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Mausoleum at Halicarnassus)

마우솔레움 가상

할리카르나소스의 영묘 (By Ferdinand Knab,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죽음을 기념한 영원한 건축

기원전 4세기, 오늘날 터키 남서부의 항구도시 보드룸(Bodrum)에는 당시 카리아(Caria) 지역을 통치하던 총독 마우솔로스(Mausolus)가 사망했다. 그의 아내이자 누이이기도 한 아르테미시아 2세(Artemisia II)는 남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그 어느 무덤보다도 화려하고 영원한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다.

이 영묘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며, ‘마우솔레움(mausoleum)’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

구조와 규모

마우솔로스 영묘는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거대한 기념비적 건축물이었다. 전체 높이는 약 45미터에 달했으며,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 기단부: 계단형 석조 구조로 안정적인 토대를 형성했다.
  2. 기둥 회랑: 36개의 이오니아식 대리석 기둥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그 사이사이에 조각상이 세워졌다.
  3. 피라미드형 지붕과 전차상: 회랑 위에는 24단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얹혀 있었고, 맨 꼭대기에는 마우솔로스와 아르테미시아가 탄 4마리 말 전차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벽면과 외부에는 그리스 신화의 장면을 묘사한 섬세한 부조 조각이 장식되었는데, 조각가로는 고대 최고의 예술가들인 스코파스(Scopas), 브리악시스(Bryaxis), 레오카레스(Leochares), 티모테우스(Timotheus) 등이 참여했다.

마우솔레움 유적지

터기 보드룸의 할리카르나소스의 영묘 유적지에 남은 기둥과 석재 조각들

By User bazylek100 at Flickr, CC BY 2.0, wikimedia commons.

역사 속의 운명

이 영묘는 한때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도 견뎌냈고, 해적의 약탈에서도 살아남았지만, 반복된 지진 앞에서는 결국 붕괴를 피할 수 없었다. 영묘는 12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점차 파괴되었고, 15세기 초 로도스 기사단(Knights of St. John)은 유적의 대리석을 뜯어 보드룸 성을 짓는 데 사용했다.

19세기 중엽, 찰스 뉴턴 경(Sir Charles Thomas Newton)이 발굴작업을 수행하며 일부 조각상과 부조를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으로 가져갔다. 지금도 그곳에 일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오늘날의 모습과 의미

오늘날 마우솔로스 영묘는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지 않다. 터키 보드룸의 유적지에는 일부 기단부와 파편들만이 남아 있으며, 유적지 내 소규모 박물관과 보드룸 성에서도 관련 유물과 조각 조각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무덤이 지닌 영향력은 그 잔해 너머로 뻗어 있다. 후대의 크고 장대한 영묘나 능묘들은 이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고, 마우솔레움(mausoleum)이라는 단어는 지금도 위인이나 왕족, 지도자의 무덤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널리 쓰인다.

불가사의로서의 위상

마우솔로스 영묘는 그 웅장한 구조와 예술성 덕분에 고대 그리스 시인 안티파테르(Antipater of Sidon)가 선정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이 영묘는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예술로 승화시키는지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상징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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