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Santorini), 하얀 벽의 섬

산토리니(Santorini), 픽사베이 이미지

 

산토리니의 하얀 벽과 파란 지붕

‘산토리니’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이들이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새하얀 건물 벽면과 그 위에 얹힌 파란 지붕, 그리고 수평선 너머로 펼쳐지는 에게해의 짙은 푸름. 

하지만 그 이미지는 실제보다 정교하게 편집된 상징에 가깝다. 직접 그 섬을 걸어본 사람들은 말한다, “파란 지붕은 생각보다 거의 보이지 않는다”라고.

빛을 이기는 방법

그리스 남부 에게해에 위치한 산토리니는 햇볕이 강하고, 여름의 열기는 쉽게 40도에 육박한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얀색을 선택했다. 햇빛을 반사하는 흰 벽은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하고, 벽면에 사용된 석회(라임)는 습기와 세균을 막아주는 위생적 효과도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 1960년대 이전의 산토리니에서 하얀 벽은 미관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웠다.

국기가 된 건물

1930년대, 메타크사스(Ioannis Metaxas) 독재 정권은 건물 색깔에까지 국가 정체성을 투영했다. 하얀 외벽과 파란 지붕은 그리스 국기의 색과 겹쳤고, “파란 바다와 하얀 파도”라는 구호와 함께 사적인 건물이 공적인 상징이 되었다. 이후 군사정권 시기에는 일부 지역에서 법적 규제로 강화되기도 했다.

종교와 색

산토리니의 파란 지붕은 대부분 정교회 예배당의 돔 지붕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작은 언덕이나 절벽 끝에 자리 잡고 있어 사진 속에서는 유독 눈에 띄는 구조를 이룬다. 지붕은 바다색, 벽은 구름색. 이 조합은 시간이 흐르며 섬 전체의 이미지로 확대되었다.

산토리니(Santorini), 픽사베이 이미지

관광이 만든 상징

오늘날 파란 지붕은 관광 마케팅의 결과물이다. 산토리니를 찍은 수많은 엽서와 광고, SNS 이미지들이 이 조합을 섬의 대표 아이덴티티로 만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건물 지붕은 평평하거나 하얗고, 파란 지붕은 몇몇 교회에 국한된다. 하지만 보는 이미지가 기억에 남는 이미지가 되었다.

남은 것은 벽

정작 산토리니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건 수백 채의 하얀 벽들이다. 빛을 반사하며 시간의 층위를 담아내는 그 표면은 섬의 삶과 기후, 역사와 통제를 모두 품고 있다. 우리는 산토리니를 파란 지붕으로 기억하지만 실제로 그 풍경을 지탱하고 있는 건 하얗게 빛나는 수많은 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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