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슈타니차 수도원의 예배 공간에 켜져 있는 양초
By Petar Milošević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오늘날 양초는 주로 장식이나 분위기 연출을 위해 사용되지만, 전기조명이 보급되기 전에는 중요한 조명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오랫동안 사용된 만큼 양초를 만드는 재료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했다.
동물의 지방으로 만든 양초
양초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특정 문명을 양초의 발명자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고대부터 사람들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지방과 왁스 성분을 이용해 불을 밝혔다는 것이다.

동물성 지방인 수지(tallow)로 만든 양초 (뉴질랜드 오클랜드 박물관)
By Auckland Museum, CC BY 4.0, wikimedia commons.
고대 로마에서는 동물성 지방인 수지(tallow)나 밀랍을 이용한 심지 양초가 사용되었다. 수지는 소나 양과 같은 동물의 지방에서 얻을 수 있어 오랫동안 유럽에서 중요한 양초 재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수지로 만든 양초는 태울 때 연기와 불쾌한 냄새가 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더 깨끗하게 타는 밀랍
중세 유럽에서는 수지와 함께 밀랍(beeswax)으로 만든 양초도 사용되었다. 밀랍 양초는 수지 양초보다 깨끗하게 타고 불쾌한 냄새도 적었다. 하지만 밀랍은 수지보다 비싼 재료였다. 이 때문에 밀랍 양초는 특히 교회의 종교의식 등에 사용되었고, 일반 가정에서 널리 사용할 수 있는 값싼 조명은 아니었다.

밀랍으로 만든 양초(잘츠부르크 헬브룬 궁전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By Werner100359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따라서 오랫동안 유럽에서는 비교적 값싼 수지 양초와 품질이 좋지만 비싼 밀랍 양초가 함께 사용되었다.
향유고래가 양초의 재료가 되다
양초의 역사에서 가장 뜻밖의 재료 가운데 하나는 향유고래(sperm whale)에서 얻은 스퍼마세티(spermaceti)다. 향유고래의 머리에는 스퍼마세티 기관이 있다. 과거 포경업자들은 여기에서 얻은 기름을 냉각해 희고 결정성인 왁스 성분인 스퍼마세티를 분리했다. 그리고 이것을 양초의 원료로 사용했다.

스퍼마세티 왁스(왼쪽), 스퍼마세티 양초(가운데), 향유고래 기름이 담긴 병(오른쪽).
By Genevieve Anderson,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18~19세기 포경산업에서 고래에서 얻은 기름과 여러 물질은 조명과 윤활유, 양초 등의 재료로 이용되었다. 그 가운데 스퍼마세티는 품질 좋은 양초의 원료로 사용되었다.
19세기, 파라핀의 등장
19세기 중반에는 양초의 재료에 또 한 번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파라핀 왁스(paraffin wax)의 등장이다. 석유에서 왁스 성분을 분리하고 정제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1850년대부터 파라핀이 양초 제조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파라핀 왁스로 만든 무향 양초. 천연 면 심지를 사용한 제품
By Neoclassicism Enthusiast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파라핀은 냄새가 거의 없고 깨끗하게 타는 데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다만 초기 파라핀은 녹는점이 낮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후 단단한 스테아린산(stearic acid)을 첨가하면서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었고, 파라핀은 중요한 양초 원료로 자리 잡았다.
양초의 대량생산 기술 역시 19세기에 발전했다. 1834년 영국의 발명가 조지프 모건(Joseph Morgan)은 몰드를 이용해 양초를 연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다. 이후 등장한 파라핀과 이러한 기계식 제조기술은 양초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19세기, 조명의 주역이 바뀌다
양초 제조기술이 발전하던 19세기는 동시에 조명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양초뿐 아니라 고래기름과 여러 종류의 기름을 사용하는 램프, 석탄가스를 이용한 가스등 등 다양한 조명 수단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는 실용적인 전기조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기조명이 확산되면서 양초는 점차 일상적인 조명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잃었다. 하지만 양초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명에서 장식과 분위기를 위한 양초로
20세기 후반 들어 양초는 다시 소비재로 주목받았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장식과 분위기 연출, 선물 등을 위한 양초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고 1990년대에는 양초의 인기가 크게 높아졌다.

대두를 원료로 티라이트 형태로 만든 수제 소이 왁스 양초.
By lindsay.dee.bunny, CC BY 2.0, wikimedia commons.
이 시기에는 새로운 양초 재료도 등장했다. 대두에서 얻는 소이 왁스(soy wax)와 팜 왁스(palm wax) 등이 상업적인 양초 재료로 개발되면서 양초에 사용되는 왁스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이처럼 수지와 밀랍, 향유고래에서 얻은 스퍼마세티, 파라핀과 식물성 왁스에 이르기까지 양초에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재료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밤을 밝히기 위해 이용해 온 자원과 기술의 변화도 함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