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나미브-노클루프트 국립공원 내 페어리 서클의 항공 사진
By Olga Ernst & Hp.Baumeler,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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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의 흔적에서 생존의 무늬로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 사막 한가운데에는 황토빛의 메마른 지표면 위로 수천 개의 원형 무늬가 퍼져 있다. 마치 하늘에서 뿌려진 점묘화처럼 보이는 이 이상한 자국은 ‘페어리 서클(Fairy Circles)’이라 불린다.
이름만 보면 전설 속 요정의 흔적 같지만 이 형상은 실제 생태계의 결과물이다. 위성사진에서도 확인될 만큼 뚜렷한 이 무늬는 한때 과학자들의 수수께끼였다. 지금은 그 형성과정이 과학적으로 상당 부분 설명 가능하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남아 있다.
처음에는 다양한 가설이 제시되었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흰개미가 지하에서 식물 뿌리를 갉아먹어 중앙이 비게 된다고 보았고, 또 다른 이들은 풀들이 자리를 ‘선택’해 군집을 이룬 결과라고 설명했다. 최근 연구는 두 가설 중 후자, 즉 식물 간의 수분 경쟁에 따른 자가조직화(self-organization) 현상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이는 식물들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서로 간 거리를 유지하는 구조로, 복잡한 지휘 없이도 질서를 형성하는 자연 현상의 일종이다. 고리 주변의 풀들은 자기 주변의 수분을 빨아들이며 생장을 이어가지만, 중심부는 수분이 고갈돼 풀이 죽는다. 결국 식물의 생존 전략이 만든 ‘공간 확보의 결과’인 셈이다.
나미비아 마리엔플루스탈 지역의 페어리 서클. By Stephan Getzin (via Beavis729), CC BY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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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무늬가 단지 무작위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페어리 서클은 균일한 간격을 두고 형성되며,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에서만 나타난다. 이러한 특성은 물리학과 수학에서 다루는 ‘패턴 형성’ 이론과도 연결된다. 건조 지역에서 자원이 부족할수록 생물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며, 정렬된 구조를 이루게 된다. 이처럼 자연은 혼돈 속에서도 일정한 질서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흰개미의 역할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흰개미가 식물 생장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페어리 서클의 기원은 하나의 원인이라기보다 복합적인 생태작용의 결과로 이해된다. 생물학, 기후학, 지질학이 모두 얽힌 이 현상은 과거에는 ‘요정의 흔적’으로, 현재는 ‘사막 생태계의 자기조직화’로 설명되고 있다.
결국 페어리 서클은 미스터리에서 과학으로 넘어온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신비한 자연현상으로 다뤄졌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를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만든 생존 무늬로 해석한다. 인간의 눈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여도 이것은 극한 환경에서 생태계가 유지되는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자연은 때때로 가장 극단적인 환경에서 가장 정교한 질서를 만들어낸다. 페어리 서클은 그 대표적인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