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시간씩 잠들기도 한다, 클라인-레빈 증후군(KLS)

오랜 시간 깊은 잠에 빠진 모습

어느 날 갑자기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기 시작한다. 하루 16~20시간을 자기도 하고, 잠에서 깨어나도 정신이 흐릿하다. 생각하거나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워지고 주변 세계가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이어지다가 사라진다. 그러면 다시 평소와 비슷한 생활로 돌아간다. 하지만 얼마 뒤 같은 증상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이처럼 극심한 과다수면이 일정 기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되는 희귀 수면질환이 클라인-레빈 증후군(Kleine-Levin syndrome, KLS)이다.

계속 잠을 많이 자는 병은 아니다

이러한 증상기는 단순히 잠을 오래 자는 것과는 다르다. 증상기가 시작되면 환자는 하루 16~20시간을 잠으로 보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시간 동안 계속 의식을 잃은 것처럼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깨우면 일어날 수 있고 음식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깨어나기도 하지만, 다시 잠드는 경우가 많다.

한 차례의 증상기는 보통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지속된다. 현재 국제수면장애분류(ICSD-3-TR)에서는 적어도 두 차례의 과도한 졸림과 수면 증가가 나타나고, 각각의 증상기가 2일에서 수주 동안 지속되는 것을 KLS 진단의 중요한 조건으로 본다. 이러한 증상기는 보통 1년에 한 번 이상, 적어도 18개월에 한 번 이상 반복된다.

증상기가 끝나면 적어도 질환 초기에는 수면과 각성, 인지와 행동 등이 정상 또는 정상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모든 환자가 증상기 사이에 완전히 아무 증상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가벼운 인지 문제나 기분 변화 등이 남기도 한다.

깨어 있어도 평소와 다르다

KLS가 단순한 과다수면증과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잠에서 깨어 있는 동안에도 평소와 다른 상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심한 무기력과 혼란이 나타날 수 있고, 생각과 말이 느려지거나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현실이 꿈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비현실감(derealization)의 이미지.

특히 특징적으로 보고되는 증상 가운데 하나가 비현실감(derealization)이다. 주변 세계가 실제가 아니라 꿈이나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지거나 자신과 세상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이 생긴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익숙한 사람이나 장소가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심한 무감동도 흔히 나타나며 일부에서는 환각이나 망상과 비슷한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현재 진단기준에서도 증상기 동안 과다수면과 함께 인지기능 장애, 비현실감, 심한 무감동 또는 탈억제 행동 가운데 적어도 하나가 나타나는 것을 중요하게 본다. 따라서 KLS의 핵심은 단순히 ‘오래 잔다’는 데 있지 않다. 수면이 극단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에 인지와 지각, 행동도 함께 달라지는 것이 이 질환의 중요한 특징이다.

과식과 과잉성욕은 모든 환자에게 나타날까?

KLS를 설명할 때 과식과 과잉성욕이 자주 언급된다. 실제로 일부 환자는 증상기 동안 평소보다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특정 음식을 계속 찾는다. 행동 억제력이 떨어지면서 성적 충동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모든 KLS 환자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2024년 475건의 증례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강박적인 과식이 약 60%, 성욕 증가가 약 34%에서 보고됐다. 반대로 식욕이 감소하는 환자도 있었다.

따라서 KLS를 ‘많이 자고, 많이 먹고, 성욕이 강해지는 병’으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과식이나 과잉성욕은 나타날 수 있는 행동 변화 가운데 일부이며, KLS 환자 모두에게 나타나야 하는 증상은 아니다.

주로 청소년기에 시작된다

KLS는 매우 드문 질환이다. 정확한 유병률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부 지역 연구에서는 인구 100만 명당 수 명 정도로 추정된다.

발병은 특히 청소년기에 많다 186명의 환자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발병 연령의 중앙값이 15세였으며 약 81%가 10대에 처음 증상을 경험했다. 남성 환자가 더 많이 보고돼 왔지만 여성에게도 발생한다.

청소년기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 처음에는 생활습관이나 의욕의 문제로 오해할 수도 있다. 특히 우울이나 불안, 환각이나 망상과 비슷한 증상이 동반되면 정신질환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그러나 KLS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과다수면 증상기와 함께 나타났다가 호전되고 다시 반복되는 독특한 시간적 경과를 보인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연구자들이 오래전부터 주목해 온 특징이 있다. 첫 발병이나 새로운 증상기가 나타나기 전에 감염을 경험한 환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186명의 환자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감염이 가장 흔하게 보고된 촉발 요인이었다.

이 밖에도 수면 부족, 음주, 스트레스, 두부 외상 등의 사건이 증상 발생 전에 보고돼 왔다. 이 때문에 감염 뒤의 면역·염증 반응이 뇌의 수면과 각성 및 인지 기능에 일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는 가설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감염 뒤에 KLS가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과 감염이 KLS의 원인이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KLS가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사실도 입증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면역·염증 반응을 비롯한 여러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을 뿐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유전적 요인도 있을까?

대부분의 KLS 환자에게 뚜렷한 가족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족 안에서 여러 환자가 발생하거나 일란성 쌍둥이에게 함께 나타난 사례가 보고돼 유전적 요인의 가능성도 연구돼 왔다.

