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소련 시대 수영장의 폐허. 러시아 키슬로보츠크에서 발생한 반달리즘.
By © Vyacheslav Argenberg, CC BY 4.0, wikimedia commons.
이름의 시작
반달족(Vandals)이라는 이름은 오늘날 ‘파괴’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그러나 이 이름이 처음부터 그런 의미를 지녔던 것은 아니다. 반달족은 동게르만 계열의 이동 부족으로, 유럽을 지나 북아프리카까지 세력을 확장한 집단이다. 그들의 존재는 당시 다른 여러 부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단순히 파괴만을 목적으로 움직인 집단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름은 특정한 이미지와 함께 기억되기 시작한다. 그 출발점에는 하나의 사건이 놓여 있다.
로마 약탈의 이미지
로마 약탈 (455년)은 반달족의 이름을 역사 속에 각인시킨 사건이다. 북아프리카에 기반을 두고 있던 이들은 로마를 점령하고 일정 기간 도시를 장악했다. 이후 이어진 약탈은 오랫동안 “문명을 무너뜨린 야만인의 행위”로 묘사되었다.

반달족의 로마 약탈(455년), 작가 미상
By Artist unknown,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그러나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무차별적인 파괴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약탈은 분명 존재했지만,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식의 행위보다는 재산과 권력의 이동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럼에도 로마라는 상징적 공간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은 강한 인상을 남겼고, 반달족은 점차 과장된 이미지 속에서 재구성된다.
이때부터 이미 하나의 변화가 시작된다. 실제 사건보다 그 사건이 어떻게 기억되었는가가 더 큰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단어의 탄생
반달리즘(vandalism)이라는 단어는 고대에서 이어진 것이 아니라, 훗날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 배경에는 프랑스 혁명이 있다. 혁명 과정에서 왕실과 교회, 그리고 수많은 예술품이 파괴되었고, 문화적 손실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이 상황을 비판하며 처음으로 ‘반달리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인물은 성직자 앙리 그레구아르(Henri Jean-Baptiste Grégoire)였다. 그는 혁명 속 파괴 행위를 단순한 정치적 행동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문명에 대한 무지한 공격으로 규정했고, 그 이미지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의 반달족을 끌어왔다.
이 순간, 하나의 부족 이름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게 된다. 특정 집단을 가리키던 명칭은, 문화와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를 뜻하는 일반 명사로 전환된다.
의미의 이동
이후 반달리즘이라는 단어는 점차 일상 속으로 확장된다. 특정 사건이나 집단과의 직접적인 연결은 흐려지고, 대신 ‘의도적인 훼손’이라는 의미가 중심에 자리 잡는다. 공공시설의 낙서부터 문화재 파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행위가 이 단어 안에 포함된다.

로테르담 지하철의 반달리즘 (2009년)
By Someone Not Awful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단어의 기준이 ‘누가 했는가’에서 ‘무엇을 했는가’로 옮겨간 것이다. 반달리즘은 더 이상 반달족과 직접 연결되지 않지만, 그 이름이 남긴 인상은 여전히 의미 속에 남아 있다.

훼손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도자 스테판 반데라의 뮌헨 묘지 (2022년)
By Aleksandrs Čaičics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남겨진 의미
이 단어의 형성 과정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사건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이미지로 굳어지며, 그 이미지는 다시 하나의 이름으로 고정된다. 반달리즘이라는 말은 그 과정을 그대로 품고 있는 언어다. 하나의 집단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전혀 다른 의미로 남아 오늘까지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반달리즘은 공공시설 훼손이나 문화재 파괴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로 쓰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문명을 이해하지 못한 채 파괴한다’는 뉘앙스가 남아 있다. 단순한 손상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인식의 결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