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위쪽에 미 의회 의사당, 중앙에는 워싱턴 기념탑, 아래쪽에는 제2차 세계대전 기념관
도심의 대리석 기념탑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은 미국 워싱턴 D.C. 중심에 위치한 오벨리스크 형태의 구조물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내셔널 몰(National Mall) 한가운데, 미 의회 의사당과 링컨 기념관 사이에 자리하며, 도시의 주요 축선을 따라 정중앙에 놓여 있다. 높이는 169미터에 달한다.
이 기념탑은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형식을 본떠 설계되었으며, 미국 건국 초기부터 조지 워싱턴의 상징적 위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수도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도 활용되며, 역사적 의미와 구조적 특징을 동시에 갖춘 상징물로 알려져 있다.
완벽하지 않은 시작
이 기념탑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남긴 정치적 유산에 대한 헌정으로 구상되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전쟁의 총사령관이었던 그의 이름은, 이미 생전부터 상징 그 자체였다.
기념탑의 구상은 19세기 초에 시작되었지만, 실현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따랐다. 1848년에 첫 삽을 뜬 이후, 공사는 1854년까지만 진행되었고, 자금난과 남북전쟁 발발(1861)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후 1879년에 공사가 재개되어 1884년 완공되었다.
총 공사 기간만 따지면 36년. 이 오랜 시간의 단절은 건축물에 물리적인 흔적을 남겼다. 지상 46미터 부근에서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색조의 경계가 그것이다. 두 시기에 걸쳐 서로 다른 채석장에서 조달된 대리석이 사용되면서 생긴 이 ‘두 톤’ 외벽은, 기념탑의 미완성과 재개라는 역사 자체를 구조 속에 새겨 넣었다.
초록색 화살표는 외벽 대리석 색이 달라지는 경계 부근을 가리킨다.
현대의 오벨리스크
이 구조물의 형태는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obelisk)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미국 건국기에 인문주의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오벨리스크는, 하늘과 땅을 잇는 경배의 형식이자, 인간의 숭고한 이상을 수직으로 끌어올리는 도상(圖像)이었다. 워싱턴 기념탑은 이를 차용하면서도, 고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됐다.
총 높이는 169미터(555피트)로, 고층 건물이 허용되지 않는 워싱턴 D.C.에서 통신탑 같은 특수 구조물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구조물이다. 그 위용은 외관만으로도 이미 압도적이지만, 내부에 담긴 공학적 설계는 또 다른 경탄을 자아낸다. 기단부는 17미터 너비에, 벽 두께가 무려 4.6미터에 달하며, 꼭대기로 갈수록 점점 좁아져 정상에서의 두께는 46센티미터 남잣이다. 중세 성채에 견줄 만큼 두꺼운 벽체를 가진 이 탑은, 내부가 비어 있는 순수 석재 구조물이다.
전망대로 이어지는 공간
1886년 일반 대중에게 처음 개방되었을 당시에는 계단을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했다. 1888년 증기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이동이 훨씬 수월해졌고, 1901년에는 전기식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2019년에는 최신 고속 엘리베이터가 도입되어, 현재는 약 1분 만에 전망대에 도달할 수 있다.
전망대는 피라미디온(pyramidion, 탑 꼭대기 덮개형 구조물) 바로 아래에 있다. 사방으로 난 창문을 통해 워싱턴 D.C. 전경이 펼쳐지며, 맑은 날에는 40킬로미터 너머까지 시야가 열린다. 내셔널 몰, 포토맥 강, 국회의사당, 멀리 보이는 국립묘지까지—이곳은 단순한 조망 지점을 넘어, 미국의 역사와 상징이 한눈에 펼쳐지는 공간이다.
탑을 채운 기념석들
내려오는 길은 또 다른 경험이다. 내부 동서벽을 따라 193개의 기념석이 박혀 있다. 미국 각 주와 도시, 외국 정부, 민간 단체들이 조지 워싱턴과 공화국에 대한 경의를 담아 헌정한 이 석판들은, 각기 다른 이름과 문장이 새겨져 하나의 모자이크처럼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미국이 처음부터 하나의 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각 주와 공동체가 함께 만든 다층적인 구성체였음을 상기시켜준다.
흥미롭게도 이 거대한 탑은 접착제 없이 중력만으로 지탱된다.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물 간의 하중 분산은 지진에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이다. 실제로 2011년 미국 동부를 강타한 지진에도 큰 손상 없이 견뎌냈다. 이는 고대 건축 방식의 현대적 부활이라 할 만하다.
기억과 성찰의 장소
워싱턴 기념탑은 단순한 대통령 추모비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건국의 이념을 시각화한 오벨리스크이며, 건설의 단절과 복구 속에 19세기 정치사의 흔적을 담은 구조물이다. 그 안에 들어가 위로 오르고, 바깥을 내려다보는 행위는, 개인이 국가의 기원과 직접적으로 맞닿는 상징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탑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미국 역사와 민주주의의 상징을 공간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워싱턴 D.C.를 방문한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의미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