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아스만(Jan Assmann)의 집단적 기억과 문화적 정체성

얀 아스만과 그의 아내 알레아다 아스만의 사진

2018년 독일 출판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얀 아스만과 알레이다 아스만 부부

By Martin Kraft,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문제 제기와 연구 프로그램

얀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 1877–1945)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1866–1929)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두 사람은 서로 독립적으로 집단적 기억 또는 사회적 기억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연구 분야와 관심사는 서로 달랐지만, 기억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는 중요한 공통점을 보여 주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거부한 것은 집단의 기억을 생물학적 유전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집단이 공유하는 기억을 유전되는 능력으로 이해하려는 이론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특정 민족이나 인종이 어떤 기억을 선천적으로 물려받는다고 보는 ‘인종기억(Rassengedächtnis)’ 개념이다. 이러한 생각은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원형 이론에도 상당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알박스와 바르부르크는 이런 설명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집단이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고, 세대를 넘어 지식을 전승하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는가에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생물학이 아니라 문화의 차원에서 설명하려 했다. 다시 말해, 집단이 공유하는 지식이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유전자나 혈통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의 작용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며 그 사회의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익힌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생물학적 진화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화와 전승을 통해 계승된다.

아스만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인간 사회의 지속성은 생물학적 종의 유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과 이레나우스 아이블-아이베스펠트(Irenäus Eibl-Eibesfeldt)가 말한 ‘가상 종분화(pseudospeciation)’라는 개념을 빌리자면, 서로 다른 문화 집단은 마치 서로 다른 종처럼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한다. 그러나 그 차이는 유전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종의 보존을 보장한다. 반면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배우고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 아스만은 이 지점을 설명하기 위해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은 “오랜 세대에 걸쳐 동일한 유형의 지속적인 존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기억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이다. 문화적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저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특수한 상호작용 체계 안에서 인간의 행동과 경험을 이끌어 주는 지식의 총체이다. 또한 이러한 지식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반복적인 학습과 훈련을 통해 끊임없이 재확인되고 재습득된다.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두 가지 구별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문화적 기억과 의사소통적 기억의 구별이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경험담을 들려주고, 소문을 전하며, 함께 추억을 공유한다. 이러한 기억 역시 집단적 기억의 한 형태이지만 아직 문화적 기억이 갖는 특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러한 일상적 기억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문화적 기억과 과학의 구별이다. 과학 역시 지식을 축적하고 전달하지만 그것을 곧바로 기억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기억은 언제나 집단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다시 말해 집단의 자기상과 연결되어 있다. 반면 과학은 원칙적으로 그러한 집단적 자기 정체성과는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알박스는 이러한 차이를 기억(mémoire)과 역사(histoire)의 대립이라는 형태로 설명했다. 그러나 아스만은 여기서 이 문제는 일단 옆으로 미뤄 둔다. 그가 집중하는 것은 첫 번째 구별, 즉 의사소통적 기억과 문화적 기억의 차이이다. 문화적 기억이라는 개념 역시 바로 이 구별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적 기억

문화적 기억을 설명하기 위해 아스만은 먼저 ‘의사소통적 기억(kommunikatives Gedächtnis)’이라는 개념을 살펴본다. 그는 일상적인 의사소통에 기반한 집단적 기억의 형태를 모두 이 범주에 포함시킨다. 사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다 모리스 알박스가 연구했던 집단적 기억의 한 영역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하여 부르는 이름에 가깝다. 알박스는 『기억의 사회적 틀(Les cadres sociaux de la mémoire)』과 『집단적 기억(La mémoire collective)』에서 이러한 현상들을 집단적 기억이라는 개념 아래 분석했으며, 오늘날 구술사(Oral History)가 다루는 기억의 영역 역시 여기에 속한다.

의사소통적 기억은 무엇보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된다. 이러한 의사소통은 높은 수준의 비전문화성, 역할의 상호성, 주제의 개방성, 그리고 비조직성을 특징으로 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지금 경험담을 들려주는 사람이 잠시 뒤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위치에 서게 된다. 누군가는 추억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소문을 전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농담이나 일화를 들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은 언제든 서로 바뀔 수 있다.

