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일러 빙하(Taylor Glacier)끝에서 보니 호수(Lake Bonney)로 스며 나오는 피의 폭포
By NSF/Peter Rejcek,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남극 맥머도 드라이 밸리(McMurdo Dry Valleys)의 테일러 빙하 아래에는 ‘피의 폭포(Blood Falls)’라고 불리는 독특한 지형이 있다. 빙하 틈을 따라 붉은색의 물이 흘러나오는 현상으로, 흡사 얼음이 피를 흘리는 듯하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니라, 남극 빙하 환경과 지하수 순환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붉은색의 정체
폭포가 붉게 보이는 이유는 물 속의 철 성분이 대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 산화되기 때문이다. 물 자체는 투명하지만, 철이 산화철로 변하는 과정에서 붉은색이 형성된다. 초기에는 조류나 미생물이 색을 만든다는 가설도 있었지만, 현재는 철분 산화가 주요 원인이라는 데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염수의 기원
폭포의 수원은 빙하 아래에 존재하는 염수 저장소다. 연구에 따르면 이 물은 수십만 년에서 백만 년 이상 고립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한때 해수나 호수였던 물이 빙하에 갇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염수는 매우 높은 염분 농도와 철·황 화합물을 포함하고 있으며, 물이 공기와 만나는 순간 산화가 시작된다.
저장소가 위치한 깊이는 연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수백 미터 얼음 아래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 저장소는 남극에서도 드물게 관찰되는 지하수 시스템의 한 형태다.
극한 환경의 미생물

피의 폭포 아래 미생물이 극한 환경에서 백만 년 동안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도
By Zina Deretsky/ US NSF,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이 염수 속에서 미생물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흥미롭다. 이 미생물들은 빛과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철과 황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 이는 지표의 생태계와 분리된 상태에서도 생명체가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성은 피의 폭포가 지질학뿐 아니라 극한 생명 연구에서도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 이유다.
폭포는 간헐적으로 흐른다
‘폭포’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항상 물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염수는 빙하 내부의 압력 변화와 균열 구조에 따라 간헐적으로 방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절과 기온, 빙하의 이동 속도에 따라 수량과 색의 변화도 관찰된다.
외계 생명 연구의 모델
NASA는 이 지역을 연구하며 피의 폭포가 화성이나 목성의 위성 유로파(Europa),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Enceladus)와 유사한 조건을 가진다고 평가한다. 저온, 높은 염분, 산소 부족, 빙하 아래 액체 상태의 물이라는 조건은 우주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비교 대상으로 활용된다.
남극이 말해주는 것
피의 폭포는 단순한 지질학적 특이 현상이 아니다. 고대 해수의 흔적, 극한 환경 속의 미생물, 빙하 아래 순환하는 물의 흐름은 지구가 가진 다양성과 복잡성을 보여준다. 남극의 이 지점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시간이 보존되고, 생명과 물질의 순환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