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불가사의, 바빌론 공중정원 – 실존했을까?

바빌론의 공중정원 그림

공중정원과 배경의 바벨탑을 묘사한 19세기 채색 판화 (작자 미상, Public Domain)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가장 신비로운 건축물 중 하나로 전해진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메디아 출신의 아내 아미티스를 위해 정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녀는 푸른 산과 물이 흐르는 고향을 그리워했고, 이를 위해 사막 위에 인공 낙원을 만든 것이다. 

‘공중정원(Hanging Gardens)’이라는 이름은 식물이 지면이 아닌 여러 층의 테라스 위에 조성되었고, 이를 외부에서 보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장대한 정원은 바빌론 제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구조와 조경: 중력을 거스른 정원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이 정원은 약 20여 미터 높이의 인공 테라스에 지어졌다고 한다. 지지 구조는 벽돌과 아스팔트, 점토, 석회 콘크리트로 구성되어 있었고, 위로 올라갈수록 경사진 계단식 구조로 이루어졌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복잡한 관개 시스템이다. 유프라테스강에서 끌어온 물을 점토관과 아쿠아덕트, 펌프 시스템을 통해 상층까지 끌어올렸고, 이 물이 다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정원에는 이국적인 나무, 꽃, 관목류가 다층적으로 배치되었고, 계절을 가리지 않고 푸르름을 유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구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건축학적 도전으로 평가된다. 공중정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권력·기술·정서적 배려가 집약된 상징물이었다.

바빌론의 공중정원 가상의 그림

Athanasius Kircher의 작품. 1679년 저서 『Turris Babel』에 수록된 삽화.

출처: Internet Archive.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링크

실존 여부에 대한 의문과 논쟁

최초로 공중정원에 대한 기록을 남긴 사람은 바빌론 사람들 스스로가 아니라 기원전 290년경에 활동한 그리스 작가 ‘코스의 베로수스(Berossus of Kos)’였다. 그는 정원을 장엄한 장소로 묘사하며, 산처럼 높이 솟은 석조 테라스에 큰 나무들과 꽃들이 심겨져 있었다고 전했다. 이후 스트라보, 요세푸스, 디오도로스 시클루스 등의 고대 작가들이 해당 정원을 언급했지만, 이들은 모두 바빌론 멸망 이후 수백 년 후의 인물들이었다.

문제는 고고학적 증거의 부재다. 바빌론 유적에서는 현재까지 정원의 흔적이라 판단할 만한 구조물이 발굴되지 않았다. 또한, 바빌로니아의 설형문자 점토판 수천 개가 남아 있음에도 공중정원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정원을 헌정받았다고 알려진 아미티스라는 인물 역시 공식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안 이론: 니네베와 문학적 상징설

이러한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몇 가지 대안적 가설이 등장했다.

첫 번째는, 공중정원이 실제로는 바빌론이 아니라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Ninive)에 있었을 가능성이다. 당시 그리스 작가들이 바빌론과 니네베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니네베에서는 실제로 수로 구조를 갖춘 정원이 발견된 바 있다.

두 번째는, 공중정원은 실존한 물리적 정원이 아니라, 후대 문헌에서 과장되거나 이상화된 문학적 상징이라는 해석이다. 왕궁 내 조경시설이 시간이 흐르며 전설로 변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고대 문명에서 정원이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질서, 통제, 풍요의 은유적 공간이었음을 고려할 때 설득력을 가진다.

남겨진 유산과 현대의 재해석

비록 물리적 증거는 부족하지만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여전히 고대인의 상상력과 기술력이 융합된 상징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에도 학자들과 건축가들은 다양한 모델을 통해 이 정원을 재현하려 하고 있으며, 물리적 구조뿐 아니라 그 정신적 의미에도 주목하고 있다.

정원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정원이 고대 문명 속에서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갈망과 제국의 권위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점이다.
그 흔적이 유실되었더라도 그 개념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예술, 문학, 역사, 건축을 넘나들며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글을 마치며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존재했을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존재 여부를 둘러싼 논쟁 자체가 인류에게 여전히 상상과 탐구의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원은 단지 고대의 구조물이 아니라, 사라진 문명을 기억하고 해석하려는 인간의 문화적 태도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오늘도 모래 속을 파헤치며 그 흔적과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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