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사이트: 보지 않아도 감지하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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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누군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종종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실제로 뒤를 돌아봤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전체 인구의 약 90%가 누군가 자신을 몰래 지켜볼 때 그 시선을 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대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불가능한 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의뢰를 받은 생물학자 루퍼트 셸드레이크(Rupert Sheldrake)는 이 오랜 ‘민간신앙’과 같은 감각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했다. 그 결과는 흥미로웠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약 55%가 반복된 실험에서 시선을 감지하는 데 있어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높은 정확도를 보인 것이다.

보지 못해도 본다’는 뇌의 미스터리

이 놀라운 감지 능력은 “블라인드사이트(Blindsight)” 현상과 연결된다. 이는 시각 피질이 손상된 사람들 중 일부가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여전히 색깔, 모양, 방향, 위치 등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뇌졸중 이후 양쪽 시각 피질이 모두 손상된 영국인 환자 “TN”이다. 그는 시각적으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지만 눈앞의 장애물을 피해 걸을 수 있었고, 이를 촬영한 영상은 뇌의 무의식적 시각 처리 능력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 되었다. 

인간의 시각 시스템은 두 가지 경로를 가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뇌는 시각 정보를 처리할 때 단일 경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서로 다른 경로를 동시에 활용한다.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각 피질(V1, primary visual cortex)을 통한 경로다. 이 경로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데 사용된다. 즉,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이 경로를 거쳐야만 우리는 그것을 “봤다”고 느낀다.

하지만 또 다른 경로가 존재한다. 바로 상구(上丘, Superior Colliculus)와 같은 뇌의 하위 영역을 경유하는 경로이다. 이 경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빛의 방향이나 물체의 위치, 운동 등을 빠르게 감지해 반사적 행동이나 무의식적 반응을 유도한다.

이러한 이중 구조 덕분에 시각 피질이 손상된 사람조차도 여전히 빛이나 움직임에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보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몸은 주변의 시각 정보를 어느 정도 ‘감지하고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철새도 자기장을 ‘보지 않고 본다’

이러한 무의식적 감지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철새들도 수천 킬로미터에 걸친 이동 경로를 지구 자기장을 인식해 따라간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어떻게 그걸 인식하는지는 미스터리였다.

2021년, 과학자들은 드디어 양자역학적 반응 메커니즘과 ‘크립토크롬(Cryptochrom)’이라는 단백질을 통해 철새가 자기장을 감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고 이용하는 감각체계는 동물계 전반에 퍼져 있는 보편적인 생존전략인 것이다.

감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다

우리는 눈으로 본 것만 믿으려 하지만, 인간의 감각시스템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때로는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해도 몸과 뇌는 환경을 받아들이고, 판단하며, 반응한다.

블라인드사이트, 시선 감지, 자기장 인식 같은 사례들은 우리가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감각의 여백”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과학은 이를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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