물론 일상적 의사소통이 완전히 무질서한 것은 아니다. 기차 안이나 단골 모임, 대기실 같은 공간에서는 대화가 어느 정도 일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한 ‘시장 법칙(Marktgesetze)’과 같은 암묵적인 규칙도 존재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해서는 안 되는지, 언제 이야기를 시작하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에 대한 암묵적인 규범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 의사소통은 여전히 상당한 비형식성과 우연성을 유지한다.

개인의 기억은 바로 이러한 의사소통 속에서 형성된다. 알박스의 가장 중요한 통찰 가운데 하나는 기억이 결코 개인 내부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기억한다. 기억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매개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속한 집단 속에서 기억한다. 가족은 가족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이웃 공동체는 공동체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직업 집단과 정당, 협회와 종교 공동체, 나아가 국가는 저마다 고유한 기억을 지닌다.

이러한 집단은 단순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일정한 이미지와 이해를 공유한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통일성과 고유성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이해는 공통된 과거에 대한 기억 위에 세워진다. 알박스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집단은 공유된 과거를 통해 자신을 하나의 집단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저장이 아니라 집단 정체성의 토대가 된다.

한 개인은 동시에 여러 집단에 속해 있다. 그는 가족의 구성원이면서 특정한 직업 집단의 일원이고, 동시에 지역 공동체와 국가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개인은 하나의 기억만이 아니라 여러 집단의 기억에 동시에 참여한다. 가족 안에서는 가족의 기억을 공유하고, 직업 세계에서는 직업 집단의 기억을 공유하며, 국가 안에서는 국민적 기억을 공유한다. 개인의 기억은 이처럼 여러 집단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오늘날 구술사 연구는 이러한 일상적 기억의 특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아스만은 이러한 형태의 집단 기억을 의사소통적 기억이라고 부르며, 그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제한된 시간 범위를 꼽는다.

의사소통적 기억은 과거로 무한정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구술사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보여 주듯이, 살아 있는 기억과 구전 전승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는 대체로 80년에서 100년 정도이다. 이는 대략 3세대에서 4세대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세대의 범위도 이와 비슷하며, 고대 로마에서 한 시대를 의미했던 saeculum 역시 비슷한 시간 폭을 가리킨다.

의사소통적 기억의 시간 지평은 현재와 함께 이동한다. 현재가 앞으로 나아가면 기억의 범위도 함께 이동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기억하는 조부모 세대의 경험은 100년 전의 사건일 수 있지만, 100년 뒤 사람들이 기억하는 조부모 세대는 또 다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일 것이다. 의사소통적 기억에는 현재가 이동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고정된 기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대화를 중심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 기억의 내용도 함께 사라지거나 변한다.

어떤 사건이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기억되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장치가 필요하다. 과거를 현재와 지속적으로 연결해 주는 고정된 기억의 기준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점은 일상적 의사소통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것은 문화적 형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텍스트가 기록되고, 의례가 반복되며, 기념물이 세워지고, 공동체가 특정한 과거를 지속적으로 기념할 때 비로소 기억은 일상의 시간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사소통적 기억은 문화적 기억으로 넘어간다.

