놓고 있다. 왼쪽에는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하고 있고, 중앙에서는 죽음을 상징하는 존재가 괴상한 유니콘을 타고 돌진한다. 그 곁에는 루거 권총을 든 작은 독일 병사까지 등장한다.

에른스트 푹스의 <최후의 만찬>

에른스트 푹스의 <최후의 만찬>(성 에기트 교회,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By Rollroboter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성 에기트 교회 벽에 설치된 《최후의 만찬》 제단화 역시 전통적인 성경 장면 위에 환상과 상징을 겹쳐 놓은 작품이다. 예수와 제자들 주변에는 왕관을 쓴 천사, 현대 성직자 같은 인물, 악기를 연주하는 존재들, 공작새 깃털 같은 화려한 형상들이 뒤섞여 있으며, 화면 아래에는 작은 흰 강아지와 사슴까지 등장한다. 식탁 위의 성배와 꽃, 과일, 물고기 같은 상징물들은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고, 서로 다른 시대와 차원의 이미지들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하면서 꿈이나 환각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전통적인 성화처럼 보이면서도 과장된 색채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띠며, 화면 곳곳에는 꿈이나 환각을 연상시키는 상징적 요소들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사실적으로 묘사된 인체와 초현실적인 공간감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은 푹스 특유의 판타스틱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직선을 거부한 건축가, 훈데르트바서

판타스틱 리얼리즘의 흐름은 회화에만 머물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는 그것을 건축으로 확장했다.

숲의 나선, 훈데르트바서가 설계한 다름슈타트의 곡선형 주거

숲의 나선(Waldspirale), 훈데르트바서가 설계한 독일 다름슈타트의 곡선형 주거 단지

By Norbert Nagel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직선과 격자 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눈에 현대 도시의 아파트 단지는 지나치게 획일적이었다. 동일한 창문, 동일한 구조, 반복되는 콘크리트 공간은 인간의 삶까지 균일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래서 훈데르트바서의 건축에는 직선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바닥은 물결치듯 굽어 있고, 벽은 비정형적으로 휘어지며, 창문은 크기와 형태가 모두 다르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Hundertwasserhaus)’ 역시 전형적인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외벽은 밝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각 층에는 나무와 식물이 자라난다. 건물 위에는 옥상 정원까지 조성되어 있다.

마그데부르크 녹색 성채의 코너 사진

‘마그데부르크 녹색 성채’ 코너 전경 (마그데부르크 대성당 광장 앞)

By “Axel Tschentscher”,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그는 건물 속에 “나무 세입자(tree tenants)”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간만이 아니라 나무 역시 건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는 도시가 산소 부족과 오염으로 인간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보았고, 건축이 자연을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후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가운데 한 명이기도 했던 그의 그림 역시 그 자신의 건축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사람의 얼굴은 건물의 창문으로 변하고, 거리와 인간의 몸은 서로 이어진다. 모든 경계는 흐려지고, 색채는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강렬하고 선명하다. 그의 작품에서는 도시와 인간, 자연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된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환상

판타스틱 리얼리즘은 단순히 기괴한 이미지를 그리는 예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종교와 상징, 자연과 도시 사이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였다.

에른스트 푹스는 정신 내부의 환상을 정교한 회화로 끌어냈고,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을 거부한 현대 건축 자체를 바꾸려 했다. 한 사람은 이미지 속에서, 다른 한 사람은 도시 공간 속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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