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낙서에 담긴 익명의 목소리, 라트리날리아(latrinalia)

2018년 독일 베를린의 레스토랑 ‘베를리너 레푸블리크’ 남자 화장실에 남겨진 낙서.

독일 베를린의 레스토랑 ‘베를리너 레푸블리크’ 남자 화장실에 남겨진 낙서.

By © Simon Mannweiler,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라트리날리아의 어원과 사회적 의미

공중화장실 문이나 벽에 적힌 낙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과 전화번호, 외설적인 그림, 정치적 주장, 욕설과 농담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때로는 한 사람이 남긴 문장 아래에 다른 사람이 답을 적고, 또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서 짧은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화장실에 쓰거나 그린 이러한 낙서를 가리키는 말이 라트리날리아(latrinalia)다. 화장실을 뜻하는 latrine에 특정한 사물이나 기록의 모음을 나타내는 -alia를 결합한 말이다. 책의 여백에 남긴 기록을 뜻하는 marginalia를 본떠 만들어졌다.

낯설고 다소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용어지만, 라트리날리아는 오래전부터 민속학과 사회학, 언어학의 연구 대상이었다. 아무렇게나 휘갈긴 낙서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욕망과 불만, 편견과 유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 낙서에 이름을 붙인 앨런 던디스

라트리날리아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은 미국의 민속학자 앨런 던디스(Alan Dundes)다. 그는 1966년 논문 〈내가 여기 앉아 있노라: 미국 라트리날리아 연구(Here I Sit: A Study of American Latrinalia)〉에서 미국 공중화장실에 남겨진 글과 그림을 분석했다.

던디스가 연구한 민속은 옛이야기나 전통 민요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반복해 만들고 전하는 농담과 몸짓, 속담, 도시전설도 민속에 포함됐다. 화장실 낙서 역시 이름 없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현대의 민속이라고 본 것이다.

화장실은 공공장소이면서도 칸막이 안에서는 잠시 혼자가 될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낙서를 남기는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가 쓴 문장은 이후 그곳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된다. 던디스는 이런 조건에서 평소 감춰 두었던 욕망과 불안이 비교적 거리낌 없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던디스가 화장실 벽에서 본 무의식

던디스는 화장실 낙서에 성적·배설적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현상을 당시 영향력이 컸던 프로이트식 정신분석을 통해 해석했다. 배설기관과 생식기관이 해부학적으로 가깝고, 화장실이 배설과 신체의 사적인 기능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두 영역이 낙서 속에서 결합한다는 설명이었다.

그의 관점에서 외설적인 문구와 과장된 성적 그림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에서는 억제되는 충동과 공격성, 불안이 화장실이라는 은밀한 공간에서 우회적으로 표출된 결과였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한 피자 가게의 화장실 벽을 가득 채운 라트리날리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화장실 벽을 가득 채운 라트리날리아

By Sillerkiil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그러나 오늘날에는 화장실 낙서를 남기는 사람을 ‘유아적’이거나 ‘퇴행적인’ 성격으로 규정하는 이러한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낙서가 쓰인 시대와 장소, 작성자가 놓인 사회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모든 표현을 무의식적 충동으로 환원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던디스의 연구가 지닌 중요한 의미는 그의 해석이 모두 옳다는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이 하찮거나 불쾌한 것으로 치부하던 화장실 낙서에 이름을 붙이고, 그 안에서도 한 사회의 문화와 심리를 읽을 수 있다고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고대 로마에도 있었던 화장실 낙서

벽에 외설적인 문구나 일상의 감정을 적는 행위는 현대에 시작되지 않았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매몰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서는 사랑의 고백과 욕설, 성적인 농담, 정치적 구호, 특정인을 조롱하는 문구가 다수 발견됐다.

다만 이들 도시의 모든 낙서를 라트리날리아라고 부를 수는 없다. 라트리날리아는 엄밀하게는 화장실에 남겨진 낙서를 뜻하기 때문이다. 주택이나 선술집, 거리의 벽에 적힌 글은 일반적인 그라피티에 해당한다.

화장실과 관련된 고대 낙서도 실제로 남아 있다. 헤르쿨라네움의 ‘보석의 집’에서는 “티투스 황제의 노예이자 의사였던 아폴리나리스가 이곳에서 시원하게 변을 보았다”는 뜻의 라틴어 문장이 발견됐다. 거창한 역사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지만, 약 2천 년 전에도 누군가 자신의 사소한 행위를 벽에 기록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참고: Ancient Graffiti Project, “Graffito naming Apollinaris”)

무의식에서 의사소통의 공간으로

최근 연구는 던디스의 정신분석적 관점을 넘어 라트리날리아를 익명성, 공간의 성격, 젠더와 권력관계가 함께 작용하는 의사소통 행위로 분석한다.

화장실 벽에는 사랑과 외로움, 학업과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정치와 종교, 인종과 성 정체성에 관한 문장도 적힌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꺼내기 어려운 고민을 털어놓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글도 있다.

특히 대학 화장실을 조사한 일부 연구에서는 한 사람이 고민을 적으면 다른 사람들이 위로나 조언을 덧붙이는 모습이 관찰됐다. 낙서는 서로 연결되면서 게시판이나 대화방과 비슷한 형태로 발전했다. 어떤 벽은 단순한 낙서판을 넘어 이용자들이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비공식적인 소통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화장실 낙서를 저항이나 연대의 표현으로 미화할 수는 없다. 낙서에는 위로와 유머뿐 아니라 욕설과 차별, 성적 모욕과 혐오 표현도 함께 나타난다. 또한 특정 대학의 특정 화장실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모든 장소에 그대로 적용하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라트리날리아를 한 종류의 성격이나 욕망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같은 익명성도 누군가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꺼내는 기회를 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책임 없이 타인을 공격할 수 있는 가면이 된다.

익명의 소통 공간

화장실 낙서는 작성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고, 앞서 남겨진 글에 다른 사람이 응답한다는 점에서 인터넷 익명 게시판과 닮았다. 다만 특정 장소를 찾은 사람만 볼 수 있고 벽을 청소하면 사라진다는 점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복제되는 온라인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던디스는 이러한 낙서를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이 표출된 결과로 해석했지만, 오늘날에는 금기시된 주제를 말하거나 다른 사람과 의견과 감정을 나누는 비공식적 의사소통 방식으로도 연구된다. 라트리날리아를 바라보는 관점이 개인의 심리에서 공간과 사회적 관계의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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