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만 보이는 선
남미 페루 남부의 사막지대에는 하늘에서만 형태가 보이는 거대한 선들이 남아 있다. 수백 개에 이르는 직선과 동물 모양 도형들, 이른바 나스카 라인이다.
이 선들은 페루 남부해안과 안데스 산맥 사이, ‘나스카 고원(Nazca Plateau)’이라 불리는 건조한 평지에 새겨져 있다. 연 강수량은 20mm도 되지 않아 수천 년 전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약 2,000년 전 고대문명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선들은 지상에서는 전체 형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상공에서만 명확한 형상이 드러난다. 이 점은 그 기원에 대한 설명 중 하나로 오래전부터 외계문명과 관련된 가설을 낳았다.
착륙장인가, 신호판인가
외계문명 가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은 나스카 라인이 지구 밖 존재에게 보이기 위해 설계된 표시라는 주장이다.
1968년 에리히 폰 데니켄(Erich von Däniken)은 저서 『신들의 전차』에서 나스카 라인을 외계인의 착륙장으로 해석했다. 사막 위에 새겨진 수 킬로미터의 직선들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하늘에서 접근하는 비행체를 위한 시각유도선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벌새, 거미, 원숭이 같은 거대한 동물 도형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이에게 의미 있는 신호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누구를 위한 신호였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을 위해 보기 좋게 만든 건 아니었을 것이다.
이 해석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나스카 라인의 정밀한 도형 비율,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직선의 정확도, 수천 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보존력은 지상에서 생활하던 부족이 ‘그냥 만든 것’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측량도구와 줄자, 그리고 인간
물론 고고학계는 이 해석에 반대한다. 학자들은 선을 그릴 때 말뚝과 줄을 이용한 지상 측량기법이 사용되었으며, 인력과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가능한 작업이라고 설명해왔다.
실제로 일부 도형은 단순한 기하학으로도 재현 가능하고, 복원 실험에서도 도보만으로 유사한 선을 그릴 수 있음이 입증된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적으로 가능했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까지 했는가이다. 전체 도형은 한눈에 볼 수 없고, 지상에서 걷는 이에게는 아무런 형체로도 인식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수백 명이 수년 동안 작업했다는 설명은 실제로는 그 의도를 해명하지 못한다.
누가 이 선을 보았을까
만약 누군가 위에서 이 선을 봤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른 시기의 나스카 문화에는 비행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열기구설이 제기되긴 했지만 고고학적 증거는 불충분하다.
지상에 그려진 선이 하늘에서만 온전히 보이는 형태라면 그 선은 지상에 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 점은 외계문명 가설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다. 위에서 본다는 전제가 없다면 나스카 라인은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것의 힘
나스카 라인에 대한 해석은 여럿 존재한다. 일부는 천체의 움직임을 추적한 달력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종교의식이 행해진 길이라고 해석한다. 지하 수맥을 표시한 지도라는 주장도 있다.
이 해석들은 모두 내부 논리를 따르고 있으며 각각의 도형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 중 어떤 설명도 왜 이렇게까지 거대한 형상을 땅에 새겼는가에 대해 완전히 설득력 있는 답을 주지는 못한다.
이런 틈 속에서 외계문명 가설은 가능성이라기보다 상상력의 문으로 작용한다. 누군가가 하늘에서 본다면 그들은 이 선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 자체가 이미 수천 년 전 인간이 지녔던 우주적 상상력의 흔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