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Petra), 바위에 새겨진 고대의 수도

petra 원경

요르단 남부의 붉은 사암 절벽 속에 숨겨진 고대 도시 페트라(Petra). 이 도시는 기원전 4세기부터 서기 2세기까지 약 500년 동안 번영을 누린 나바테아 왕국(Nabataean Kingdom)의 수도였다.

‘바위의 도시(City of Rock)’라는 이름처럼 페트라는 흙이나 목재, 벽돌이 아닌 절벽 그 자체를 조각하여 신전과 무덤, 극장을 만든 구조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왔다.

 

상업로의 중심, 나바테아인의 지혜

페트라는 전략적으로도 탁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라비아반도에서부터 지중해로 이어지는 고대 교역로의 한복판에 놓인 덕분에, 이 도시는 동서 문명의 물류가 모이고 흩어지는 상업 중심지로 기능했다. 나바테아인들은 향신료, 비단, 유향(乳香) 등 고가의 상품을 중개하며 부를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독창적인 건축과 수리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암석 위에 지은 도시가 아니라, 암석 속에 새긴 도시

페트라의 가장 큰 특징은 암석을 ‘형태 그대로’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암벽을 바탕으로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암벽을 안쪽으로 파내며 형태를 조각해냈다.

가장 유명한 구조물인 ‘엘 카즈네(Al-Khazneh, 보물창고)’는 정면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사암 절벽을 조각해 만든 전면 장식에 불과하다. 그 뒤편에 실내 공간이 연결되어 있지만, 이는 건축물을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암석을 파내어 만든 공간이다. 즉, 이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일종의 암석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알 카즈네, 보물창고

알 카즈네(Al Khazneh, 보물창고). 기원전 1세기,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3세에 의해 건설됨

이러한 방식으로 조각된 구조물은 수백 개에 이르며, 왕족의 무덤부터 신전, 극장, 시장, 회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그 용도도 매우 다양하다. 현재까지 발굴된 대부분의 건축물은 장례 의식이나 종교 의례와 관련된 기능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도시 전체의 구조와 사회적 역할은 여전히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전체 유적지는 약 260㎢에 달하며, 이 같은 규모는 고대 도시 가운데서도 드물게 방대한 편에 속한다.

사막에서 물을 지배하다

사막이라는 환경 속에서 페트라가 수 세기에 걸쳐 번영할 수 있었던 데는 치밀한 수자원 관리시스템이 존재했다. 절벽에는 빗물을 끌어들이는 수로와 배수로가 정교하게 조성되어 있었고, 도시 곳곳에는 시스턴(cistern)이라 불리는 물 저장소가 존재했다.

계절별로 변하는 강수량에 대비해 여름철에는 빗물을 저장하고 갑작스런 홍수를 피할 수 있도록 배수 경로가 철저히 계산되어 있었다. 이러한 수리시스템은 단순한 생활유지 차원을 넘어, 도시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였으며, 오늘날까지도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고대 도시 물 관리의 모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지진과 침식, 그리고 잊힘의 시간

페트라가 번영을 멈춘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서기 363년의 대지진이었다. 이 지진은 도시 전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많은 구조물의 일부 혹은 전체가 붕괴되었다. 기후 변화와 교역로 이동, 로마제국의 변화도 겹치며 도시는 점차 황폐해졌고, 결국 수백 년에 걸쳐 모래와 바위 아래로 묻히게 되었다. 현지인들에게조차 그 존재가 희미해질 정도로 ‘잃어버린 도시’가 된 것이다.

그 후 1812년, 스위스 출신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에 의해 페트라는 다시 서구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이 도시는 고고학적 열망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의 페트라, 아직 끝나지 않은 발굴

현재 페트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85년 등재)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7년에는 전 세계 투표를 통해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관광지로서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보존문제와 관광객 증가에 따른 훼손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페트라는 전체 유적의 일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굴된 구역은 전체의 약 15%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여전히 모래와 바위 아래 묻혀 있다.

따라서 페트라는 아직 완결된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발굴과 연구가 진행 중인 유적으로, 인류문명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중요한 열쇠이자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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