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면에서 바라본 브레제 성(Château de Brézé)의 입구와 양쪽 원형 탑
By Manfred Heyde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프랑스 루아르 계곡에는 수많은 성이 있다. 화려한 지붕과 탑으로 유명한 샹보르 성, 강 위에 세워진 슈농소 성처럼 저마다 독특한 모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 가운데 브레제 성(Château de Brézé)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겉으로 보면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대의 성이지만, 브레제의 진짜 비밀은 땅속에 있다. 성 아래 석회암층에는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방과 통로, 저장고와 방어 시설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지상에서 바라보는 우아한 성의 모습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세계다.
성보다 오래된 지하 공간

브레제 성이 위치한 메인에루아르 데파르트망
By Marmelad – Own work, CC BY-SA 2.5, wikimedia commons.
브레제 성은 프랑스 서부 메인에루아르(Maine-et-Loire) 지역, 소뮈르(Saumur)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지상의 성은 주로 16세기 이후에 만들어졌지만 이곳의 역사는 훨씬 오래되었다.
브레제에 성이 존재했다는 기록은 106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브레제의 영주들은 이 지역의 석회암 지반을 파 거주와 방어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공식 자료에서 ‘라 로슈(La Roche)’라고 부르는 이 초기 지하 시설에는 사람이 머무는 공간뿐 아니라 식량을 저장하는 사일로와 가축 먹이통, 방어를 위한 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후 지하 시설은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계속 확장되었다. 거주와 방어에서 시작해 식량 저장과 제빵, 와인 생산과 저장 등 다양한 용도의 시설이 차례로 더해졌다.
오늘날 브레제 성 아래에서 확인된 지하 공간과 통로의 전체 길이는 약 4km에 이르며, 이 가운데 1km 이상이 방문객에게 공개되어 있다.
18m 아래까지 파 내려간 거대한 해자
브레제 성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성을 둘러싼 거대한 마른 해자다. 1448년 브레제의 영주 질 드 마이에-브레제(Gilles de Maillé-Brézé)는 앙주 공작 르네 1세로부터 성을 요새화하고 수비대를 둘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이 무렵 성 주위의 석회암 지반을 파내 깊이 약 10~12m의 해자가 조성되었다.

깊은 마른 해자를 가로질러 브레제 성의 입구로 이어지는 석조 다리
By Gerd Eichmann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해자는 물을 채우는 대신 암반 자체를 깊숙이 파낸 마른 해자(dry moat)였다. 이후 16세기에 성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하는 과정에서 해자를 더욱 깊게 파면서 가장 깊은 곳은 약 18m에 이르게 되었다.
성벽 아래에서 해자 바닥을 내려다보면 지상에서 성을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높은 석회암 벽이 성을 둘러싸고 있고 그 벽면 곳곳에는 땅속으로 이어지는 입구와 시설들이 남아 있다.
따라서 브레제의 해자는 단순히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한 빈 공간만은 아니었다. 해자와 그 주변의 지하 시설이 서로 연결되면서 성의 방어와 생활을 함께 담당하는 복합적인 공간을 이루었다.
땅속에 만들어진 생활 공간

브레제 성의 지상(짙은 청록색)과 지하 시설(주황색)을 함께 보여주는 안내도
By Gerd Eichmann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브레제 성의 지하로 내려가면 단순한 비밀 통로와는 전혀 다른 공간을 만나게 된다. 수세기에 걸쳐 확장된 땅속 시설에는 곡물을 저장하는 사일로와 빵을 굽는 공간, 마구간, 와인을 만들고 저장하는 시설 등이 들어섰다. 시대에 따라서는 누에를 기르는 장소로 사용된 곳도 있었다.

브레제 성 지하에 마련된 옛 제빵 시설과 빵을 굽던 화덕
By Gerd Eichmann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가운데 일부 시설은 중세의 방어와 생활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다른 공간들은 훨씬 뒤에 추가되었다. 브레제의 지하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의 시대에 계획적으로 건설된 거대한 지하 요새가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땅을 파고 공간을 넓히면서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시킨 장소이기 때문이다.

브레제 성의 지하 와인 저장고에 줄지어 놓인 대형 오크통
By Gerd Eichmann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특히 브레제가 자리한 소뮈르 일대는 오래전부터 와인 생산으로 유명했다. 석회암을 파낸 지하 공간은 일 년 내내 온도 변화가 비교적 적어 와인을 만들고 보관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브레제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지하 시설의 일부를 와인 생산과 저장에 활용했다.
따라서 브레제의 지하를 단순한 ‘지하 요새’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그 성격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이곳은 피난처이자 방어시설이었고, 동시에 저장고와 작업장, 생산 공간이었다.
지하 시설 위에 세워진 르네상스 성
브레제 성은 16세기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를 맞았다. 당시 영주였던 아르튀스 드 마이에-브레제(Arthus de Maillé-Brézé)는 1560년에서 1580년 사이 기존의 중세 성 대부분을 허물고 그 자리에 르네상스 양식의 새로운 성을 건설했다. 이때 세 개의 건물 동이 세워졌으며, 중세 성의 일부 탑은 그대로 남겨 새로운 건축물에 포함되었다. 방어를 우선하던 중세의 요새가 귀족의 권위와 생활을 보여주는 르네상스 시대의 저택으로 변해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성을 건설하면서 과거의 흔적을 모두 없애지는 않았다. 깊은 해자와 땅속 시설은 계속 남아 새로운 건축물과 결합했다. 덕분에 브레제 성에서는 중세의 방어 시설과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을 한 장소에서 함께 볼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에 다시 모습을 바꾼 성

르네상스 건축과 19세기 네오고딕 요소가 함께 나타나는 브레제 성의 중정
By Marc Ryckaert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오늘날 브레제 성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모두 16세기에 완성된 것은 아니다. 19세기에는 앙주 출신 건축가 르네 오데(René Hodé)가 성의 일부를 대대적으로 개조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네오고딕 양식이 더해지고 대회랑과 사각탑 등이 새롭게 조성되었다.
그 결과 현재의 브레제 성에서는 르네상스 건축과 19세기 네오고딕 건축이 함께 나타난다. 여기에 중세의 해자와 더 오래된 지하 시설까지 남아 있어 어느 한 시대의 건축물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모습을 갖게 되었다.
브레제 성의 역사적 가치도 일찍부터 인정받았다. 성의 외관과 지붕, 해자와 다리, 일부 실내 공간과 부속 시설 등은 1979년 프랑스의 역사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땅 위의 성과 땅 아래의 역사
브레제 성을 소개할 때 흔히 ‘성 아래의 성(Un château sous un château)’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실제로 지하에 또 하나의 성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땅속에 펼쳐진 시설의 규모와 복잡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깊은 해자와 석회암 벽, 어두운 통로와 저장 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지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화려한 귀족의 생활 공간이 자리한 지상과 달리, 땅속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브레제의 또 다른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브레제 성은 16세기의 르네상스 건축에 19세기의 건축 양식이 더해진 모습이다. 브레제 성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지상의 화려한 건축물뿐 아니라 그 아래 깊숙이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까지 함께 들여다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