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스토스 궁전 서쪽 입구, 크레타(2005). By Marsyas, CC BY 2.5, Wikimedia Commons.
1908년, 한 점토 원반이 발굴되다
1908년, 크레타 남부의 파이스토스(Phaistos) 궁전 유적에서 이탈리아 고고학자 루이지 페르니에(Luigi Pernier)는 특이한 유물을 발견했다. 궁전 지하실 발굴 도중, 검은 흙과 재가 섞인 층 속에서 수수께끼의 점토 원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원반은 기원전 제2천년기, 즉 미노아 청동기 시대 유물로 추정되며, 그 연대는 기원전 1850년에서 1400년 사이로 추정된다.
원반의 직경은 약 15cm이며, 앞뒷면 모두에 약 240개의 기호가 새겨져 있다. 이 기호들은 개별 금속 활자로 눌러 찍은 후 구워졌으며, 형태는 화살, 왕관, 동물, 식물, 배, 인물 등 다양하다.
이 모든 기호들은 가장자리에서 중심으로 향하는 나선형 배열로 구성되어 있어 시각적으로도 강한 인상을 준다.
파이스토스 원반의 A면. 헤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
By C messier,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해독되지 않은 언어? 아니면 단순한 상징?
이 원반은 발견 이후 수많은 학자들에게 해독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100년이 넘도록 이 기호들이 어떤 언어인지, 아니면 언어가 아닌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파이스토스 원반이 실제 미노스 시대 유물임에는 동의하지만, 그 내용이 기도문인지, 저주인지, 보드게임 판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 이론은 이것이 미노아 여신에게 바치는 기도문이라는 설이다. 반면, 아무 의미 없는 상징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원반에는 짧은 선과 기호적 구분자들이 나타나 있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문장 구조나 단락 구분을 시도한 흔적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비교 가능한 자료가 없는 유일한 사례
이 점토 원반의 해독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비교 가능한 유물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미노아 문명에서는 선형문자 A(Linear A)와 같은 다른 문자 체계가 알려져 있지만, 파이스토스 원반의 기호는 그들과도 다르다. 기호들이 동시대 미술 문양과 유사한 점은 있지만, 직접적인 해석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 원반은 한 벌의 활자로 제작된 세계 최초의 ‘타자 인쇄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각 기호가 독립된 금속 도장으로 찍혔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도 흥미로운 유물이다.
지금도 논쟁은 계속된다

By C messier,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원반은 2014년 리노베이션 이후 크레타의 헤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양면 모두가 공개되어 있으며, 특히 ‘B면’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수천 년 전 지진과 함께 묻혔던 이 점토 원반은 지금도 논쟁과 해석의 중심에 서 있다. 해독이 이루어진다면 미노아 문명에 대한 이해는 한층 깊어질 것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이 유물은 고대의 상징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