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o의 탄생과 이름의 유래
뉴욕 맨해튼의 SoHo(소호)는 이름부터 특이하다. 종종 사냥 구호에서 유래한 런던의 Soho와 혼동되지만, 이 지역의 이름은 “South of Houston Street”의 약자다. 단순한 위치 표시에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뉴욕 예술의 상징이 되었다.
1960년대까지 SoHo는 낡은 공장과 창고가 즐비한 산업지대였다. 그때만 해도 이곳은 뉴욕의 중심지와는 동떨어진 곳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치기만 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버려진 듯한 이 거대한 공간은 예술가들에게 이상적인 작업실이 되었다.
넓고 높은 천장, 큰 창문은 작업공간으로 완벽했고, 저렴한 임대료가 예술가들을 끌어들였다. 공장이 떠난 자리에는 창조적인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SoHo는 조금씩 그들의 작품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는 생동감이 넘쳤다. 거리 한편에서 열리는 즉석 공연과 벽에 그려진 벽화들은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처럼 변모했다.
캐스트 아이언(Cast Iron) 건축의 도시
소호지역의 철로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들 (이미지출처: pexels)
SoHo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거리 곳곳에 늘어선 캐스트 아이언(Cast Iron) 건축물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세워진 이 건물들은 당시 건축 기술의 혁신을 보여준다.
주철을 활용한 외관은 정교한 장식이 가능했고, 화려한 디테일로 꾸며졌다. 이 철골 구조 덕분에 넓은 창문을 설치할 수 있었고,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변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도 Greene Street와 Wooster Street를 거닐다 보면 고풍스러운 철제 장식의 건물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 구조물들은 시간의 흐름에도 견고함을 유지하며, 도시 재개발의 바람 속에서도 그 자태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건축물 덕분에 SoHo는 단순한 예술지구를 넘어 뉴욕의 역사적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예술가들의 이주와 창조적 부활
소호의 길가에 그려진 Eduardo Kobra(에두아르도 코브라)의 그림[추정]
1970년대, SoHo는 뉴욕의 예술 중심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넓은 공간과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거리는 자연스럽게 갤러리와 스튜디오로 가득 찼고, 거리 예술(Street Art) 역시 함께 발전했다.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키스 해링(Keith Haring) 같은 전설적인 예술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그들은 SoHo의 벽과 창고를 캔버스 삼아 작품을 남겼고, 이는 뉴욕 스트리트 아트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이들이 남긴 작품들은 단순한 벽화가 아닌, 당시의 사회적 메시지와 저항을 담은 예술운동의 일부였다. 그들의 손길이 남긴 흔적은 지금도 SoHo의 골목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대의 SoHo: 예술과 상업의 공존
현재의 SoHo는 예술적 색채와 상업적 성공이 공존하는 독특한 장소로 발전했다. 럭셔리 브랜드 매장과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하지만, 그 사이로 여전히 작은 갤러리들이 숨 쉬고 있다. 거리의 공공 미술과 벽화들은 여전히 SoHo의 예술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열리는 ‘Open Studio’ 같은 행사는 예술가와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불어, 일요일마다 열리는 플리마켓(Flea Market)에서는 현지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거리 공연은 SoHo만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완성한다. 거리 곳곳에서 즉흥적으로 열리는 음악 공연과 퍼포먼스 아트는 방문자들에게 예술이 일상이 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SoHo를 거닐다
SoHo를 여행한다면 단순히 관광지로만 생각하지는 말자. 좁은 골목길에 숨어 있는 빈티지 상점, 오래된 카페, 그리고 어디에나 펼쳐진 거리 예술이 조화를 이룬다. Greene Street와 Prince Street를 중심으로 걷다 보면 뉴욕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느껴질 것이다.
단순히 지나치는 거리가 아니라 창조와 역사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곳, SoHo는 그런 곳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건물 사이를 거닐다 보면 어느새 그 시대의 예술가들과 함께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거리의 벽에는 아직도 새로운 작품들이 그려지고 있으며, 빈티지 상점의 창문 너머로는 수십 년 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