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연구 개요
2020년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의 연구는 스트레스가 머리카락 색소를 만들어내는 줄기세포를 얼마나 빠르게 고갈시킬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처음 밝혀냈다. 이 연구는 스트레스와 흰머리 사이의 관계를 단순한 인상이나 경험담이 아닌, 구체적인 생물학적 과정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줄기세포는 머리색의 근원
머리카락의 색은 멜라닌 색소에 의해 결정되며, 이 색소는 멜라닌세포라는 세포가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멜라닌세포는 다시 모낭 속에 존재하는 멜라닌세포 줄기세포(Melanocyte Stem Cells, MeSCs)에서 생성된다. 다시 말해, 이 줄기세포가 유지되는 한 머리카락은 본래의 색을 가질 수 있다.
스트레스와 교감신경계의 과활성화
연구진은 스트레스가 머리카락 색에 영향을 미치는 가능한 경로를 하나씩 검증했다. 면역계의 작용이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원인일 가능성도 함께 살폈지만, 면역세포가 없는 실험쥐에서도 흰털이 생겼고, 코티솔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조건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한 끝에 연구진은 머리카락 색 변화의 핵심 요인이 교감신경계(Sympathetic Nervous System)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노르아드레날린에 의한 줄기세포 고갈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며, 그 결과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 노르에피네프린이라고도 불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은 혈관이나 심박수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모낭 속 멜라닌세포 줄기세포에 직접 작용한다.
노르아드레날린에 노출된 줄기세포는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빠르게 분화하고 이동하며, 그 과정에서 본래 머물러야 할 모낭의 자리를 떠나게 된다. 이로 인해 줄기세포의 저장고(MeSC 저장고)는 회복되지 않은 채 영구적으로 고갈되고, 그 결과 이후에 자라나는 머리카락은 색소를 공급받지 못해 흰색이나 회색으로 나타난다.
실험적 증거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심리적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 그리고 경미한 신체적 스트레스를 가하는 등 여러 유형의 스트레스를 적용했다. 그 결과 스트레스의 형태와 상관없이 멜라닌 줄기세포의 수가 감소했고, 동시에 흰털의 비율이 증가하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관찰되었다.
이 발견의 의의
이 연구는 그동안 막연한 속설로 여겨졌던 ‘스트레스를 받으면 흰머리가 난다’는 인식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스트레스가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키고, 그 신호가 줄기세포 고갈로 이어지며, 최종적으로 흰머리라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단계적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제시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하지만 이 연구는 주로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머리카락 구조와 생리적 반응은 쥐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적인 인간 대상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의 확장
이 연구 이후 과학자들의 관심은 단순히 ‘스트레스와 흰머리’에 머물지 않고, 스트레스가 줄기세포에 미치는 영향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스트레스가 특정 조직의 노화를 어떻게 가속하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몸 전체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탐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된 연구로 평가된다.
참조:
Zhang, B., et al. (2020). Hyperactivation of sympathetic nerves drives depletion of melanocyte stem cells. Nature, 577, 676–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