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퍼진 밀가루가 폭발하는 이유

밀가루폭발을 실험하는 장면

압축공기로 퍼뜨린 밀가루 분진의 점화와 폭발 과정

By Hans-Peter Scholz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봉지나 그릇에 담긴 밀가루가 저절로 폭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운 밀가루가 공중에 퍼져 먼지구름을 이루고 여기에 불꽃이 닿으면 화염이 빠르게 번질 수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압력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폭발로 이어진다.

밀가루뿐만 아니라 설탕과 전분, 곡물과 목재의 가루, 석탄이나 일부 금속의 미세한 가루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분진폭발(dust explosion)’이라고 한다.

공중에 떠오른 밀가루 분진

밀가루의 주성분인 전분은 불에 탈 수 있는 유기물이다. 하지만 한곳에 쌓여 있는 밀가루는 공기와 접촉하는 면적이 제한돼 있어 불이 붙더라도 비교적 천천히 탄다. 그러나 미세한 밀가루 입자가 공중에 흩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수많은 입자가 산소와 접촉하면서 연소할 수 있는 전체 표면적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꽃이나 뜨거운 표면, 마찰열, 정전기 같은 점화원이 더해지면 화염이 입자 사이로 빠르게 전파된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이때 발생한 열과 기체가 빠져나가지 못해 내부 압력이 급격히 상승하고 폭발로 이어진다.

폭발을 만드는 다섯 가지 조건

분진 폭발의 오각형

분진폭발의 오각형: 분산, 밀폐, 연료, 산소, 점화원

By U.S. NIOSH,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분진폭발이 일어나려면 일반적으로 다섯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 밀가루와 같은 가연성 분진
  • 공기 중의 산소
  • 불꽃이나 정전기 등의 점화원
  • 충분한 농도를 이루는 분진의 공중 분산
  • 압력이 축적될 수 있는 밀폐 공간

이를 ‘분진폭발의 오각형’이라고 한다. 다섯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제거하면 폭발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밀가루가 폭발할 수 있는 최저 농도는 가루의 종류와 입자 크기, 수분 함량 등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특정 실험에서 나온 수치를 모든 밀가루에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

더 위험한 2차 폭발

분진폭발은 첫 번째 폭발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작은 폭발의 충격으로 바닥과 기계, 천장 등에 쌓여 있던 가루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면 더 큰 먼지구름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첫 폭발에서 발생한 화염이 닿으면 훨씬 강한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를 ‘2차 분진폭발’이라고 한다.

제분소와 곡물 저장고에서 환기와 집진을 철저히 하고 설비 주변에 쌓인 가루를 계속 제거하는 이유다. 평소에는 얇게 쌓인 먼지에 불과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추가 폭발을 일으키는 연료가 될 수 있다.

1785년 토리노의 초기 과학적 기록

분진폭발을 과학적으로 조사한 가장 이른 사례 가운데 하나로 1785년 12월 14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자코멜리 밀가루 창고에서 발생한 사고가 꼽힌다.

1785년 토리노 자코멜리 제빵소에서 발생한 밀가루 분진폭발의 과정을 설명한 도해이다. 중앙에 점화원으로 램프가 있으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1785년 토리노 자코멜리 제빵소에서 발생한 밀가루 분진폭발의 과정을 설명한 도해

By Badobscu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당시 한 작업자가 창고 위층에서 체질기에 밀가루를 붓는 과정에서 고운 가루가 아래쪽으로 떨어져 공중에 퍼졌다. 이렇게 형성된 밀가루 분진이 아래층에 있던 촛불 램프에 의해 점화되면서 폭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시설이 크게 파손되고 작업자 두 명이 다쳤다.

토리노과학아카데미의 카를로 루도비코 모로초 백작은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밀가루 분진과 폭발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가 1795년에 발표한 보고서는 분진폭발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초기 기록으로 평가된다.

이 사고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분진폭발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기록으로 남지 않은 폭발이 이전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18명이 숨진 워시번 제분소 폭발

1878년 5월 2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워시번 A 제분소에서도 대규모 분진폭발이 발생했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졌던 제분소의 지붕이 날아가고 주변의 여러 제분소까지 불길에 휩싸였다.

1878년 미니애폴리스 워시번 A 제분소 폭발 사고 당시의 기록 사진

1878년 미니애폴리스 워시번 A 제분소 폭발 사고

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워시번 제분소 안에 있던 노동자 14명과 인근 제분소 노동자 4명 등 모두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확한 점화 원인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공중에 퍼진 밀가루 분진에 불이 붙으면서 폭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이후 재건된 제분소에는 환기와 집진을 개선하기 위한 설비가 도입됐다. 워시번 제분소 폭발은 밀가루를 대량으로 취급하는 시설에서 분진 관리가 중요한 이유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산업재해로 남아 있다.

가정에서의 위험성

가정에서 봉지나 그릇에 담아 사용하는 밀가루가 저절로 폭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폭발하려면 미세한 가루가 폭발 가능한 농도로 공중에 퍼지고, 점화원과 밀폐 조건까지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꽃 가까이에서 밀가루를 일부러 날리면 순간적으로 큰 화염이 발생해 화상이나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분진폭발을 직접 재현하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주방에서 밀가루는 평범한 식재료지만 제분소와 저장고처럼 많은 양의 가루가 공중에 퍼질 수 있는 공간에서는 작은 불꽃이나 정전기에도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 물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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