의사소통적 기억에서 문화적 기억으로

아스만은 이제 의사소통적 기억의 영역에서 문화적 기억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기억의 범위를 넓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전환은 기억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 만큼 근본적인 성격을 지닌다. 의사소통적 기억은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경험의 공유 속에서 형성된다. 반면 문화적 기억은 텍스트와 이미지, 의례와 기념물, 건축물과 도시, 나아가 특정한 경관과 같은 객관화된 문화적 형식 속에 자리 잡는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이러한 영역까지도 여전히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스만은 이 질문을 던지면서 다시 알박스로 돌아간다. 알박스는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통해 유지되는 집단적 기억을 분석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기억이 텍스트나 이미지, 의례, 기념물과 같은 문화적 형식 속에 고정되고 객관화된 이후의 문제는 체계적으로 탐구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알박스의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춘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알박스는 살아 있는 기억이 객관화된 문화 형태로 굳어지는 순간 더 이상 집단기억의 성격을 유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집단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잃게 된다. 또한 기억을 유지하던 살아 있는 의사소통도 사라진다. 이 경우 기억은 더 이상 집단기억이 아니라 역사가 된다. 알박스가 기억(mémoire)과 역사(histoire)를 구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스만은 바로 이 지점에서 알박스와 다른 입장을 취한다. 그에 따르면 객관화된 문화의 영역에서도 집단기억의 핵심적인 특징은 사라지지 않는다. 텍스트와 기념물, 의례와 이미지는 단순히 과거의 흔적만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특정한 집단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객관화된 문화의 영역에서도 기억과 집단의 결합은 계속 유지된다.

아스만은 이러한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집단 정체성과의 결속성(Identitätskonkretheit)’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말은 집단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특정한 기억과 지식을 통해 이해한다는 뜻이다. 집단은 단순히 과거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특정한 과거를 자신들의 과거로 받아들이며, 바로 그 과거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끌어낸다. 어떤 공동체가 기원 신화를 기억하고,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며, 특정한 영웅이나 성인을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과 직결되어 있다. 공동체는 그러한 기억을 통해 자신들의 통일성과 고유성을 확인한다. 또한 그 기억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규범적·형성적 힘을 얻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는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기억이 머무는 장소이다. 아스만은 바로 이 점 때문에 객관화된 문화 역시 기억의 구조를 가진다고 본다. 비록 그것이 살아 있는 대화의 형태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공동체의 자기 이해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기억 구조가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아스만은 역사주의의 등장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본다. 역사주의는 과거를 더 이상 공동체의 자기 이해를 위한 기억으로 다루지 않고, 객관적 연구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과거와 현재의 정체성을 연결하던 전통적인 기억 구조는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다. 아스만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이미 이러한 변화를 매우 예리하게 간파했다고 평가한다. 니체는 『삶에 대한 역사학의 공과(Vom Nutzen und Nachteil der Historie für das Leben)』에서 역사적 지식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공동체의 삶과 정체성을 떠받치는 기억의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아스만에게 기억과 역사의 차이는 단순히 과거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현재의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 관계가 문화적 기억이라는 개념의 핵심을 이룬다. 아스만은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문화적 기억의 구체적인 특징들을 하나씩 설명해 나간다. 여기서부터 그의 문화적 기억 이론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문화적 기억

의사소통적 기억이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문화적 기억은 일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아스만은 이를 문화적 기억의 첫 번째 특징으로 제시하며, ‘일상 초월성(Alltagstranszendenz)’이라고 부른다. 이 차이는 무엇보다 시간의 차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의사소통적 기억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대화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체로 80년에서 100년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그 시간 지평은 현재와 함께 계속 이동한다.

문화적 기억은 다르다. 문화적 기억은 현재가 이동하더라도 함께 이동하지 않는 고정된 기준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준점은 공동체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과거의 사건들이다. 그것은 단순히 오래된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여겨지는 사건들이다. 공동체는 그러한 사건들을 잊지 않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장치를 만들어 낸다. 텍스트를 기록하고, 의례를 반복하며, 기념물을 세우고, 특정한 장소를 성지로 만들기도 한다. 또한 암송과 낭독, 축제와 기념 행사, 참배와 관람 같은 제도화된 의사소통을 통해 그러한 기억을 끊임없이 되살린다.

심하트 토라 유대교 축일

심하트 토라, 토라 낭독 주기의 끝과 시작을 기념하는 유대교 축일

By שי2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아스만은 이러한 기억의 고정점을 ‘기억 형상(Erinnerungsfiguren)’이라고 부른다. 기억 형상은 문화적 기억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이다. 공동체는 기억 형상을 통해 과거를 현재 속으로 불러들인다. 유대교의 축제 달력은 이러한 원리를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며, 다른 절기들 역시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종교적 경험을 반복적으로 현재화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의례가 단순한 기념 행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공동체가 과거를 현재 속에서 다시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아스만은 축제와 의례, 서사시와 시, 이미지와 기념물이 일상적인 의사소통의 흐름 속에서 일종의 ‘시간의 섬(Zeitinseln)’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현재의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축제가 시작되고 의례가 거행되는 순간 사람들은 일상의 시간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동시에 오래전 과거의 사건과 다시 연결된다. 그 결과 일상의 흐름 속에 특별한 시간의 섬이 생겨난다.

