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 ᅳ 죽음을 숨긴 장소

왕들의 계곡 전경.

왕들의 계곡 전경. KV11을 내려다보는 언덕에서 북쪽을 향해 촬영한 모습.

By Wouter Hagens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피라미드 대신 바위산 속으로

이집트 룩소르(Luxor) 서쪽, 나일강(Nile) 건너편 사막 계곡에는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왕릉 지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왕들의 계곡이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New Kingdom)의 파라오(pharaoh)들은 더 이상 피라미드를 세우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무덤을 바위산 속 깊이 숨겼다.

피라미드가 권력의 과시였다면, 왕들의 계곡은 은폐와 지속의 공간이다. 왕의 죽음은 여전히 신성했지만 그 무덤은 더 이상 외부에 드러나지 않아야 했다. 도굴을 피하고, 사후 세계로의 여정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하에 새겨진 사후 세계

한 왕릉 내부, 상형문자와 벽화로 뒤덮인 복도

왕들의 계곡의 한 왕릉 내부, 상형문자와 사후 세계 벽화로 뒤덮인 복도.

By ولاء – Own work,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왕들의 계곡의 무덤들은 지상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입구를 지나면 긴 복도와 방들이 이어지고, 그 벽면에는 상형문자와 벽화가 빽빽하게 남아 있다. 이 그림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태양의 항해, 영혼의 심판, 오시리스(Osiris)의 세계처럼 사후 세계를 통과하기 위한 지침서에 가깝다.

이곳에서 무덤은 매장 공간이 아니라 영원에 도달하기 위한 장치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통과였고, 무덤은 그 통과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물이었다.

투탕카멘(Tutankhamun) 이후의 명성

투탕카메의 무덤 내부

왕들의 계곡에 위치한 투탕카멘의 무덤(KV62)

By ولاء – Own work,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왕들의 계곡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22년, 투탕카멘의 무덤(KV62)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거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드러난 이 작은 왕릉은 황금 가면과 수많은 부장품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왕들의 계곡은 ‘파라오의 보물창고’라는 이미지(image)로 굳어졌다.

그러나 이 명성(fame)은 곧 또 다른 문제를 불러왔다. 수많은 방문객이 매일같이 무덤 안으로 들어오면서, 공기 중 습도와 이산화탄소가 증가했다. 그 결과 안료는 변색되기 시작했고, 벽면에는 미생물이 증식했다. 손과 몸, 가방이 벽에 스치는 접촉은 침식을 가속했다.

보호를 위해 닫히는 무덤

오늘날 왕들의 계곡은 보존을 위해 일부 무덤의 공개가 제한되는 장소가 되었다. 일부 무덤은 완전히 봉인되었고, 일부는 교차 개방 방식으로만 공개된다. 보존을 위한 조치로 새로운 환기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관람객 수 제한과 입장 관리도 강화되었다.

특히 투탕카멘, 세티 1세(Seti I), 네페르타리(Nefertari)의 무덤은 복제(replica)까지 논의될 정도로 보존 이슈로 민감하다. 이 지점에서 왕들의 계곡은 더 이상 단순한 유적이 아니다. ‘공개’와 ‘보존’이 충돌하는 최전선이 되었다.

시간이 쌓인 유적

왕들의 계곡은 단일한 유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의 무덤과 보존 흔적이 겹겹이 축적된 공간이다. 파라오의 장례를 위해 조성된 이 계곡은 수천 년에 걸쳐 자연 환경과 인간의 개입을 동시에 받아 왔다. 오늘날 남아 있는 모습은 고대의 설계뿐 아니라, 이후 세대가 어떤 방식으로 유지·변형·관리해 왔는지를 함께 반영한다.

이러한 점에서 왕들의 계곡은 과거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이 시간과 더불어 어떤 조건 속에서 유지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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