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통화인 파운드(GBP). 통화 기호는 £를 사용한다.
By Tony Webster, CC BY 2.0, wikimedia commons.
화폐 명칭에 대한 의문
영국 화폐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통화 이름은 파운드(Pound)인데 통화 기호는 ‘£’를 사용한다. 반면 무게 단위인 파운드는 단위 기호로 ‘lb’를 쓴다. 왜 같은 ‘파운드’인데 통화 기호는 £이고, 무게 단위의 기호는 lb일까?
사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모두 약 2천 년 전 로마 시대의 libra pondo라는 하나의 라틴어 표현에서 시작되었다.
로마 시대의 ‘libra pondo’
고대 로마에서 리브라(libra)는 저울을 뜻하는 말이자 무게 단위의 이름이었다. 폰도(pondo)는 ‘무게 기준으로(by weight)’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리브라 폰도(libra pondo)는 ‘리브라의 무게’, 또는 ‘무게 단위인 리브라’ 정도의 의미를 가진 표현이었다.
이 표현이 수백 년 동안 유럽에서 사용되면서 뜻은 유지됐지만, 단어의 운명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름이 된 pondo
시간이 흐르면서 폰도(pondo)에서 유래한 형태가 영어의 파운드(pound)로 발전했다. 오늘날 영국 화폐의 이름인 Pound와 무게 단위 pound는 모두 이 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pound라는 이름은 사실 pondo의 후손이다.
기호와 약자가 된 libra
반면 libra는 이름에서는 점차 사라졌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무게 단위의 약자인 lb는 libra를 줄여 쓴 것이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지금도 1파운드를 1 lb라고 표기한다.
영국 화폐 기호 £ 역시 libra에서 유래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libra를 줄여 쓸 때 L을 장식한 필기체를 사용했고, 여기에 그은 가로줄은 ‘약어’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 오늘날의 ‘£’ 기호로 굳어졌다.
서로 다른 길을 걸은 이름과 기호
그렇다면 왜 이름은 Pound인데 기호는 ‘£’일까? 이유는 이름과 기호가 서로 다른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영어가 변천하면서 일상에서는 pound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반면 회계와 문서에서 사용하던 기호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libra의 표기를 그대로 유지했다. 비유하자면 pondo가 이름을 이어받았고, libra는 기호와 약자를 이어받은 셈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로마의 흔적
오늘날 우리는 영국 화폐를 Pound라고 부르고 £ 기호를 사용한다. 무게를 표시할 때는 lb라는 약자를 쓴다.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세 가지처럼 보이지만, 모두 libra pondo라는 하나의 라틴어 표현에서 갈라져 나온 흔적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Pound, £, lb에는 2천 년이 넘는 언어와 문화의 역사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