문화적 기억은 바로 이러한 시간의 섬들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각각의 시간의 섬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더 큰 기억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아스만은 이를 ‘회고적 성찰의 공간(Raum retrospektiver Besonnenheit)’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아비 바르부르크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바르부르크는 문화적 형식들 속에 기억이 축적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위대한 예술 작품만이 아니었다. 포스터와 우표, 전통 의상과 관습, 종교적 이미지와 상징 역시 기억을 담아내는 매개체가 될 수 있었다. 바르부르크에 따르면 이러한 문화적 형상들 속에는 일종의 ‘기억적 에너지(mnemische Energie)’가 응축되어 있다. 한 공동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한 경험은 문화적 형식 속에 결정화된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과 마주하는 순간, 그 안에 담겨 있던 의미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아스만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문화적 기억은 단순히 정보를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경험을 응축된 형태로 보존하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현재 속으로 불러올 수 있게 하는 체계이다. 바르부르크는 『므네모시네(Mnemosyne)』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통해 서구 문명의 이러한 이미지 기억을 재구성하려 했다. 그러나 아스만의 관심은 바르부르크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바르부르크가 이미지와 상징의 생존과 변형에 관심을 가졌다면, 아스만은 기억과 문화,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다.

그럼에도 아스만은 바르부르크에게서 중요한 통찰을 얻는다. 그것은 문화적 형식이 기억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억은 인간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와 이미지, 의례와 기념물 속에 자리 잡은 기억은 수백 년, 때로는 수천 년에 걸쳐 지속될 수 있다. 문화적 기억은 바로 이러한 지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아스만은 동시에 바르부르크 이론의 한계도 지적한다. 바르부르크는 기억과 문화적 형식의 관계를 탁월하게 보여 주었지만 기억과 사회집단의 관계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반대로 알박스는 기억과 집단의 관계를 밝히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문화적 형식이 수행하는 역할은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아스만이 보기에 두 사람의 이론은 서로를 보완한다.

알박스는 기억과 집단의 관계를 보여 주었고, 바르부르크는 기억과 문화적 형식의 관계를 보여 주었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을 이해하려면 기억, 문화, 집단이라는 세 요소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문화적 기억은 현재 속에 재현되는 과거와 그것을 담아내는 문화적 형식,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회집단이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아스만이 문화적 기억 이론을 통해 시도하는 작업이다.

문화적 기억의 특징

지금까지 아스만은 의사소통적 기억과 문화적 기억을 구분하고, 문화적 기억이 단순한 과거의 저장소가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해 왔다. 이제 그는 문화적 기억이 지니는 구체적인 특징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그가 가장 먼저 제시하는 특징은 ‘집단 정체성과의 결속성(Identitätskonkretheit)’이다. 다시 말해 문화적 기억은 특정 집단의 자기 이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 기억은 과거에 대한 정보만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보존한다. 공동체는 문화적 기억 속에 축적된 지식을 통해 자신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집단과 무엇이 다른지를 이해한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은 공동체의 자기 이해와 분리될 수 없다.

어떤 공동체도 과거 전체를 기억하지는 않는다. 공동체는 자신들에게 의미가 있는 과거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은 대개 정체성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어떤 기억은 “이것이 바로 우리다”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공동체의 기원 신화와 영웅 이야기, 건국의 역사와 종교적 전승이 여기에 속한다. 반대로 어떤 기억은 “이것은 우리가 아니다” 또는 “이것은 우리의 반대편이다”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공동체는 자신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타자 역시 함께 규정한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은 자기 정체성뿐 아니라 타자에 대한 인식과도 연결되어 있다.

