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스페이스 니들
By Atomic Taco from Seattle,,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도시를 상징하는 세 가지 풍경
시애틀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1907년부터 이어져 온 전통 시장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이나, 1971년 이곳에서 첫 매장을 열며 전 세계 커피 문화를 이끌어간 스타벅스 1호점(Starbucks First Store)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건축적 랜드마크라는 관점에서 시애틀의 스카이라인을 압도하는 가장 강렬한 상징은 단연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다. 하늘로 길게 뻗은 이 타워는 마치 도심 한가운데 내려앉은 우주선처럼 보이며, 지난 수십 년간 시애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박람회가 남긴 미래의 아이콘
스페이스 니들은 1962년 시애틀 세계 박람회(Seattle World’s Fair)를 위해 세워졌다. 당시 주제는 ‘우주 시대(Age of Space)’였는데, 냉전 시기의 치열한 우주 경쟁 속에서 ‘미래 도시’의 상징을 만들고자 했다.
불과 400여 일 만에 완공된 이 건축물은 1962년 세계 박람회 기간 동안 약 230만 명의 관람객을 엘리베이터로 정상까지 실어 나르며, 시애틀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기회를 선사했다. 그 이후 스페이스 니들은 단순한 전망대를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높이 184미터에 달하는 이 타워는 당시로서는 과감한 설계였다. 특히 지상 152미터 높이의 전망대 바로 아래에 자리한 레스토랑은 건축가 존 그레이엄의 과감한 아이디어가 반영된 공간이다. 이곳은 천천히 회전하도록 설계되어, 손님들은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변하는 360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회전식 레스토랑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공중을 가르는 43초
스페이스 니들의 여정은 지상에서 출발한다. 전면이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도시의 빌딩 숲을 스쳐 지나며 하늘로 치솟는다. 단 43초 만에 전망대 층에 도달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발아래로 펼쳐지는 시애틀 전경은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해방감을 준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트인 360도 전망이 기다린다. 올림픽 산맥의 설원, 퓨젯 사운드(=퓨젯灣)의 바다, 그리고 날씨가 맑을 때는 저 멀리 웅장하게 솟아 있는 레이니어산(Mount Rainier)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새로운 시선을 선사하는 공간
2018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스페이스 니들은 다시 한번 미래로 도약했다. 전망대는 전면 유리로 교체되어 시야가 탁 트였고, 그 아래 층에는 세계 최초의 회전식 유리 바닥이 설치되었다.
이 공간은 ‘루프 라운지(The Loupe Lounge)’라 불리며,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칵테일을 즐기면서 발아래 펼쳐진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총 10겹의 강화유리로 이루어진 이 바닥은 약 30분마다 한 바퀴씩 회전한다. 덕분에 지상 풍경은 물론 구조물 내부의 작동 원리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기억에 남는 포토 스팟
전망대 야외 구역에는 ‘스카이라이저(Skyrisers)’라는 투명한 벤치가 24개 설치되어 있다. 의자에 앉아 몸을 뒤로 기울여 사진을 찍으면, 마치 허공에 매달린 듯한 아찔한 모습이 연출된다. SNS에 올리기 좋은 대표적인 인증샷 장소로 꼽히며, 젊은 여행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마무리하며
전망대와 레스토랑은 세계 여러 도시에도 있다. 그러나 시애틀 스페이스 니들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높이나 시설 때문이 아니다. 20세기 초반, 미국 서부의 한 항구 도시였던 시애틀은 세계 박람회를 계기로 자신들의 미래상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했다. 스페이스 니들은 그 열망을 건축으로 구현한 결과물이자, 여전히 그 도시에 살아 숨 쉬는 미래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