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북부에 남아 있는 하드리아누스 성벽의 일부 구간
By quisnovus from Gloucester, England, CC BY 2.0, wikimedia commons.
브리튼 섬 북부를 가로지르는 성벽이 있다. 오늘날에도 일부 구간이 남아 있는 이 구조물은 하드리아누스 성벽(Hadrian’s Wall)이라 불린다. 로마 시대에 건설된 방어 시설로, 로마인이 만든 성벽 가운데 가장 긴 구조물이다.
제국의 경계로 세워진 구조물
하드리아누스 성벽은 현재의 영국 북부, 아일랜드해와 북해를 잇는 선을 따라 이어진다. 길이는 약 118km에 이르며, 브리튼 섬을 사실상 남과 북으로 구분하는 방어선 역할을 했다.

안토니누스 성벽(위)과 하드리아누스 성벽(아래)의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By NormanEinstein,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이 성벽은 서기 122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명령으로 건설되었다. 그는 직접 브리튼을 방문한 뒤, 북쪽 지역에 대한 군사적 통제를 강화할 필요성을 인식했고 그 결과 이 거대한 성벽이 세워졌다.
이후 로마는 한때 더 북쪽까지 확장해 안토니누스 성벽을 세웠지만, 다시 하드리아누스 성벽으로 경계를 되돌렸다. 이후 하드리아누스 성벽은 로마의 북방 경계로, 브리튼에서 철수할 때까지 약 300년간 유지되었다.
단순한 벽이 아닌 방어 체계
하드리아누스 성벽은 단순히 돌로 쌓은 벽이 아니었다. 일정 간격마다 요새와 감시탑이 배치되었고, 병력이 상주하며 통행을 관리했다. 이는 외부의 침입을 막는 동시에, 내부의 이동을 통제하는 기능도 수행했다.

하드리아누스 성벽: 마일캐슬 39(소형 요새 유적)
by Anthony Foster, CC BY-SA 2.0 ,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즉, 이 구조물은 방어와 행정이 결합된 복합적인 국경 시스템이었다.
로마 군단이 만든 공사
이 성벽은 전문 건축가가 아니라, 로마 군단 병사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군단은 단순한 전투 집단이 아니라, 도로와 성벽, 요새를 건설하는 조직이기도 했다. 하드리아누스 성벽 역시 이러한 군사 공학의 산물이며, 약 6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은 로마 제국이 단순한 정복 국가가 아니라, 점령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행정 국가였음을 보여준다.
이름이 말해주는 것
흥미로운 점은 이 성벽의 이름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하드리아누스 성벽’이라 부르지만, 2003년에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당시에는 “발룸 엘리움(Vallum Aelium)”, 즉 ‘엘리우스의 성벽’이라는 이름이 더 널리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엘리우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가문 이름으로, 이 성벽이 단순한 군사 시설이 아니라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구조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남겨진 선
하드리아누스 성벽은 더 이상 국경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성벽은 로마 제국이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자, 동시에 그 확장이 멈춘 지점을 드러내는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