아스만이 말하는 집단 정체성과의 결속성이란 바로 이러한 특징을 가리킨다. 문화적 기억은 특정 집단과 결합되어 있으며, 그 집단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깊이 관여한다. 여기서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지평(Horizont)’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진다. 공동체는 모든 과거를 똑같이 기억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과거와 그렇지 않은 과거를 구분한다. 문화적 기억은 바로 이러한 선택의 결과로 형성된다. 아스만은 이를 니체의 표현을 빌려 ‘지평 형성(Horizontbildung)’이라고 설명한다.

문화적 기억 속에 보존된 지식은 분명한 경계를 가진다. 그 경계는 공동체에 속하는 것과 속하지 않는 것을 구분한다. 자기 것과 타인의 것,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을 나눈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특정한 집단의 관점에서 구성된다. 이 때문에 문화적 기억 속의 지식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의해 수집되지 않는다. 아스만은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의 표현을 빌려 이것은 ‘이론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문화적 기억을 움직이는 힘은 H. 몰(H. Mol)이 말한 ‘정체성에 대한 욕구(need for identity)’이다. 공동체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기억한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아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행위인 것이다.

집단 정체성과의 결속성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두 번째 특징은 재구성성(Rekonstruktivität)이다. 아스만은 여기서 다시 알박스의 통찰을 이어받는다. 알박스는 어떤 기억도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존할 수 없다고 보았다. 우리가 기억 속에 간직하는 것은 과거 자체가 아니다. 남아 있는 것은 언제나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된 과거이다. 알박스의 표현을 빌리면 기억 속에 살아남는 것은 “사회가 각 시대마다 현재의 준거 틀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는 것”뿐이다.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문화적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지만 박물관의 표본처럼 보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와 연결한다. 문화적 기억은 기억 형상과 전승의 저장고를 유지한다. 텍스트는 남아 있고, 기념물도 남아 있으며, 의례 역시 반복된다. 그러나 그 의미가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각 시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과거를 새롭게 읽고 해석한다. 어떤 시대는 특정한 전통을 강조하고, 어떤 시대는 같은 전통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한다. 어떤 시대는 과거를 보존하려 하고, 또 다른 시대는 그것을 변형하려 한다.

현재는 언제나 과거와 능동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는 수용일 수도 있고 비판일 수도 있으며, 보존일 수도 있고 변화일 수도 있다. 문화적 기억이 재구성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과거는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이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잠재성의 방식이다. 이때 문화적 기억은 거대한 저장고의 형태를 띤다.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 상징과 의례, 행동 양식이 축적된 아카이브와 같다. 그 안에는 공동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해 온 의미의 자원이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언제나 동시에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두 번째 방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현재화의 방식이다. 특정한 시대와 사회는 그 거대한 저장고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여 현재 속으로 불러낸다. 그 결과 문화적 기억은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조직된 의미 체계가 된다. 어떤 기억은 전면으로 떠오르고, 어떤 기억은 배경으로 물러난다. 어떤 전통은 새롭게 강조되고, 어떤 전통은 잊힌다. 그러나 그것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문화적 기억의 저장고 안에 잠재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은 한편으로는 축적된 전승의 아카이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에 의해 선택되고 재해석되는 살아 있는 기억이다.

문화적 기억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이 단순히 오래된 과거를 보존하는 기억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제기된다. 공동체의 기억은 어떻게 수백 년, 때로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가? 개인의 기억은 한 세대가 지나면 사라진다. 의사소통적 기억 역시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대화에 의존하기 때문에 몇 세대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렇다면 문화적 기억은 무엇을 통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일까?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이 지속될 수 있는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를 형식화(Geformtheit)에서 찾는다. 문화적 기억은 반드시 일정한 형식을 가져야 한다. 의미가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고 전승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고정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전달된 의미와 집단적으로 공유된 지식은 객관화되고 결정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이 사회의 문화적 전승 속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화적 기억의 지속성이 반드시 문자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 기록이 있어야 기억도 남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의 형식이 문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미지도 기억을 담을 수 있고, 의례 역시 기억을 담을 수 있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은 다양한 방식으로 형식화된다.

