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차례로 쿠푸(Khufu), 카프라(Khafre), 멘카우라(Menkaure) 피라미드
이집트 카이로 외곽, 사막 지평선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한 삼각형. 약 4,500년 전 세워진 기자(Giza)의 피라미드는 지금도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이 구조물은 단순한 돌더미가 아니다. 인간의 집념과 정밀함이 집약된, 고대가 남긴 압도적 건축예술이다.
쿠푸의 대피라미드
기자의 세 피라미드 중 가장 큰 미라미드는 ‘쿠푸 피라미드’다. 이집트의 파라오 쿠푸(Khufu, 그리스어로 Cheops)가 자신의 무덤으로 지은 이 거대한 구조물은 대략 기원전 2590년에서 2470년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원래 146.6미터, 바닥 한 변의 길이는 230미터로, 50층짜리 초고층 건물에 맞먹는 규모다.
그 거대한 몸체를 이루는 약 230만 개의 석회암 블록은 총 6,400,000톤에 달한다. 하나하나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 돌들은 오늘날까지도 거의 빈틈 없이 연결돼 있다.
쿠푸의 미라미드 측면. By kallerna,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어떻게 이런 건축이 가능했을까
쿠푸 피라미드의 건설은 상상을 초월하는 준비와 노동을 필요로 했다. 약 4,000명의 인부들이 10년에 걸쳐 나일강에서 피라미드 부지까지 도로를 닦고, 그 넓은 부지를 완벽히 평평하게 다졌다.
본격적인 공사는 이집트 전역에서 모인 석공, 건축가, 노동자들의 손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현장 바로 옆 ‘노동자 마을’에 살며 20년 넘게 피라미드 건설에 매달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들은 노예가 아닌 전문 인력으로, 상당한 보수를 받고 일했다는 점이다.
수백만 개의 돌, 수천 킬로미터의 여정
피라미드에 쓰인 돌들은 멀리 떨어진 채석장에서 깎아냈다. 여덟 명씩 한 조가 되어 2.5톤짜리 정육면체 석회암을 잘라내고, 이를 썰매에 실어 나일강까지 끌고 갔다. 이후 바크(barque)라는 배에 싣고 강을 따라 이동, 건설 현장에 도착하면 다시 썰매로 옮겨 최종 조립을 했다.
꼭대기에는 ‘피라미디온(Pyramidion)’이라는 10미터 높이의 마감석이 올려졌다. 그리고 외벽 전체를 매끄럽고 하얀 석회암으로 덮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돌덩이처럼 보이도록 마감했다. (이 석회암 외장은 지금도 가운데 카프라 피라미드 정상에 일부 남아 있다.)
사막을 지키는 스핑크스
스핑크스 뒤로 카프라 피라미드와 멀리 멘카우라 피라미드가 보인다.
중앙의 카프라 피라미드 아래쪽, 조금 떨어진 거리에 유명한 스핑크스가 앉아 있다. 인간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진 이 조각상은 피라미드보다 약간 먼저 제작됐으며, 파라오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했다. 지금은 색이 바래고, 터키군의 공격으로 코도 부서졌지만 여전히 위용을 잃지 않고 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고대의 흔적
4,5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기자의 피라미드는 여전히 사막 위에 우뚝 서 있다. 물론 세월의 흔적은 남았다. 원래 피라미드를 덮고 있던 흰색 석회암 외벽은 후대 이집트인들이 카이로 시내에 집을 짓는 데 사용했고, 꼭대기의 피라미디온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라미드의 규모와 정밀함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을 압도하고 있다. 네 면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도록 정렬돼 있으며, 완벽하게 균형 잡힌 형태는 고대 이집트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준다.
기자의 피라미드는 단순한 석재 구조물이 아니다. 인간의 꿈과 기술, 집념이 사막 위에 새겨놓은 영원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