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콜로라도 남서부 고원지대. 가파른 절벽 아래, 깎아낸 듯한 바위 벽에 수십 개의 방과 구조물이 질서정연하게 들어서 있다. 이곳은 메사 베르데(Mesa Verde). 스페인어로 ‘푸른 테이블’을 뜻하는 이름처럼 평평하고 건조한 고지대에 펼쳐진 이 유적은 고대 북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인 아나사지(Anasazi)의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메사 베르데의 클리프 팰리스 (출처: 픽사베이)
절벽 위의 사람들
아나사지족은 기원후 600년경부터 이 지역에 정착해 농경과 정착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비옥하지 않은 고지대에서 옥수수와 콩, 호박 등을 재배하며, 협곡과 고원에 점토벽돌과 석재를 이용한 주거지를 만들었다. 주요 생활터전이었던 평지에서 절벽 아래로 이주한 시기는 약 12세기경이다.
이들이 건설한 대표적 거주지는 클리프 팰리스(Cliff Palace)로 150개가 넘는 방과 20여 개의 키바(kiva)라는 의식용 원형 지하공간이 남아 있다. 절벽 틈에 지어진 이 건축물들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정교하게 계획된 주거의례보존의 복합공간이었다. 절벽 위에서 빗물을 모아 식수로 사용했고, 식량은 저장고에 말려 보관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사다리와 작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문명은 왜 절벽 아래로 내려왔는가
아나사지족이 절벽 아래로 삶의 터전을 옮긴 배경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기후 변화다. 12세기 후반 이 지역은 장기간의 가뭄을 겪었고, 농업 기반이 약해진 주민들이 보다 안정적인 식수와 기후 조건을 찾아 절벽 그늘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 다른 해석은 외부 침입에 대비한 방어 목적이다. 평지에 위치한 기존 거주지가 적대 부족의 위협에 노출되자 절벽 속 공간이 은신과 방어에 유리한 지형으로 인식되었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가설 외에도 몇 가지 다른 이론이 제시되고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문명은 사라졌다
13세기 말부터 아나사지의 절벽도시는 점차 사람의 자취가 사라지며, 약 100년에 걸쳐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이는 단순 이주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폐허 속 유적에서 불에 탄 흔적, 조직적 파괴, 식인으로 해석되는 인골의 손상 흔적들이 발견되면서 단순한 이주 이상의 사회적 충돌 또는 붕괴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부 유적에서는 절단된 뼈와 화형 흔적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러한 유물은 동물 뼈를 정육하듯 처리한 흔적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식량부족 상황에서의 식인행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되기도 한다. 반면, 종교적 의례나 전쟁포로에 대한 처형행위로 설명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여전히 남은 수수께끼
“현재 푸에블로(Pueblo) 인디언들은 아나사지의 직계 후손임을 주장하고 있다. ‘아나사지(Anasazi)’라는 명칭은 원래 나바호족이 과거의 적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이 명칭은 나바호어로 ‘적의 조상들(Enemy Ancestors)’을 의미하며, 일부에서는 이를 모욕적인 표현으로 간주한다. 이에 따라 오늘날에는 보다 중립적인 표현인 ‘Ancient Puebloans(고대 푸에블로인)’이 사용된다.”
고고학자들은 남겨진 유적과 도자기, 석기, 건축 구조를 통해 그들의 문명과 생활방식을 꾸준히 복원해가고 있지만 정확히 왜 그들이 절벽을 거주지로 택했고, 왜 그곳을 버렸는가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하나의 가설에 머물러 있다.
메사 베르데는 지금도 미국 국립공원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절벽 도시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극적이고 신비로운 유적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시간 속으로 사라진 문명은 여전히 바위 틈에서 말을 걸고 있다. 단지, 그 말을 우리가 아직 듣지 못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