아스만은 이를 설명하면서 고대 그리스 신비종교의 세 요소를 언급한다. 하나는 말해지는 것(legomenon)이고, 하나는 행해지는 것(dromenon)이며, 마지막 하나는 보여지는 것(deiknymenon)이다. 문화적 기억은 바로 이 세 영역을 통해 형식화된다. 공동체는 이야기를 전하고, 의례를 수행하며, 상징과 이미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기억은 공동체의 삶에 정착한다.

따라서 의사소통적 기억과 문화적 기억의 차이를 단순히 구술성과 문자성의 차이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문화적 기억은 문자 이전의 사회에도 존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록의 유무가 아니라 기억이 공동체 안에서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형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화적 기억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장치 역시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의 또 다른 특징으로 조직성(Organisiertheit) 을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조직성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의사소통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이다. 문화적 기억은 우연한 대화 속에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일정한 방식으로 조직된다. 공동체는 정기적으로 축제를 열고, 기념일을 정하며, 의례를 반복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기억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다. 문화적 기억은 이처럼 의례화된 의사소통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한다.

둘째는 기억의 담당자들이 전문화된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적 기억에는 특별한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이야기하고 누구나 기억한다. 그러나 문화적 기억은 다르다. 문화적 기억은 그것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사제와 교사, 학자와 기록관, 예술가와 해설자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맡는다.

아스만은 이러한 활동을 일종의 ‘보살핌(Pflege)’이라고 부른다. 문화적 기억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속적인 관리와 재생산을 필요로 한다. 특히 문자 문화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정전화된 경전을 가진 사회에서는 기억의 관리가 매우 복잡한 체계로 발전할 수 있다. 텍스트를 정확하게 보존해야 하고,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하며, 또한 그것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기억은 바로 이러한 전문적 실천 위에서 유지된다.

아스만은 이어서 문화적 기억의 또 다른 특징으로 구속력(Verbindlichkeit)을 제시한다. 문화적 기억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다시 말해 문화적 기억은 가치 판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기억을 특별하게 취급한다. 그 결과 문화적 기억 속에는 자연스럽게 중요도의 위계가 형성된다.

어떤 상징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상징은 주변적인 의미만을 가진다. 어떤 전통은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지만, 어떤 전통은 특정 지역이나 집단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차이는 각각의 기억과 상징이 공동체의 자기상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은 결코 중립적인 정보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조직된 의미 체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주의와 문화적 기억 사이의 긴장이 나타난다. 문화적 기억은 언제나 공동체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과거를 바라본다. 그러나 역사주의는 이러한 관점에 반대한다. 역사주의적 학문은 어떤 사실도 본질적으로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공동체의 정체성과 직접 관련된 사건만을 특별하게 취급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아스만은 이러한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고전문헌학자 울리히 폰 빌라모비츠(Ulrich von Wilamowitz-Moellendorff)의 말을 인용한다. 빌라모비츠에 따르면 문헌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개념도 연구해야 하고, 그리스어의 작은 조사 하나도 연구해야 한다. 아폴론의 성소도 연구 대상이고, 무명의 우상도 연구 대상이다. 사포의 시도 중요하지만 성녀 테클라의 설교 역시 중요하다. 핀다로스의 운율도 연구해야 하고, 폼페이의 측량 도구도 연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과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하나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문화적 기억이 정체성을 중심으로 과거를 선별한다면, 역사주의는 가능한 한 모든 과거를 동등하게 다루려고 한다.

아스만은 이러한 긴장을 지적하면서도 문화적 기억이 공동체에 왜 필요한지를 계속 설명해 나간다. 왜냐하면 문화적 기억은 단순히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동체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성찰하는가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문화적 기억의 구속력과 성찰성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비의 벽면과 그 위에 얼비친 관광객들의 모습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비의 벽면과 그 뒤로 보이는 워싱턴 기념탑.

