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의 제우스상. By Jacob van der Ulft,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신들의 왕을 위한 좌상
고대 그리스의 신성한 경기장, 올림피아의 중심에는 한때 거대한 좌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조각상은 단순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과 종교, 권위가 응축된 상징 그 자체였다.
기원전 5세기 중반, 아테네의 유명 조각가 페이디아스(Phidias)는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나 조각상으로 명성을 떨친 뒤, 이 위대한 과업을 위해 직접 올림피아로 내려왔다. 그는 그곳에 공방을 세우고, 상아와 금을 사용한 크리셀레판틴(chryselephantine) 기법으로 제우스를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예술과 권위의 결합
조각상은 제우스가 화려한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구성되었다. 약 12미터가 넘는 높이의 이 좌상은 신전 내부를 가득 채웠으며, 제우스가 일어나면 지붕을 뚫고 나갈 것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가 얹혀 있었고, 왼손에는 권위의 상징인 홀을 쥐고 있었다.
상아로 표현된 피부와 금으로 장식된 의복, 그리고 흑단과 보석이 더해진 왕좌는 단순한 재료를 넘어 신성을 구현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왕좌 자체에도 신화 장면과 상징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이는 조각상이 단지 신의 형상이 아니라, 서사와 교훈이 함께 담긴 구조물임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걸작의 최후
엘리스 지역에서 주조된 고대 동전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이 경이로운 조각상은 수세기 동안 순례자들의 감탄을 자아냈지만, 시대의 변화는 그것을 끝내 지켜내지 못했다. 올림피아의 신전이 폐쇄되고 이교 신앙이 금지된 로마 후기, 제우스상은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로 옮겨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그곳에서 끝내 화재로 소실되었고, 실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늘날 이 조각상의 존재를 상상하게 해주는 것은 고대 동전에 새겨진 이미지나 로마 시대의 복제 조각들, 그리고 페이디아스의 작업장이 있던 유적에서 발견된 몇 가지 흔적뿐이다.
고대 불가사의로서의 의미
올림피아의 제우스상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당시 예술과 신앙이 얼마나 높은 수준으로 결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상아와 금이라는 재료의 희귀성과 그것들을 조화롭게 다룬 조각술, 그리고 신의 형상을 인간적이면서도 숭고하게 형상화한 예술적 완성도는 오늘날에도 예외적인 유산으로 회자된다. 이 좌상은 그리스인들이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경배했는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사적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