유전체 연구에서는 TRANK1 유전자 주변의 특정 변이와 KLS 사이의 연관성도 보고됐다. 그렇다고 ‘KLS 유전자’가 발견됐다는 뜻은 아니다. 특정 유전자 하나가 질환을 직접 일으킨다고 확인된 것이 아니라, 일부 유전적 차이가 KLS에 대한 감수성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현재로서는 여러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질환 발생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다.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KLS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뇌영상 연구도 이루어졌다. 수면과 각성 조절에 관여하는 시상과 시상하부를 비롯해 전두엽과 측두엽 등 여러 뇌 영역에서 기능 변화가 보고됐다. 하지만 연구 결과가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연구마다 결과도 일관되지 않는다.

클라인-레빈 증후군에서는 여러 뇌 영역의 기능 변화가 보고됐지만, 정확한 발생 기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까지 KLS를 진단할 수 있는 특정 MRI 소견이나 뇌영상 바이오마커는 발견되지 않았다. KLS가 특정한 뇌 부위 하나의 손상으로 발생한다기보다는 수면과 각성, 인지와 감각을 담당하는 여러 뇌 영역과 네트워크의 기능 변화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다.

검사 하나로 진단할 수 없다

KLS에는 ‘이 검사가 양성이면 KLS’라고 판정할 수 있는 검사가 없다. 혈액검사나 뇌 MRI, 뇌파검사, 수면검사가 진단 과정에서 시행될 수 있지만 주된 목적은 KLS 자체를 확인하는 것보다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다른 원인을 찾아내거나 배제하는 것이다. 다른 수면질환이나 간질, 감염, 뇌질환, 대사질환, 약물이나 물질의 영향, 정신질환 등이 비슷한 모습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단에서는 환자가 어떤 증상을 보였는지뿐 아니라 그 증상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나타나고 사라졌는지가 중요하다. 극심한 과다수면이 며칠에서 몇 주 동안 나타나고 그동안 인지나 지각, 행동에 변화가 생기며, 이후 정상 또는 정상에 가까운 상태로 회복됐다가 다시 비슷한 증상기가 나타나는지를 살펴본다.

결국 KLS는 특정 검사 하나가 아니라 특징적인 증상과 반복되는 경과, 그리고 다른 원인의 배제를 통해 진단하는 질환이다.

아직 확립된 치료법은 없다

현재 KLS를 완치할 수 있는 확립된 치료법은 없다. 증상기가 시작되면 우선 환자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지 기능과 판단력이 떨어져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운전이나 위험한 활동을 피하고 충분한 수분과 영양을 섭취하도록 하는 등의 보조적 관리가 필요하다.

심한 졸림을 줄이기 위해 모다피닐 같은 각성제가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잠을 깨우는 것과 KLS 자체를 치료하는 것은 다르다. 각성제가 졸림을 줄이더라도 비현실감이나 인지·행동 변화까지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재발 예방 목적으로 비교적 많이 연구된 약물 가운데 하나는 리튬(lithium)이다. 130명의 KLS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향적 공개 대조연구에서는 리튬을 복용한 71명에서 증상기의 빈도와 지속기간 등이 치료하지 않은 환자보다 더 많이 감소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무작위 이중맹검 위약대조시험이 아니었다. 따라서 리튬이 일부 환자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치료 효과를 확정하기에는 근거가 제한적이다. 리튬은 부작용과 혈중 농도 관리도 필요하기 때문에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치료도 아니다.

면역·염증 가설에 근거해 스테로이드 등의 치료도 연구됐지만 현재까지 표준 치료로 확립되지는 않았다.

왜 치료제 연구가 어려울까?

KLS 치료 연구에는 질환 자체의 특성 때문에 큰 어려움이 있다. 우선 환자가 매우 적어 충분한 규모의 임상시험을 하기 어렵다.

여기에 KLS의 또 다른 특징이 문제가 된다. 증상기가 저절로 시작됐다가 저절로 끝난다는 것이다. 어떤 약을 사용한 뒤 환자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해도 약 때문에 증상기가 끝난 것인지, 원래 그 시점에 자연스럽게 끝날 증상기였는지를 구별하기 어렵다.

따라서 KLS에서는 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나 관찰연구가 많고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을 통한 확실한 치료 근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까?

많은 환자에게서 KLS는 시간이 흐르면서 증상기의 빈도와 강도가 감소하고 결국 더 이상 재발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는 개인차가 크다. 여러 해에 걸쳐 증상기가 반복되는 경우가 흔하며 일부 환자에서는 20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따라서 ‘몇 년이 지나면 낫는다’처럼 일정한 기간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청소년기에 시작된 뒤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증상기가 점차 줄어드는 환자가 많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경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증후군’이라는 이름 너머

클라인-레빈 증후군은 흔히 ‘잠자는 숲속의 미녀 증후군’이라는 인상적인 별칭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실제 환자가 경험하는 것은 단순히 아주 오래 잠드는 현상이 아니다.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수면이 극단적으로 증가하고, 그와 함께 생각하고 기억하고 현실을 지각하며 행동하는 방식까지 달라졌다가 다시 정상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된다.

19세기부터 관련 사례가 알려져 왔지만 왜 이런 변화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클라인-레빈 증후군은 단순히 오래 자는 병이 아니다. 수면과 각성뿐 아니라 인지와 지각, 행동의 변화가 일정 기간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되는 희귀 수면질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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