By David Reynolds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문화적 기억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 기억 속에 보존된 지식은 단순한 정보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일정한 구속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구속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첫 번째는 형성성(Formativität)이다. 문화적 기억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교육하고, 문명화하며, 특정한 인간상으로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사람들은 공동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이야기와 상징, 전통과 의례를 배우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에 따라 살아야 하는지를 익힌다. 문화적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형성한다.

두 번째는 규범성(Normativität)이다. 문화적 기억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않은지를 제시한다. 그것은 행동의 기준이 되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규범적 질서를 제공한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은 단순한 지식의 저장고가 아니다. 그것은 교육적 기능과 규범적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체계이다.

문화적 기억의 마지막 특징은 성찰성(Reflexivität)이다. 문화적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러한 성찰성은 세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실천에 대한 성찰성(praxis-reflexiv)이다. 문화적 기억은 공동체의 실천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들은 단지 어떤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한다. 속담과 생활 규범, 민속적 지혜, 관습과 의례는 모두 이러한 기능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사냥 의례는 단순히 사냥이라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한다. 문화적 기억은 이처럼 공동체의 실천을 해석하는 틀로 기능한다.

두 번째는 자기 성찰성(selbst-reflexiv)이다. 문화적 기억은 자신이 보존하고 있는 전통과 의미를 끊임없이 다시 해석한다. 공동체는 물려받은 기억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수정하며 때로는 비판한다. 어떤 전통은 강조되고, 어떤 전통은 배제된다. 어떤 의미는 새롭게 해석되고, 어떤 의미는 수정된다. 심지어 기존의 전통을 넘어서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기도 한다. 문화적 기억이 살아 있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재해석의 과정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은 고정된 과거의 저장소가 아니라 스스로를 계속 새롭게 이해하는 체계이다.

세 번째는 자기상에 대한 성찰성(selbstbild-reflexiv)이다. 문화적 기억은 공동체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비추어 준다.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사회 체계의 자기 주제화’에 해당한다. 모든 공동체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우리는 다른 집단과 어떻게 다른가.

문화적 기억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답은 공동체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한다. 문화적 기억은 공동체의 자기상을 반영하고 재구성하는 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을 다시 정의한다.

문화적 기억이란 각 사회와 시대에 고유한 텍스트와 이미지, 의례의 총체를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공동체는 그것들을 보존하고 관리하며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바로 이러한 ‘보살핌(Pflege)’을 통해 공동체는 자신의 자기상을 안정화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

문화적 기억 속에 담긴 지식은 대체로 과거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은 과거를 알려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지식은 공동체가 자신을 하나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공동체는 기억을 통해 자신의 통일성과 고유성을 확인한다.

그러나 문화적 기억은 모든 사회에서 동일한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사회마다 기억하는 방식이 다르고, 기억을 조직하는 방식도 다르다. 어떤 사회는 성스러운 경전을 중심으로 자신을 이해한다. 어떤 사회는 반복되는 의례를 중심으로 자신을 이해한다. 또 다른 사회는 예술과 건축, 상징 체계 속에 기억을 담는다. 따라서 문화적 기억의 매체와 제도, 조직 방식은 사회마다 매우 다양하다. 전승의 구속력 역시 다를 수 있으며, 성찰성의 정도 또한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역사와 과거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공동체는 과거를 모범으로 삼는다. 그들은 선조들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바로잡으려 한다. 반면 어떤 공동체는 과거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억한다. 그들에게 과거는 모범이 아니라 경고이다. 아스만은 이 지점을 설명하면서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말을 인용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다시 살아야 할 운명에 처한다.”

같은 기억이라도 사회에 따라 수행하는 기능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문화와 기억의 관계는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된다. 한 사회는 자신의 문화적 전승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전승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 준다. 어떤 과거를 기억하는가.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가. 어떤 인물을 영웅으로 기억하는가. 어떤 전통을 보존하는가. 이러한 선택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 선택 속에는 공동체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담겨 있다.

문화적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저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이며, 자신이 무엇이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한 사회는 자신의 문화적 전승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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