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권력의 정당성: 사회계약론으로 읽는 홉스, 로크, 루소, 롤스

사회계약을 상징하는 이미지 원형

국가는 왜 우리에게 복종을 요구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 국가는 세금을 걷고 법을 제정하며, 범죄를 처벌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을 결정하거나 감염병 확산 같은 비상 상황에서 개인의 이동을 제한하기도 한다. 이처럼 국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권한을 행사한다.

이러한 국가 권력은 어디에서 정당성을 얻는 것일까. 정치철학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고민해 왔으며, 그 대표적인 해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 Theory) 이다.

국가가 단순한 물리적 강제력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안전과 질서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자유 일부를 기꺼이 국가에 맡겼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국가의 권력은 무력이나 혈통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계약은 실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국가와 어떤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다. 사회계약은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철학적 사고실험이다. 만약 사람들이 법도 정부도 없는 상태에서 함께 살아갈 방식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면, 서로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규칙과 권력을 만들어 내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결국 사회계약론은 자유와 질서 사이의 선택에 관한 이론이다. 개인은 자유의 일부를 제한받지만, 그 대가로 안전과 평화, 그리고 안정된 사회질서를 얻는다. 사회계약론자들은 이러한 교환이 국가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라고 보았다.

홉스: 국가가 없으면 인간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리바이어던 표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초판 권두삽화 (아브라함 보스의 판화)

By Abraham Bosse, CC0, wikimedia commons.

사회계약론을 강력하게 제시한 대표적 인물은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다. 그는 1651년에 출간한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자연 상태(state of nature)라고 불렀다.

홉스가 상상한 자연 상태는 평화로운 원시 공동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곳은 누구도 누구를 믿을 수 없는 불안한 세계였다. 법도 없고, 경찰도 없고, 재판도 없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면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이 된다.

홉스는 이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war of all against all)’으로 보았다. 인간이 반드시 악해서라기보다, 아무도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먼저 공격하거나 먼저 빼앗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홉스에게 국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권리와 힘을 하나의 주권자(sovereign)에게 위임한다. 그 주권자가 바로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상징적으로 표현한 리바이어던(Leviathan), 즉 절대적 권위를 가진 국가다.

로크: 국가는 국민의 동의를 배신하면 안 된다

하지만 모든 사회계약론자가 홉스처럼 강한 국가를 옹호한 것은 아니다. 17세기 후반 영국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국가 권력의 출발점을 사람들의 동의에서 찾았지만, 홉스보다 훨씬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로크에게 국가는 국민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이다.

중요한 차이는 여기에 있다. 홉스에게는 일단 주권자가 세워지면 그 권력이 매우 강력해야 했다. 반면 로크에게 통치자는 조건부로 권력을 위임받은 존재였다. 통치자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침해한다면 국민은 자신의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

이 생각은 훗날 입헌주의와 근대 민주주의, 그리고 저항권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루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타락한 존재인가

루소의 사회계약론 표지

루소의 『사회계약론』 초판(1762) 표제지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또 다른 방향에서 사회계약을 생각했다. 홉스가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강조했다면, 루소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은 인간 본성 자체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라고 보았다.

루소는 인간이 본래부터 악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명과 제도, 사유재산과 경쟁이 인간을 비교하고 질투하게 만들며, 그 과정에서 불평등과 억압이 생긴다고 보았다.

여기서 흔히 등장하는 표현이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이다. 다만 이 표현은 루소의 사상을 설명할 때 널리 사용되는 용어이지, 루소가 직접 사용한 핵심 개념은 아니다.

루소에게 사회계약은 단순히 안전을 얻기 위한 거래가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각자의 사적인 욕망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인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에 참여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루소의 문제의식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롤스: 내가 어떤 사람으로 태어날지 모른다면

20세기에 들어와 사회계약론을 새롭게 발전시킨 인물은 미국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 다. 그는 1971년 출간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과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라는 유명한 사고실험을 제시했다.

상상해 보자.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나는 내가 그 사회에서 부자로 태어날지,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날지 모른다. 건강할지 아플지, 능력이 뛰어날지 그렇지 않을지, 다수자일지 소수자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전혀 모르는 상태라면 사람들은 어떤 사회를 선택할까?

롤스는 사람들이 특정 집단만 유리한 사회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바로 그 불리한 집단에 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기본적 자유가 보장되고, 불평등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가장 불리한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사회를 선택하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롤스의 사회계약론은 국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설명하기보다, 공정한 사회는 어떤 원칙 위에 세워져야 하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계약론이 말하는 것

사회계약론은 하나의 답만 제시하는 이론이 아니다. 홉스, 로크, 루소, 롤스는 모두 사회계약을 말했지만 강조점은 서로 달랐다.

  • 홉스는 무질서와 폭력을 피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 로크는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때만 정당하다고 보았다.
  • 루소는 자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고민했다.
  • 롤스는 공정한 사회의 원칙을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국가 권력이 스스로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국가 권력은 단순히 힘을 행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목적과 원칙에 기초할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사회계약론이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의 법을 따르고 세금을 내며 살아간다. 자유의 일부를 제한받는 상황도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계약론은 지금도 우리에게 국가 권력의 정당성과 시민의 권리, 그리고 자유와 질서의 균형을 끊임없이 되묻게 하는 살아 있는 정치철학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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