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 파르두비체 얀 페르네르 광장(náměstí Jana Pernera)의 포에시오마트
By Fry72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거리 한쪽에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생긴 금속관 하나가 솟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 버튼을 누르면 음악이 아니라 누군가 시를 읽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체코 프라하에서 시작된 이 독특한 장치의 이름은 포에시오마트(Poesiomat)다.
거리에서 만나는 시
2015년 3월, 체코 프라하의 평화광장(Náměstí Míru)에 최초의 포에시오마트가 설치됐다. 일종의 ‘시 주크박스’로, 버튼을 누르면 여러 체코 시인의 작품을 골라 들을 수 있었으며 시인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낭송한 녹음도 포함돼 있었다.
장치의 모습도 독특했다. 잔디밭에서 굽은 금속관이 솟아 있는 형태로, 얼핏 보면 잠수함의 잠망경을 연상시킨다. 책을 펼쳐 읽는 대신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서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도시의 일상에 예술을 끌어들인 아이디어 
포에시오마트와 프로젝트를 기획한 온드르제이 코브자
By Draceane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포에시오마트를 구상한 사람은 체코의 문화기획자 온드르제이 코브자(Ondřej Kobza)다. 그는 포에시오마트 이전에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와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피아노와 체스 테이블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포에시오마트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책으로 읽거나 낭송회에서 듣던 시를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로 끌어낸 것이다. 평범한 광장의 한쪽에 시를 들을 수 있는 장치를 놓음으로써 도시의 일상적인 공간을 잠시 문학을 만나는 장소로 바꾸었다.
프라하를 넘어 다른 도시로
프라하에서 시작된 포에시오마트는 이후 체코의 여러 도시뿐 아니라 해외로도 퍼져나갔다. 현재 공식 프로젝트에는 미국 뉴욕과 버펄로, 독일 하이델베르크, 핀란드 헬싱키, 노르웨이 라르비크 등 여러 도시의 포에시오마트가 소개돼 있다.
초기의 포에시오마트가 주로 시를 들려주는 장치였다면, 프로젝트가 확산되면서 담아내는 소리도 다양해졌다.
시 주크박스에서 도시의 기억을 들려주는 장치로
오늘날 포에시오마트에서는 시뿐 아니라 노래와 이야기, 역사적 기록, 사람들의 회고, 자연의 소리 등 설치된 장소와 관계있는 다양한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Václavské náměstí)의 포에시오마트에서는 시와 노래뿐 아니라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선포 당시의 연설과 바츨라프 하벨의 연설 같은 역사적 기록도 들을 수 있다. 장소와 관련된 목소리와 소리를 그 장소에서 직접 듣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포에시오마트는 이제 단순한 ‘시 주크박스’를 넘어 장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말하는 조형물에 가까워졌다. 공식 프로젝트에서는 포에시오마트를 ‘말하는 조형물’이자 ‘문화적 잠망경’이라고 표현한다.
손잡이를 돌려 듣는 이야기

체코 브르노 비스트르츠의 리쇼바 샘에 설치된 포에시오마트
By Roman Mifek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현재 사용되는 포에시오마트에는 또 하나 독특한 특징이 있다. 전기를 공급받기 위해 별도의 전원에 연결하는 대신 이용자가 직접 손잡이를 돌려 필요한 전기를 만든다. 그런 다음 원하는 번호의 버튼을 누르면 녹음된 목소리나 소리가 흘러나온다.
디지털 음원을 재생하는 장치이면서도 사람이 직접 손잡이를 돌려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오래된 축음기 같은 아날로그적인 느낌도 준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문학과 이야기
포에시오마트의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일부러 문학관이나 공연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광장이나 공원을 걷다가 우연히 장치를 발견하고 손잡이를 돌리면 그곳과 관련된 시와 음악,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15년 프라하에서 시를 들려주는 주크박스로 출발한 포에시오마트는 이제 여러 도시로 퍼져나가 그 장소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기억을 소리로 만나는 공공예술 장치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