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키는 정말 번개에 더 위험할까 ᅳ 기린의 경우

번개가 치는 사바나의 기린. 큰 키와 긴 다리는 낙뢰 환경에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높은 곳을 향하는 번개

넓은 초원에서 번개가 칠 때, 키가 큰 동물은 정말 더 위험할까? 키가 5m를 넘는 기린은 이 질문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실제로 기린은 다른 동물보다 낙뢰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번개는 주변 환경에서 높게 솟아 있는 물체를 통로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높은 나무나 탑이 번개를 맞기 쉬운 것처럼 탁 트인 초원에 서 있는 기린 역시 주변보다 높은 지점이 된다. 그래서 기린을 때때로 ‘살아 있는 피뢰침’에 비유하기도 한다.

기린은 얼마나 자주 번개 피해를 입을까

기린이 번개에 맞아 죽은 사례가 관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영국의 한 과학 매체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10년 사이 비교적 명확하게 기록된 기린의 치명적인 낙뢰 사례는 5건이었다.

얼핏 보면 매우 적은 숫자로 보이지만, 단순한 사망 건수만으로 위험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전체 개체 수와 비교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린의 개체 수를 고려했을 때 낙뢰로 인한 사망 위험은 인간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큰 키와 탁 트인 초원에서 생활하는 환경이 그 이유로 꼽힌다.

위험은 하늘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번개의 위험은 직접 맞는 경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또 다른 원인은 지면 전류(ground current)다.

번개가 땅에 떨어지면 강한 전류가 주변 지표면을 따라 퍼져나간다. 이때 근처에 있는 동물은 한쪽 다리를 통해 들어온 전류가 몸을 지나 다른 다리로 빠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번개가 직접 몸에 떨어지지 않아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지면전류를 설명하는 그림

네발동물은 사람보다 지면 전류에 더 취약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의 거리 때문이다.

번개가 떨어진 주변에서는 위치에 따라 전기적 차이가 생긴다. 두 접점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몸 양쪽에 걸리는 전압 차이가 커질 수 있다. 이를 보폭 전압(step voltage)이라고 한다.

기린처럼 몸집이 크고 다리가 긴 동물은 높은 키 때문에 직접 낙뢰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긴 다리 때문에 지면 전류에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한 번의 번개가 수백 마리 동물을 죽이는 이유

이 현상은 기린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초원이나 넓은 지역에서 무리 지어 생활하는 동물들은 한 번의 낙뢰로 집단 피해를 입기도 한다.

실제로 2021년 8월 조지아 남부 니노츠민다(Ninotsminda) 지역의 아불 산(Mount Abul) 인근 목초지에서는 폭풍 중 양 550마리 이상이 한꺼번에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 번의 낙뢰 이후 지면을 따라 퍼진 전류가 무리를 이루고 있던 양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사례는 북유럽에서도 있었다. 2016년 8월 노르웨이 하르당에르비다(Hardangervidda) 고원에서는 야생 순록 323마리가 낙뢰로 폐사했다. 당시 순록들은 폭풍 속에서 서로 가까이 모여 있었으며, 이 때문에 지면 전류의 영향을 함께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규모 피해는 번개가 각각의 동물을 직접 때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넓게 퍼져 나가는 전류와, 폭풍 때 서로 모여 있으려는 동물의 행동이 겹치면서 한 번의 낙뢰가 수백 마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큰 키는 정말 번개에 더 위험할까

결론적으로 큰 키는 낙뢰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기린의 사례가 알려주는 것은 단순히 “키가 크면 번개를 맞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번개 피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의 빛만이 아니라, 땅 위를 보이지 않게 이동하는 전기의 움직임과도 관련되어 있다.

기린은 큰 키와 긴 다리라는 특징 때문에 자연에서 번개가 생물에게 어떤 방식으로 위험해지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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