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양 석유 시추시설의 디지털 트윈
By SumitAwinash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항공기 엔진의 구조와 작동 상태를 재현한 가상 모델을 컴퓨터 안에 만든다. 실제 엔진에서 측정한 온도와 압력, 진동 등의 데이터를 이 모델에 지속적으로 전달하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가상 모델에도 반영된다.
엔지니어는 이를 이용해 엔진의 상태를 확인하고 고장 가능성을 예측하거나 적절한 정비 시기를 판단할 수 있다. 이처럼 현실의 물체나 시스템을 가상 공간에 재현하고, 실제 데이터를 반영해 상태를 계속 갱신하는 모델을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말 그대로 ‘디지털 쌍둥이’다.
디지털 트윈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겼을까?
디지털 트윈으로 이어지는 발상은 1991년 미국의 컴퓨터과학자 데이비드 겔런터(David Gelernter)가 펴낸 《미러 월드》(Mirror Worlds)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겔런터는 현실 세계의 일부를 컴퓨터 안에 재현하고, 현실에서 들어오는 정보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가상 세계를 상상했다. 그는 디지털 트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현실과 연결된 가상 모델이라는 발상을 앞서 제시했다.
오늘날 디지털 트윈의 기본 구조는 마이클 그리브스(Michael Grieves)가 2002년 제품수명주기관리(Product Lifecycle Management·PLM)를 설명하면서 제시했다. 제품의 설계부터 생산과 사용,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을 현실의 제품과 가상 모델을 연결해 관리한다는 구상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디지털 트윈’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다.
이 명칭은 2010년 무렵 NASA의 우주기술 로드맵 작업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실의 우주선과 연결된 가상 모델에 비행 중 수집한 데이터를 반영해 우주선의 상태를 진단하고 앞으로 일어날 문제를 예측한다는 개념이었다. NASA의 엔지니어 존 비커스(John Vickers)가 이 과정에서 ‘디지털 트윈’이라는 표현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한 가상 모형과 무엇이 다를까?

승객 이동, 탑승구 운영, 항공기 위치를 보여주는 공항 터미널 실시간 3D 디지털 트윈 모델
By Matthewadams66 – Own work, CC0, wikimedia commons.
자동차나 건물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모두 디지털 트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대상과 연결되지 않은 3차원 모형은 외형과 구조를 재현한 디지털 모델에 가깝다.
일반적인 시뮬레이션은 미리 설정한 조건을 바탕으로 특정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계산한다. 반면 디지털 트윈은 센서를 통해 현실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받아 실제 대상의 상태에 맞춰 갱신된다.
실제 엔진의 온도가 올라가거나 부품이 마모되면 그 변화가 디지털 트윈에도 반영된다. 갱신 주기와 정밀도는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현실의 변화에 맞춰 가상 모델도 달라진다는 점이 디지털 트윈의 핵심이다.
고장을 미리 알아내는 디지털 쌍둥이
디지털 트윈의 대표적인 용도는 예지 정비(predictive maintenance)다. 기존에는 기계를 일정 기간 사용한 뒤 부품을 교체하거나 고장이 발생한 다음 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디지털 트윈은 현재 상태와 과거의 작동 데이터를 비교해 고장 가능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공기 엔진의 진동이 평소와 달라지면 디지털 트윈을 이용해 이상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정비 시기를 앞당기거나 아직 사용할 수 있는 부품을 너무 일찍 교체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위험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실험을 가상으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풍력터빈이 강풍을 만났을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 공장의 생산 속도를 높이면 어느 공정에서 병목이 생기는지, 건물의 냉난방 방식을 바꾸면 에너지 사용량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실제 설비를 변경하지 않고 시험할 수 있다.
기계에서 도시와 사람으로

실제 공간과 가상 공간의 데이터·정보 교환을 보여주는 최초의 디지털 트윈 모델 개념도
By Wilmjakob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디지털 트윈은 항공기 엔진과 풍력터빈, 기관차, 해양플랜트 같은 대형 기계를 관리하는 데 먼저 활용됐다. 지금은 공장 전체의 생산 과정과 발전소, 건물, 교량, 교통망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건물의 디지털 트윈은 실내 온도와 사람의 이동, 에너지 사용량을 반영해 냉난방 설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돕는다. 도시의 디지털 트윈은 교통량과 대기 상태, 전력 소비 등을 재현해 새로운 도로나 시설을 만들었을 때 나타날 변화를 미리 살펴보게 한다.
개인의 의료 정보와 생체 데이터를 반영한 가상 모델을 만들어 질병의 진행이나 치료 반응을 예측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다만 사람의 몸은 기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하므로 모델의 정확성과 데이터 보호 문제가 함께 해결돼야 한다.
인공지능과 만난 디지털 트윈
디지털 트윈이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인공지능(AI)은 그 안에서 변화의 의미를 읽어 내는 역할을 한다. 디지털 트윈에 인공지능을 결합하면 쌓여 있는 방대한 자료에서 사람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상 징후를 찾아내고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 제어 기능까지 연결되면 디지털 트윈은 단순히 상태를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계의 작동 조건을 조절하거나 여러 대안을 비교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제안할 수도 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을 닮은 모형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되어 계속 변화하는 모델이다. 현실의 현재를 보여 주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한다는 데 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