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창한 숲과 석회암 협곡 사이로 이어지는 청록빛 호수와 폭포
By dronepicr, CC BY 2.0, wikimedia commons.
크로아티아 중부의 산악지대에는 청록빛 물이 숲 사이를 따라 계단처럼 이어지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들며 여러 호수를 차례로 연결한다.
이곳은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자연 명소인 플리트비체 호수(Plitvice Lakes)다. 수도 자그레브에서 남쪽으로 약 130km 떨어져 있으며,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의 중심을 이룬다. 아름다운 호수와 폭포로 유명하지만 플리트비체의 진짜 특별함은 이 풍경이 만들어진 과정에 있다.
폭포로 이어진 16개의 호수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16개 호수와 주변 지형을 한눈에 보여주는 조감도
By Francesco Bandarin, CC BY-SA 3.0 igo, wikimedia commons.
플리트비체에는 이름이 붙은 16개의 주요 호수가 있으며, 그 밖에도 여러 개의 작은 호수가 있다. 16개 호수는 크게 상부 호수 12개와 하부 호수 4개로 나뉜다. 높은 곳의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은 낮은 곳으로 이동하면서 여러 호수를 차례로 지나고, 호수 사이의 높이 차이에서는 크고 작은 폭포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플리트비체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호수보다 물을 따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더 인상적이다. 잔잔한 호수가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 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다시 아래쪽 호수로 흘러드는 모습이 반복된다.
상부와 하부 호수는 지형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상부 호수는 주로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 돌로마이트 지층 위에 형성되어 호수가 비교적 크고 주변 지형도 완만하다. 반면 하부 호수는 석회암 지대의 깊은 협곡 안에 자리해 가파른 절벽이 두드러진다. 같은 국립공원 안에서도 서로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이유다.
호수와 폭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플리트비체의 독특한 풍경을 만든 주인공은 물과 석회암이다. 주변의 석회암과 돌로마이트 지대를 통과한 물에는 탄산칼슘 성분이 풍부하게 녹아 있다. 이 물이 흐르는 과정에서 탄산칼슘이 다시 침전해 바위나 이끼, 나뭇가지 등에 달라붙으면서 다공질의 석회질 퇴적물인 투파(tufa)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는 이끼와 조류, 박테리아 같은 생물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파가 오랜 시간 계속 쌓이면 물길을 가로막는 자연적인 장벽이 만들어진다. 그 뒤에 물이 고이면서 호수가 생기고, 장벽을 넘어 흐르는 물은 폭포가 되어 아래쪽 호수로 떨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투파 장벽들이 플리트비체의 여러 호수와 폭포를 연결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과정이 먼 과거에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투파 장벽은 지금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며 일부는 침식되거나 무너지기도 한다. 그에 따라 물길이 달라지고 폭포의 위치와 모습도 오랜 시간에 걸쳐 변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플리트비체는 완성되어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지금도 물이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는 풍경인 셈이다.
물은 왜 청록빛으로 보일까?

투명한 청록빛 물과 크고 작은 폭포가 어우러진 플리트비체 호수.
By Tesla Delacroix,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플리트비체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맑고 선명한 물빛이다. 호수는 때로 짙은 파란색으로, 때로는 밝은 청록색이나 녹색에 가까운 색으로 보인다.
이러한 물빛은 한 가지 원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햇빛의 양과 각도, 수심, 호수 바닥의 성질, 물속의 광물질과 미생물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같은 호수라도 날씨와 시간,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빛깔을 보여준다.
물이 매우 맑기 때문에 얕은 곳에서는 호수 바닥이나 물속에 잠긴 나무까지 그대로 들여다보이기도 한다. 숲의 짙은 녹색과 맑은 물빛이 어우러지면서 플리트비체 특유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가장 큰 폭포, 벨리키 슬라프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벨리키 슬라프(뒤쪽)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사스타브치 폭포
By Mark Ahsmann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수많은 폭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벨리키 슬라프(Veliki Slap)다. 이름은 크로아티아어로 ‘큰 폭포’라는 뜻으로, 약 78m 높이의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높은 폭포다.
벨리키 슬라프는 하부 호수 지역 끝부분의 높은 석회암 절벽에서 떨어진다. 특히 이 폭포는 플리트비체의 다른 폭포들과 만들어지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폭포가 위쪽 호수에서 넘쳐흐른 물로 만들어지는 데 비해, 벨리키 슬라프는 플리트비차(Plitvica) 개울이 협곡의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형성된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하부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과 합류하고, 이 물줄기는 이후 코라나(Korana)강으로 이어진다.
호수를 둘러싼 숲과 야생동물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면적은 약 300㎢에 이르지만 호수는 그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공원의 상당 부분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다.
이 숲에는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아간다. 유럽불곰을 비롯해 늑대, 스라소니, 사슴, 멧돼지 등이 서식하며 다양한 조류와 물고기, 곤충도 발견된다. 호수와 숲, 석회암 지형이 함께 보존되면서 풍부한 자연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투파 형성 과정과 뛰어난 자연경관을 인정받아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물 위와 숲길을 따라 걷는 플리트비체

청록빛 호수 위를 따라 이어지는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산책로
By OrionCro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플리트비체를 둘러보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호수와 숲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걷는 것이다. 특히 물가와 호수 위를 지나는 목재 산책로가 유명하다. 난간 없이 물 가까이 이어지는 길도 있어 걷다 보면 맑은 호수와 작은 폭포를 바로 곁에서 만날 수 있다.
공원은 크게 상부 호수와 하부 호수 지역으로 나뉘며 여러 탐방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호수를 건너는 전기 보트와 공원 내부 이동 차량도 운행되기 때문에 일정과 체력에 따라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플리트비체 호수를 오가는 관광객용 전기 보트
By Thomas Dahlstrøm Nielsen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짧은 시간에 일부 지역만 둘러볼 수도 있지만 16개의 호수와 폭포를 충분히 감상하려면 하루 정도 시간을 잡는 것이 좋다. 특히 관광객이 많은 여름철에는 산책로가 붐빌 수 있으므로 비교적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고 싶다면 방문 시간과 계절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플리트비체의 매력은 거대한 폭포 하나나 아름다운 호수 하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 시작한 물이 숲과 호수를 지나 수많은 폭포를 만들며 아래로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물의 풍경에 있다. 그리고 그 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투파 장벽을 조금씩 쌓으며 플리트비체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